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유지와 제반 상황 등 ‘실질적 관련성’이 재판 관할 근거

 

 

외국인 부부가 한국에 살던 중 불화로 이혼을 결심했을 때, 대한민국 법원에서 이혼 소송을 벌이는 것이 가능할까? 대법원은 국내 법원의 재판관할권이 인정된다고 봤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캐나다 국적을 가진 부부의 이혼청구 소송에서 우리 법원의 국제재판 관할권을 인정한다며 이들의 이혼과 재산분할청구를 받아들인 원심을 확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캐나다 국적자인 ㄱ씨와 ㄴ씨 부부는 2013년 7월 혼인신고를 한 뒤 퀘벡주에 거주하다가 2013년 11월부터 한국에 체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5년 3월, 남편 ㄱ씨가 아내 ㄴ씨를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및 재산분할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적 다툼이 시작됐다.

 

■ 캐나다 부부의 이혼,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다?

국제사법 2조에 따르면 법원은 분쟁이 된 사안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이 있는 경우’ 재판 관할권을 갖는다. 가정법원은 이 조항에 따라 대한민국 법원이 재판관할권을 갖는다고 보고 심리에 돌입했다. 다만 국제사법은 혼인의 효력은 부부의 국적에 따라 캐나다법의 적용을 받도록 규정해 가정법원은 캐나다 이혼법에 따라 사건을 심리했다. ㄱ씨도 캐나다법이 정한 ‘1년 이상의 별거’ 및 ‘상대방 배우자가 동거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한 경우’를 이혼 사유로 적었다. 가정법원은 ㄱ씨 주장을 받아들였고, 이혼을 명하면서 ㄱ씨가 재산의 80%를 갖고 나머지 20%를 ㄴ씨가 갖도록 선고했다.

그러나 ㄴ씨는 여기에 불복해 “캐나다법의 적절한 적용을 위해서는 현지에서의 재판이 필요하다. 이 사건은 캐나다 법원에서 판단을 받아야 하고,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재산분할 결과도 부당하다는 입장이었다.

 

■ 대법원, “이혼 당사자들과 대한민국 사이 ‘실질적 관련성’ 판단해야”

하지만 대법원은 국제사법에 따라 이들의 이혼이 한국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으므로 국제재판관할권을 국내 법원이 갖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당사자의 국적이나 주소가 대한민국에 없어 관할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라도, 이혼 청구의 주요 원인이 된 사실관계가 대한민국에서 형성되었고, 재산분할사건에서 대한민국에 있는 재산이 분할 대상인지를 첨예하게 다투고 있다면 대한민국과 해당 사안 간 실질적 관련성을 인정할 여지가 크다”며 그 기준을 자세히 제시했다. “‘실질적 관련의 유무’는 국내법 관할 규정 뿐 아니라 국적이나 주소, 분쟁 원인이 되는 사실관계가 이뤄진 장소, 사건 관련 자료 수집의 용이성, 소송 수행의 편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대법원은 이들 부부의 이혼과 대한민국의 ‘실질적 관련성’의 근거로 ㄴ씨가 대한민국에서 거주하며 생활했던 점을 꼽았다. 대법원은 “ㄴ씨는 이혼소송 전 국내로 주소지를 신고하고, 부동산과 차량도 매수해 소유·사용해 왔다”고 했다. 또 ㄴ씨가 ㄱ씨에게 정신적 고통을 입히고 그의 재산을 편취하였는지, ㄴ씨의 국내 재산이 이혼 시 분할 대상이 되는지 등의 이혼사유 역시 대한민국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 밖에도 ㄱ씨가 가정법원에 재판을 직접 청구했고, ㄴ씨도 대리인을 선임해 적극적으로 응해 심리가 이뤄졌던 정황도 판단에 고려됐다. 거주지와 재산내역 등 입증을 위한 출입국사실증명, 계좌이체 내역도 모두 가능해 ㄴ씨 주장대로 캐나다에서만 심리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도 포함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가사사건에서 당사자들의 사정에 따라 대한민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을 인정한 사례는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가사사건에서 국제사법에 따른 ‘실질적 관련성’ 여부의 판단기준을 제시한 최초의 사례”라며 “외국인 사이의 이혼사건에서 하급심 법원이 국제재판관할권 여부를 판단할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판결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