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비판에 “대구 고향 온 듯”… 사흘간 치밀한 정치검사 언동

 현정권 잇단 파격발탁 불구, 선택수사·측근비호 등 논란에, 첫 징계도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퇴한 표면적인 이유는 여당에서 추진 중인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신설’이다. 부정부패에 강력히 대응하는 것이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의무인데, 수사청을 세워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면, 검찰이 파괴되고 반부패 시스템이 붕괴”된다는 주장이다. 이 연장선에서 그는 사의를 밝히며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 사퇴에 사적·정무적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대선 출마’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그의 정치적 자산이자 트레이드마크가 될 ‘법치주의’를 지키려 했다는 모양새와 ‘권력에 맞선 공직자’의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정계진출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고, 그사이 야권을 중심으로 한 ‘윤석열 대망론’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사상 첫 징계받은 총장으로 이미 사임결단이 실기했다는 지적에, 부인과 장모 등 수사와 공효시효가 사퇴시기에 영향을 주지 않았느냐는 관측까지, 고위공직자로써 ‘수신(修身)과 처신에 문제가 있었다는 시각은 떨칠 수 없게 됐다.

 

법조계 “사퇴 외 다른 길 어려웠을 것”

검찰 내부에선 윤 총장이 이번 수사청 갈등 국면에서 사퇴 외에는 다른 길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일선에서 수사-기소권 분리를 위한 수사청 설치를 사실상 검찰 해체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고려하면 검찰의 최고 수장이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여당이 관련 입법을 위해 ‘속도전’에 나서고, 수사청에 대한 검사들의 실명 비판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총장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총대를 메는 것밖에 없다”며 “가만히 있으면 ‘조직이 해체되는데 총장은 뭐 하느냐’는 비판을 받게 되고, 그렇다고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것도 공직자로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지금껏 중도 사퇴한 역대 총장을 봐도 알 수 있듯 총장은 그런 자리”라고 말했다. 

사실상 정계진출 선언

윤 총장은 이날 사의를 밝히며 정계진출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검찰에서 할 일은 여기까지”이고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는 말로 사실상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퇴임 뒤)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생각해보겠다”고 답하고, ‘정치도 포함되느냐’는 거듭된 물음에 “그것은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한 태도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철저히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윤 총장의 지난 사흘 행보도 결국 정치적 주목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퇴임하려는 계산된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권의 수사청 신설 움직임을 작심 비판하고, 이튿날 언론의 관심 속에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겨냥해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이라는 준비된 표현을 써가며 비난을 이어간 뒤, 이날 사의를 표명한 일련의 과정이 짜임새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3일 ‘보수의 심장’이자 박근혜 대통령 수사 관련 부채가 있는 대구를 방문해 “고향에 온 것 같다”고 한 발언을 두고서도 보수층의 지지를 노린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정계진출 언제 결심했나

법조계에서는 윤 총장의 정치권 진출과 대선 출마에 관해 그동안 엇갈린 전망이 있었다.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이들은 최근 정치권에 투신했던 안대희 전 대검 중수부장이나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 등의 실패 사례를 들며 “윤 총장은 뼛속까지 검찰주의자다. 조직과 후배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권과 대립하는 것일 뿐 결국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반면 그와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 사이에서는 “윤 총장은 원래 사회, 경제 분야에 두루 관심이 많았다. 총장이 되고 얼마 뒤부터는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와 자주 연락하는 한 지인도 1년여 전부터 “확실히 달라졌다. 정치하는 걸 기정사실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윤 총장이 어떤 계기로 정치권 진출에 관심을 가졌는지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지난해 이어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과정에서 마음이 굳어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의 참모로 분류되는 한 검찰 간부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손발을 다 묶어버린 인사가 결정적이었다”며 “지난해 총장 고립 인사와 감찰, 수사지휘권 발동 등을 거치며 직접 나서야겠다는 마음을 굳힌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철저한 검찰주의자인 그의 행보와 처신에 비판적 논란이 거센데다, 재임중 직권남용 문제, 가족비리 등은 그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윤 총장을 잘 아는 한 후배 검사는 “정치를 오래 할지는 잘 모르겠다. 윤 총장 성격상 일사불란한 검찰과 달리 이해관계가 복잡한 정치권에서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15자 입장문’으로 ‘윤석열 사의’ 즉각 수용…강한 불쾌감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의를 수용했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의를 한시간 남짓 만에 수용했다. 사의 수용 45분 뒤에는 신임 민정수석에 김진국 감사위원을 임명했다. 윤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두시간 만에 대검찰 업무를 담당하는 민정수석을 ‘검찰 출신’ 신현수 수석에서 ‘민변 출신’ 김진국 수석으로 교체한 것이다. 말그대로 숨가쁜 전열 정비였다.

문 대통령은 4일 오후 3시15분께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짤막한 입장을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밝혔다. 윤 총장이 이날 오후 2시께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저는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 한다”고 선언한지 불과 한시간 남짓 만이다.

정만호 수석이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읽은 15자 분량의 짧은 입장문에는 윤 총장에 대한 강한 불쾌감이 담겨 있다. 청와대 안에선 윤 총장이 사의를 밝히면서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말한 것에 상당히 격앙된 분위기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이 사의를 밝히자마자 바로 사의를 수용하고 이를 공개한 것도 윤 총장의 ‘헌법정신 파괴’ 발언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그동안 검찰총장의 임기를 지켜주려 했고, 검찰개혁에 대한 속도조절 뜻도 내비쳤는데 윤 총장이 이를 모두 무시하고 정치인 같은 행태를 보였다. 임명권자로선 극심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윤 총장의 사의를 수용하면서 민정수석을 교체하는 인사도 이날 오후 4시께 함께 단행했다. 전임 신현수 수석이 검찰 고위직 인사 뒤 여권 내부의 불협화음을 노출시킨 사의 파동을 일으켰을 때도 사퇴를 만류했지만, 검찰총장까지 사퇴한 마당에 교체를 미룰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여권과 검찰의 대립이 국정운영에 부담을 준다는 판단 아래 최대한 신속히 상황 정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관심은 집권여당 강경파가 주도해온 ‘검수완박’(검찰 직접수사권 완전 박탈)에 ‘수사권 조정 안착’이 우선이라며 속도조절을 주문해온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태도가 검찰총장 사퇴와 민정수석 교체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느냐다. 관측은 엇갈린다. 문 대통령이 여당 강경파의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드라이브에 공개적으로 자제를 당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가 하면,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검찰 직접수사권을 없애는 방향으로 선회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4일 임명된 김진국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왼쪽)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말을 하기 위해 전임 신현수 수석과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 일각에선 ‘속도조절론자’였던 신현수 수석의 사표를 수리하고, 민변 부회장 출신의 김진국 수석을 앉힌 것 자체가 강력한 검찰개혁 드라이브의 신호라는 해석이다. 청와대에서 윤 총장 사의 과정에 대해 격앙된 내부 분위기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보선을 앞두고 정권과 검찰이 정면 충돌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정치적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것을 우려해 당분간 ‘숨고르기’ 모드를 지속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새 검찰총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검찰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신임 청와대 민정수석에 김진국(58) 감사원 감사위원을 임명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으로 사의를 표명했던 신현수 민정수석은 임명된 지 63일 만에 물러나게 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부회장 출신인 김 신임 수석은 참여정부 때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냈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 뒤인 2017년 7월 감사원 감사위원에 임명됐다. 김 신임 수석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 들러 “엄중한 시기에 중책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소임을 수행하도록 노력하겠다. 주변도 두루두루 잘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신 수석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 참석해 김 신임 수석을 직접 소개했다. 신 수석은 “여러가지로 능력이 부족해서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검찰 내부, 윤석열  ‘사퇴 공감’ 분위기… “무책임하게 떠나” 비판도

검사들 “이렇게 빨리 물러날 줄은” 후임 이성윤·김오수·조남관 거론

 

 

윤석열 검찰총장의 4일 사퇴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우호적 반응이 많았다. “법치주의 파괴와 검찰 중립성 훼손을 막기 위해 직을 던진 검찰총장”이란 의견이 많았지만, 한편에선 “윤 총장 재임 동안 검찰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는 지적과 함께 “수사권 박탈 위기에 무책임하게 조직을 떠난 총장”이란 평가도 나왔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의 수사권을 빼앗는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설치 문제뿐 아니라, 현 정부를 겨냥한 수사를 벌인 뒤 진행된 ‘좌천성 인사’ 등으로 검찰의 부패수사가 제구실을 못 하고 있었다”며 “수사팀 하나도 못 꾸리는 총장이 내부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차라리 외부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반면 수도권 검찰청의 한 검사는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과 올해 수사-기소 분리 입법 과정에서 총장이 사실상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며 “여당의 수사권 박탈에 맞서 총장이 더 강한 입장을 내줄 것을 기대했는데 무책임하게 사퇴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만약 총장직 사퇴가 검찰 조직과 법치주의 회복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결정이라면, 검사로서 실망이 클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검사들 대부분은 윤 총장의 조기 사퇴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몇달 전 사상 초유의 징계청구를 겪고도 버틴 총장이 이렇게 빨리 물러날 거라고 생각 못 했다”고 말했다.

윤 총장의 사퇴와 맞물려 내부적으로는 검사들의 집단행동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지난해 총장 징계와 최근 검찰 인사를 겪으면서 내부 불만이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라며 “검경 수사권을 조정한 지 두달도 안 돼, 보복 수준의 수사권 박탈 입법을 하겠다는데 가만히 있을 검사가 어디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에서는 검찰총장의 부재로 수사청 신설을 둘러싼 반발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방 검찰청의 부부장 검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수사청 반대 입장이 나오겠지만, 당장 집단반발이나 사표 행렬이 이어질 것 같진 않다”며 “정부·여당에 각을 세우지 않는 성향의 검찰총장이 오면 (수사청) 반대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새 검찰총장 후보로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 조남관 대검 차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차기 총장 인사를 두고 또 검찰과 여권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옥기원 장예지 기자


민주 “윤석열, 무능하고 무책임”  정의 “사실상 정계진출 선언”

민주 검찰개혁특위 “입법은 국회 몫, 수사-기소 분리 예정대로”

 

더불어민주당은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의를 밝힌 것과 관련해 “얻은 건 정치검찰의 오명이고, 잃은 건 국민의 검찰이라는 가치”라며 “이제 정치인 윤석열이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오롯이 윤석열 자신의 몫”이라고 비판했다.

허영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열어 “국민의 신뢰받는 기관이 될 때까지 검찰 스스로 개혁 주체가 돼 중단없는 개혁을 하겠다는 윤 총장의 취임사는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며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총장은 오로지 검찰이라는 권력기관에 충성하며 이를 공정과 정의로 포장해왔다”고 맹공했다. 허 대변인은 “사퇴 하루 전 대구를 방문하고, (대검) 현관에서 수많은 언론을 대상으로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국민을 선동했다. 검찰의 선택적 수사와 선택적 정의에 대한 개혁은 하지 못한 무능하고 무책임한 검찰총장”이라며 “사의 표명은 정치인 그 자체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윤 총장이 ‘정치 행보’를 보인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노웅래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직무정지도 거부하면서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임기만료를 고작 4개월여 앞두고 사퇴하겠다는 것은 철저한 정치적 계산의 결과로 봐야 한다”며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정해지자마자 돌연 사퇴발표를 한 것은 피해자 코스프레인 동시에 이슈를 집중시켜 4월 보궐선거를 자신들 유리한 쪽으로 끌어가려는 ‘야당발 기획 사퇴’를 충분히 의심케 한다”고 썼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도 “윤 총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고 늘 강조했으나, 정작 살아 있는 권력을 핑계로 가장 정치적인 검찰총장으로 마침표를 찍게 됐다”며 “사실상 정계 진출 선언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검찰에 남아있는 직접수사권을 완전히 떼어내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옮기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는 윤 총장의 사퇴와 관계없이 예정대로 법안 논의를 진행해갈 예정이다. 검찰개혁특위 위원인 김종민 최고위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입법의 국회의 몫이다. 검찰총장의 사퇴 여부가 입법 과정을 좌우할 수 없다”며 “검찰이 당사자니까 검찰, 법무부, 경찰 등 당사자 의견 충분히 들어서 입법활동을 충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총장의 거취 문제가 입법에 크게 변수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영지 기자


“윤석열, 별의 순간 왔다”더니…김종인, 사퇴 선언에 말 아껴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 선언을 두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앞으로 진로를 어떻게 개척해가는지 보겠다”고 말을 아꼈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던 윤 총장의 정치 입문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구체적인 메시지와 행동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는 뜻이다. 보수 야권에선 대선까지는 아직 1년 남짓 시간이 남은 만큼, 윤 총장이 당장 특정 정당에 들어가기보다 장외에서 세를 규합하며 존재감을 키우는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윤 총장을 임명한 뒤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통치 능력이 과연 있는 것이냐 생각을 하게 한다”며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총장’이라고 했으니 임기를 채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줬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중대범죄수사처(중수처)법을 만들어서 검찰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니까 검찰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저런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여당으로선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한테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언론사 인터뷰에서 윤 총장에게 “별의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느냐에 따라 국가를 위해 크게 기여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 별의 순간이 지금 보일 것”이라며 정치 입문을 위한 결단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이와 관련 “별의 순간을 잡는 것은 그 사람 본인의 생각에 달린 것이지, 국민의힘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면서도 “앞으로 자기 진로를 어떻게 개척해가는지 보겠다”고 했다. 김미나 기자


[사설] 사퇴한 윤석열, 정치권 진출은 ‘검찰 중립’ 부정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수용하고, 검찰 인사로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었던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도 수리했다. 여당 일각에서 추진 중인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가 윤 총장의 사퇴 이유다. 윤 총장은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윤 총장의 이런 인식은 실제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검찰총장이 임기 도중 사퇴할 이유가 될 수 없다. 벌써부터 윤 총장의 대통령선거 출마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은 ‘검찰의 중립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

검찰의 수사·기소권 독점으로 인한 폐해는 우리 사회에 누적돼왔고, 궁극적으로 권한 분리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윤 총장 자신도 동의한 바 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할지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부가 정할 몫이다. 더구나 수사·기소권 분리는 이제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다. 검찰도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입장을 표명하고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여권도 검찰의 의견까지 들어 충분한 검토를 거치겠다고 한 상황에서 총장이 사퇴까지 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윤 총장의 사퇴를 보면서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든다. 윤 총장은 “앞으로도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명시적인 언급은 없지만 사실상의 정치활동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윤 총장은 검찰총장으로선 이례적인 언론 인터뷰로 주목을 끈 뒤 이틀 만에 공개적인 사퇴 선언을 했다. 전날에는 국민의힘의 지지 기반인 대구를 방문했다. 노회한 정치인을 뺨치는 행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수사·기소권 분리를 쟁점으로 한껏 부각시킨 뒤 사퇴 명분으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윤 총장은 “검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은 부패한 것과 같다”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해왔다. 그런 그가 임기 도중 사퇴하고 정치에 뛰어든다면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현직 때의 권한 행사가 정치적 고려로 이뤄졌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고, 향후 검찰의 행보에도 정치적 불신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검찰의 신뢰성에 치명타다. 수사·기소 분리를 떠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기 위한 대대적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검찰개혁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개혁에 대한 저항에는 단호히 대처해야 하지만, 국민적 지지를 넓히는 데도 더욱 힘써야 한다. 청와대는 검찰 안팎에서 두루 신망받는 인사를 후임 총장으로 신속히 임명해 검찰 조직을 안정시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