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차례 감시장비 포착에도 손놓고 있다 뒤늦게 병력 출동
해안서 5㎞ 이상 제지없이 이동…배수로 관리 소홀도 반복
적막감 감도는 동해안 접경지역: 북한의 군사행동 공언으로 남북관계 긴장국면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통일전망대 등 안보관광지 출입이 수개월째 금지되고 있는 동해안 최북단 명파리 마을 민통선 지역에 16일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강원도 고성군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일대에서 붙잡힌 북한 남성의 남하 경로가 일부 확인되면서 군 경계의 허점이 또다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일명 '머구리 잠수복'을 입고 바다로 헤엄쳐 건너온 이 남성이 해안으로 올라온 이후 군 감시장비에 여러 차례 포착됐음에도 대응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계 실패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17일 합참에 따르면 북한 남성은 전날 헤엄을 쳐 남하해 군사분계선(MDL)에서 남쪽으로 3㎞ 떨어진 해안으로 상륙, 옷을 갈아입고 남쪽으로 이동해 해안 철책 하단 배수로를 통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이 남성은 군 감시장비에 몇 차례 포착됐으나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참은 밝혔다.
합참은 이 남성이 전날 오전 4시 20분께 MDL에서 8㎞ 정도 떨어진 고성군 민통선 검문소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뒤 '5분 대기조' 병력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 남성이 군 감시장비에 처음 포착된 건 이보다 3시간 정도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접경 지역에서 군 감시장비에 신원 미상의 인원이 포착되면 군은 기동타격대를 출동시키고 검문소를 운용하는 등 신병 확보를 위한 작전에 바로 나서야 하는데 제때 필요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군은 전날 오전 7시 20분께 민통선 북쪽에 있는 해당 검문소 인근 동북쪽 지대에서 이 남성의 신병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군은 오전 6시 35분 대침투 경계령을 최고 수준인 '진돗개 하나'로 발령했다가 상황이 끝난 뒤인 오전 7시 29분 해제했다.
결과적으로 북한 남성이 최초 상륙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7번 국도를 따라 5㎞ 이상 떨어진 민통선 검문소 인근으로 이동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검문소 CCTV에서 포착된 이후 경계태세를 격상하고 신속대응 병력까지 출동했는데도 신병을 확보하는 데 3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또 이 남성이 해안철책 하단의 차단시설이 훼손된 배수로를 통과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작년 7월 탈북민 월북 사건 이후에도 관련 시설의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군 당국은 당시 인천 강화도에서 20대 탈북민이 배수로를 통해 월북한 사건 이후 배수로 등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는데, 또 배수로가 몰래 남북을 오가는 통로로 이용된 것이다.
군 관계자는 해당 배수로의 차단시설이 작년 7월 이후 설치한 것이냐는 질문에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군의 경계작전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해당 부대의 당직사관과 지휘 계통에 있던 지휘관 등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해 보인다.
박정환 합참 작전본부장은 이날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경계작전 요원과 시설물 관리 등 해안경계작전에 분명한 과오가 식별됐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합참과 지상작전사령부의 합동 조사 후에 결과에 따라 엄정한 조치를 하고 경계태세를 확립하겠다"고 보고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같은 자리에서 "조사를 통해 명확한 내용을 확인하고 거기에 따른 후속 조치를 철저히 하겠다"면서 "장관으로서 국민께 실망 안겨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한편 이번에 경계에 실패한 육군 22사단은 강원도의 험준한 산악 지형과 긴 해안을 함께 경계하는 부대로 사건·사고가 잇따라 지휘관의 '무덤'으로 불린다.
작년 11월에는 북한 남성이 최전방 철책을 넘은 지 14시간 30분 만에 기동수색팀에 발견돼 초동 조치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북한 남성은 GOP 철책으로부터 1.5㎞ 남쪽까지 이동해 있었다.
앞서 2012년 10월에는 북한군 병사가 군 초소 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표시한 일명 '노크 귀순'이 발생했다.
[그래픽] 동해 민통선 지역 북한 남성 검거 상황: 합동참모본부는 17일 "우리 군이 어제 동해 민통선 북방에서 신병을 확보한 인원(귀순 추정)은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했다"며 "해상을 통해 GOP(일반전초) 이남 통일전망대 부근 해안으로 올라와 해안 철책 하단 배수로를 통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겨울 바다서 6시간 수영 가능할까…'오리발 귀순' 의문점
"민간인 10㎞ 헤엄쳐서 올 수 있나" 지적…軍, 잠수복·오리발 발견
차단막 몸으로 밀어 훼손한 듯…군 "수영거리·훼손 방법 등 조사중"
[그래픽] 동해안 북한 남성 월남 상황
군 당국은 17일 강원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지역에서 붙잡힌 북한 남성이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헤엄쳐 남쪽으로 넘어온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으나 의문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북한 남성이 20대 초반의 건강한 체격이라도 차가운 겨울 바다에서 10여㎞를 헤엄쳐 건너올 수 있느냐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강원도 고성지역 주민들도 당시 동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되어 높은 파도가 일었는데 어떻게 헤엄을 쳐서 넘어올 수 있느냐는 반응이다. 국회에서 이날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이 많았다.
◇ 차가운 바다에서 6시간가량 수영 가능한가?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은 이날 "군사분계선(MDL)에서 3㎞ 남쪽 해안에 상륙했고, 북한 경계구역에서 벗어나려면 10㎞ 정도를 헤엄쳤을 텐데 과연 헤엄쳐서 민간인이 넘어올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날 기준으로 속초해수욕장 해양관측부위에 기록된 동해 수온은 6.27℃로 나타났다. 이런 온도에서 오랫동안 물속에 있으면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기 쉬운데 어떻게 멀쩡하게 해안에 상륙해 남쪽으로 5㎞를 더 걸어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지 주민들도 MDL에서 귀순자가 상륙했을 것으로 보이는 통일전망대 인근 해안까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높은 파도에 헤엄쳐서 온 것으로 보인다는 군의 발표를 믿기 어렵다고 한다.
군 당국은 북한 남성이 최초 접근한 해안의 철책 부근에서 '머구리 잠수복'과 오리발을 발견해 헤엄을 쳐서 월남한 것으로 추정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 답변을 통해 "저희가 최초 가진 데이터로는 그 수온에서 수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간 방수복처럼 일체형으로 된 옷에, 그 안에 완전히 물이 스며들지 않게 옷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며 "잠수해서 수영해서 여섯시간 내외 될 거라고 진술한 걸로 아는데 수영해서 온 걸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박정환 합참 작전본부장도 국방위에서 "MDL에서 3㎞ 이상 이격된 (해안) 철책 부근에서 족적(발자국)이 발견됐고, 이 지점을 통해 상륙한 것으로 추정한다"며 "철책 전방에서 잠수복과 오리발이 발견됐고, 환복 후 이동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 해안 철책 아래 배수로 차단막 어떻게 훼손했나
박 작전본부장은 "철책 하단 배수로 차단막이 훼손됐음을 확인했다"며 "이 배수로를 통해 해안 철책을 극복한(통과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배수로 차단막은 보통 철제 그물망 또는 철봉 구조물로 이뤄졌다. 바닷물에 오래 노출되면 부식되어 성인 힘으로 충분히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 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군 관계자는 "월남자가 배수로 차단막을 몸으로 밀고 발로 차서 휘어진 상태에서 양손으로 벌려 통과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어떻게 훼손했는지 등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군은 작년 7월 인천 강화도에서 20대 탈북민이 배수로를 통해 월북한 사건 이후 해안 철책 인근 배수로 등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만약 이번 배수로를 점검하고 새 장비로 교체했다면 훼손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해당 배수로의 차단시설이 작년 7월 이후 설치한 것이냐는 질문에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해안 철책 아래 설치된 배수로가 취약하다는 것이 작년 7월 증명됐는데도 이번에 훼손된 배수로 주변에는 폐쇄회로(CC)TV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작전본부장은 "(사건이 발생한) 22사단에도 48개의 배수로가 있는데 유독 그 배수로가 보안이 안 된 것으로 파악을 했다"고 설명했다. 보안이 안 됐다는 것은 인근에 감시 장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에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작년 8월 1일부로 (배수로를) 전수 조사해서 조치를 끝냈다고 보고를 받았다"면서 "새 철조망이 6개월 만에 녹이 슬어 열렸나"라고 꼬집었다.
이에 서 장관은 "배수로가 아예 구조물이 너무 형편없어서 새로 설치한 곳도 있고, 기존 것이 튼튼해서 확인한 것만 있고, 보완한 것도 있고, 유형별로 다르긴 한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 북한 남성 출발 지역과 신병확보 과정은
군은 북한 남성이 동해 MDL까지 육상으로 이동한 후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 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가 방수가 가능한 '머구리 잠수복'과 오리발을 준비했을 정도로 '해상 귀순'을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북한 남성은 월남하기 전에 북한 지역에서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몇 차례 사전 준비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합참은 북한 남성이 어느 지역에서, 언제 출발했는지에 대해서는 "조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울러 군이 북한 남성의 신병을 확보하는 과정도 석연찮다.
군은 지난 16일 오전 4시 20분께 민통선 검문소에 설치된 CCTV로 북한 남성을 식별하고, 22사단 및 8군단 기동타격대를 출동시켰다.
이어 오전 6시 35분께 대침투경계태세인 '진돗개'를 '하나'로 격상한 가운데 오전 7시 20분 수색작전 병력에 의해 남성의 신병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군이 남성의 모습을 최초로 식별한 후 수색 병력을 대폭 증강했고 무덤가에서 낙엽을 모아 덮고 자던 북한 남성을 찾았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신병 확보에 3시간이 걸린 것도 이 남성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에 군 소식통은 "월남자가 헤엄쳐서 건너왔고 날씨가 추워 몸을 보호하려고 낙엽을 긁어모아 덮고 있었다"며 "일단 은거한 것으로 CCTV에 포착됐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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