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논설위원

 

3년 전 추석 때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쓴 ‘추석이란 무엇인가’란 칼럼이 화제가 됐다. 추석에 모인 친척들에게 ‘취직했느냐’ ‘언제 결혼할 거냐’ 같은 오지랖성 질문에 시달리던 젊은이들이 환호했다. 이 칼럼에서 김영민 교수는 사람들은 평상시 ‘나는 누구인가’ 같은 정체성을 따지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별 관심이 없지만 자신의 존재 규정을 위협할 만한 특이한 사태가 발생하면, 새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는 정체성을 따지는 근본적인 질문이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으로 올해 1조1833억원을 내고 앞으로 4년간은 전년도 국방비 증가율만큼 매해 방위비를 올려주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이 결과를 두고 외교부는 “합리적이고 공평한 분담이란 우리 원칙을 지켜냈다”고 자화자찬했다. 방위비분담금 협상의 최대 쟁점은 우리가 얼마나 내느냐(분담금 총액)였다. 미국은 돈을 더 달라고 했고 우리는 덜 주려고 맞섰다.

방위비분담금은 우리가 마땅히 내야 할 돈인가?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착각하지만, 아니다. “원래 미국이 부담하기로 약속된 경비를 ‘특별’ 조치를 통해 한국에 떠넘긴 것이 그 시작이라는 점에서 방위비‘분담’금이란 말 자체에, 이미 한미동맹의 불평등성이 숨어 있다.”(<트럼프 시대, 방위비분담금 바로 알기>, 박기학)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 관련 내용들은 1966년 체결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소파)에 들어 있다. 소파 5조에는 주한미군 비용 분담 원칙이 명확하게 적혀 있다. ‘한국이 주한미군에 시설과 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미국은 주한미군 운영 유지비를 모두 책임진다’는 게 뼈대다. 이 소파 규정에 따라 1990년까지는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 경비를 전액 부담해왔다. 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유럽 등 미군이 주둔한 나라들과 주둔군지위협정(소파)이나 기지협정을 맺었는데, 미군 유지경비는 미국이 책임지는 것으로 돼 있다. 외국에 군대를 보낼 경우, 그 경비는 군대를 보낸 나라가 내는 것이 국제사회 관행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부터 미국이 우리에게 주한미군 주둔비를 나눠 내자고 요구했다. 미국과 소련과 험악하게 대결했던 냉전 분위기가 누그러졌고, 미국이 무역·재정적자로 경제 형편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제 한국이 먹고살 만해졌으니 안보 비용을 내라’는 미국 내 여론도 작용했다.

주한미군 비용을 한국이 분담하면 소파 5조(미국 전액 부담)와 충돌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Special Measures Agreement)이 등장했다. 이 협정에 ‘특별’(Special)이란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소파 5조 적용을 협정 유효기간 동안 임시 중단시키는 특별한 조처이기 때문이다. 특별협정을 맺어 미국에 방위비분담금을 내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인상 요구로 2020년 3월 타결됐어야 할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장기 표류하자, 지난해부터 분담금 공백 상태가 1년 넘게 이어졌다. 돈줄이 말라 다급해진 주한미군사령부가 2021년 한국 정부 예산에 담겨 있는 방위비분담금 예산 중 일부를 먼저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돈을 줄 수 없었다. 제10차 협정 유효기간이 2019년으로 끝나버려, 소파 규정을 건너뛰고 주한미군에 돈을 지급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은 소파 규정 적용을 그때그때 일시적으로 유보하는 한시 협정이다. 이 협정은 1991년 1차부터 시작해 올해 11차까지 30년 동안 이어졌다. 한시 협정이 영구 협정처럼 자리잡자, 한국은 당연히 줘야 할 돈을 주고 미국은 받아야 할 돈을 받는다는 오해가 굳어졌다. 경제활동에서 돈은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데,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는 서서 주고 앉아서 받는 기이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방위비 분담의 취지는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 지원’이다. 미군은 한반도 밖에 있는 주일미군 소속 항공기도 방위비분담금으로 정비하고 있다. 이 금액은 2014~2019년 총 1088억원, 연평균 181억원가량이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증원이 계획된 주일미군 항공기를 정비하므로 한반도 방위에 기여한다고 폭넓게 해석한다. 이런 식으로 한반도 밖 미군에도 돈을 쓰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어진다.

방위비분담금을 ‘합리적이고 공평하게 분담했다’고 자랑하는 청와대, 외교부 당국자에게 되묻는다. 방위비분담금이란 무엇인가? 그 돈 원래 우리가 내야 하는 건가?     권혁철 논설위원

 

한-미 방위비 올해 13.9% 인상…국방비 증가율 반영, 6년 유효

         분담금 협정 타결, 협정기간 방위비의 50% 인상

         트럼프 시절 과도한 실무 합의 기본틀 극복 못해

 

 

한국이 올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1조1833억원을 부담하고 향후 4년 간은 전년도 국방비 증가율만큼 매해 방위비를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올해는 2019년 한국이 분담했던 1조389억원 대비 1444억원(13.9%) 늘어난 금액을, 이번 협정의 유효기간이 끝나는 2025년에는 대략 1조5000억원을 분담하게 된다. 정부가 협정 기간 내 방위비의 50% 인상을 보장한 셈이다. ‘동맹 복원’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트럼프 정부 시절의 일방적 요구가 수정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으나, 결국엔 과거 협상 당시 논의됐던 틀을 벗어나지 못해 ‘과도한 증액’이라는 비판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10일 보도자료를 내어 “(한-미 양국이) 제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협상을 최종적으로 타결했다”며 지난 5~7일 미국 워싱턴에서 이뤄진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공개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번 협정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6년 동안 유효한 다년도 협정이다. 2019년 12월31일에 종료된 10차 협정 뒤 공백 상태였던 2020년도 분담금 총액은 2019년 수준으로 동결해 1조389억원으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정부가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무급휴직 사태로 미국 쪽에 선지급한 인건비와 생계지원금 등 3144억원과 군사건설·군수지원 항목의 계속 사업 지급금 4천억여원을 뺀 3천억여원을 2020년분으로 내게 된다.

 

올해 한국이 분담할 총액은 2020년도 국방비 증가율 7.4%(768억여원)과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증액분 6.5%(675억여원)을 더해 확정했다는 게 외교부 쪽 설명이다. 외교부는 “13.9%라는 수치는 제도개선에 따른 인건비 증액분을 감안한 예외적인 증가율”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제도 개선을 ‘성과’로 내세웠다. 이번 협정에서 양국은 방위비분담금의 인건비 배정 비율의 하한선을 기존 75%에서 87%까지 확대하고, 이 가운데 85%는 의무 규정으로 바꿨다고 한다. 또 협정 공백시 전년도 수준의 인건비 지급이 가능하다는 규정을 협정에 처음으로 명문화했다. 김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