40년 동안 전염병 대응한 조너선 퀵, 팬데믹 종식 위한 7가지 방법 제시
전염병 확산 저지한 각국 지도자들 소개…“집에 불 난 것처럼 행동하라”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팬데믹이 되려면
“그때까지 ‘이 병’은 몇 달 동안 모락모락 연기를 내고 있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공표하지 않고 조용히 진압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병’은 코로나19 감염증이 아니다. 지난 2003년 발생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증후군)다. 중국에서 처음 감염사례가 보고됐고, 중국 정부는 이를 필사적으로 은폐했다는 점에서 두 감염병의 시작은 비슷했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가 목도하듯 판이하다. 사스는 29개국에서 8098명을 감염시키고 멈췄지만, 코로나19는 17일까지 220개국에서 7347만명을 감염시키고도 무섭게 확산하는 중이다.
무엇이 두 감염병의 ‘명운’을 갈랐을까. 어떻게 하면 국지적인 감염병이 “끓어 넘쳐” 팬데믹으로 번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코로나19를 마지막으로 팬데믹 자체를 종식하려면 우리는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팬데믹이 되려면>은 이 질문에 대한 신뢰할 만한 대답을 품고 있는 책이다. 1978년부터 아프리카, 중동 등 70개 이상 국가에서 에이즈, 조류인플루엔자, 사스, 에볼라 등 여러 감염병을 상대해 본 현장 전문가이자, 세계보건기구(WHO) 의약품 정책국장을 지냈고 현재는 록펠러 재단의 전염병 대응·예방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지은이 조너선 퀵은 40년에 걸친 경험과 방대한 연구 논문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팬데믹을 종식하는 일곱 가지 방법을 독자 앞에 펼쳐 놓는다. 이 책은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8년 미국에서 출간됐는데, 이 점이 독자를 김빠지게 하기보단 오히려 긴장시킨다. 지은이가 ‘비전시’ 기간에 차분히 세워둔 대책에 비춰볼 때 우리 정부가 얼마나 잘 대처하고 있는지 ‘채점’하는 자세로 읽게 되기 때문이다.
지은이 조너선 퀵은 2003년 사스가 발생했을 때 세계보건기구에서 그로 할렘 브룬틀란트(사진) 당시 사무총장과 함께 일했다. 그는 “노르웨이 수상을 지내기도 했던 브룬틀란트는 함께 일한 상사 중 가장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이었다”며 “강철 같은 뒷심과 직설화법으로 유명했던 그 덕분에 사스를 조기 진압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일곱 가지 솔루션 중 지은이가 최우선으로 꼽은 것은 ‘리더십’이다. 리더십이 나머지 여섯 가지를 작동시키는 ‘엔진’이어서다. 지은이는 지도자의 신속한 판단, 투명한 공개로 재앙을 막은 사례로 사스를 든다. “(당시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던) 브룬틀란트는 지체하지 않고 세계보건기구로서는 드물었던 세계 보건 경보를 발했다. 또한 과감하게 규약을 깨고, 방역 당국에 먼저 알리는 대신 당국과 언론에 동시에 알렸다. 중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가 화를 버럭 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 중국은 몇 주 동안 세계보건기구 조사팀에 광둥 개방을 주저하다 결국 동의했다. (…) 브룬틀란트는 다시 한 번 규약을 깨고 중국 지도부를 공식적으로 비판했다.” 지은이는 브룬틀란트의 단호하고 신속한 실행이 아니었다면 사스는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쳤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리더십이 팬데믹을 저지한 사례는 또 있다. 이번엔 에볼라가 창궐했던 라이베리아다. 당시 엘렌 존슨 설리프 대통령은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공중보건 학위를 딴 변호사 은옌스와를 최고위 지휘관으로 앉힌 뒤 ‘직보’를 받았다. 여러 사람을 거치며 굴절되고 뭉툭해진 보고가 아니라, 사태의 심각성을 그대로 담은 날 선 보고는 감염병 종식의 시작이 됐다.
엘렌 존슨 설리프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 아프리카 최초 여성 대통령인 그는 최고위 지휘관에게 감염병 상황을 직보 받는 등의 적극적 대처로 에볼라 종식에 기여했다고 평가 받는다.
신속 투명한 리더십의 반대편엔 1918년 스페인 독감 당시 미국 대통령을 지낸 우드로 윌슨이 있다. 그는 독감이 확산할 거라는 방역 당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참전을 결정했고, 공석에서나 사석에서나 일절 독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60만명이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다. 지은이는 지도자의 가장 나쁜 초기대응 태도로 ‘부인, 우유부단, 불신’을 꼽으며 감염병을 대할 때 지도자의 바람직한 태도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 “집에 불 난 것처럼 행동하라.” 재난 시 지도자는 “해도 욕 먹고 안 해도 욕 먹는 상황”, ‘과잉 대응’과 ‘늦장 대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되는데, 이럴 때는 불타는 집을 상상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정치적 이익을 셈할 시간 따위는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전세계를 강타했을 때 미국 켄자스의 캠프 펀스톤 육군 부대 내 임시병원.
리더십과 함께 ‘팬데믹 커뮤니케이션’도 지은이는 중점적으로 다룬다. 특히 대중에 널리 퍼진 ‘백신 공포’를 없애,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게 팬데믹을 끝낼 궁극적 열쇠라고 주장하는 부분에선, 불과 두 달 전 중계하듯 이뤄진 독감 백신 사망 릴레이 보도가 떠오르며 아찔해진다. 책에 인용된 퓨처리서치센터 연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 5명 중 1명이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이라는 잘못된 이론을 믿는다고 한다.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발표한 논문은 이미 “의료 사기”임이 밝혀졌음에도 이 미신이 계속 퍼지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백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한다. “백신에 대한 신뢰는 곧 정부에 대한 신뢰다. (…) 보건 지도자는 사람들의 근심에 귀 기울이고, 사람들이 변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라.” 또 “(신속 진단 키트를 이용한) 현장진단법은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혈액검사보다 정확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일부 비판자들이 경고”하더라도 “‘속도의 필요성’에 복무하기 위해 해야만 한다”는 조언은 현 시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팬데믹 재발을 막기 위한 더욱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투자의 중요성도 지은이는 힘줘 주장한다. 지은이는 전염병 위기에는 반짝 올랐다가, 잠잠해지면 쪼그라드는 공중보건 예산을 거론하면서 정부가 내리는 ‘최신 편향적’ 결정이 한 국가의 면역체계를 얼마나 취약하게 만드는지 비판한다. 그러면서 “지구 상 모든 개인에게 1인당 1달러(총 75억 달러, 약 8조2000억원)를 투자해 개발도상국 공중보건체계 강화, 백신 등 연구개발, 긴급대응에 사용하면 “이 1달러는 3∼10달러의 이익으로 되돌아온다”고 말한다.
조너선 퀵이 내린 마지막 솔루션은 ‘사회 운동을 조직하라’다. “그것이 없으면 정부는 항상 최신 편향, 부인, 회피에 사로잡혀 국민을 고통과 죽음 앞에 내버려 둘 수 있다”는 점에서다. 지도자의 무지를 흔들어 깨울 사람은 시민뿐이라는 것이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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