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특수감금 무죄’ 비상상고 요구에  “사유 해당하지 않아”
“대법관이, 국가가 우리를 또 버렸다” 눈물…진상조사 필요성

 

부랑자 수용을 명분으로 감금과 강제노동, 암매장 등을 자행한 고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의 무죄가 잘못됐다며 검찰총장이 제기한 비상상고가 대법원에서 기각된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와 가족이 눈물을 흘리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3천여명의 시민을 불법감금하고 강제노역과 학대 등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는 부산 형제복지원 원장의 무죄판결을 취소해달라며 검찰이 제기한 비상상고가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대법원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며 비통해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2018년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 무죄 판단을 다시 해달라고 낸 비상상고를 11일 기각했다. 비상상고 제도는 확정판결을 대상으로 하며, 심리나 재판에 법령 위반이 있을 경우 허용된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이 “비상상고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박인근씨는 수용자를 감금하고 국고보조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1987년 기소됐다. 당시 대법원은 박씨의 감금행위가 형법 20조에 따른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며 특수감금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고, 횡령 혐의 등만 유죄로 인정해 박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2018년 검찰은 무죄 선고의 근거 가운데 하나였던 내무부 훈령 ‘부랑인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이 위헌·무효라며 그에 따른 무죄 선고는 부당하다고 보고 비상상고를 했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이 비상상고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박씨가 무죄판결을 받은 근거는 내무부 훈령이 아니라, ‘법령에 의한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20조였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선고 직후 한 피해자는 “오늘만을 기다려왔는데 결과는 기각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또 다른 피해자는 대법원 앞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한종선씨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철저한 조사를 통해서라도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법원은 법리적 판단과 별개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핵심은 신체 자유 침해가 아닌 헌법의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됐다는 점”이라며 “진실 규명 작업으로 피해자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피해자 쪽을 대리한 박준영 변호사도 “대법원은 법적 안정성 차원에서 이런 판단을 한 것이지만, 피해자의 억울함을 해결할 절차도 고민해야 한다”며 “진상 조사는 물론 신속한 피해자 배·보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기가 출범했지만, 여야 합의 등의 문제로 정식 조사는 늦어지고 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대법원이 형제복지원의 중대한 인권침해를 확인해준 이상 위원회 조사가 더욱 중요해졌다”며 “피해자 아픔에 응답하기 위해 하루빨리 조사 역량을 갖춰 진상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