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베를린 일본대사관, 박물관 쪽에 요청
가토 “일본 입장과 안맞아, 신속 철거 노력”

 

 15일(현지시각)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주립민속박물관 전시장 안쪽에 버스를 탔던 소녀상이 설치 됐다.

 

독일 공공박물관에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된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독일 드레스덴 공공박물관에서 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전시되기 시작했다”며 “베를린 일본대사관이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고 16일 보도했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도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동상의 전시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나 지금까지 노력과 맞지 않는 것”이라며 “신속한 철거를 위해 다양한 관계자들을 만나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드레스덴 박물관연합은 이날부터 오는 8월1일까지 ‘언어상실-큰 소리의 침묵’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두 개의 소녀상이 전시됐다. 전시장 안에는 2017년 서울 시내버스를 탔던 소녀상이, 전시장 바깥 마당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놓였다.

 

마리온 아커만 드레스덴 박물관연합 총재는 15일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들의 이야기는 아직 독일 사회에서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번 전시회가 개개인의 ‘자전적 진실’을 알리기 위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베를린 일본대사관은 “일본 정부의 입장과 맞지 않는다”며 박물관 쪽에 유감을 표시하고 “이해를 얻을 수 있도록 계속 설명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소연 기자

 

일본 ‘10cm 소녀상’도 안된다?…더 커지고 많아진 독일 소녀상

드레스덴 주립박물관, 4월16일부터 8월1일까지

<언어상실-큰 소리의 침묵> 기획전시

 

15일(현지시각)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주립민속박물관 일본궁전 안뜰에 소녀상이 놓였다.

 

15일(현지시각)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 민속박물관 1층 전시실에 들어서니, 곱게 수놓은 걸개 그림이 관객들을 맞는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군이 여자와 아이들을 베고 찌르고 집단 강간하는 잔인한 장면들이다. 필리핀 레메디오스 필리아스 로라가 일일이 수를 놓은 손바느질 작품 <나의 전쟁 경험>이다. 그 뒤로는 일본 사진작가 야지마 츠카사가 찍은 한국 문필기, 배춘희 할머니 등 6명의 사진이 걸려 있다. 드레스덴 주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 <언어상실-큰 소리의 침묵> 전 중 일본군 ‘위안부’ 주제전시실의 풍경이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독일인들에겐 낯선 이 야만의 풍경이 16일부터 8월1일까지 독일 관람객들을 만난다.

 

15일(현지시각)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주립민속박물관 전시장 안쪽에 버스를 탔던 소녀상이 설치 됐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시장 안팎에 자리한 소녀상이다. 전시장 안에는 2017년 서울시내버스를 탔던 소녀상이, 전시장 바깥 마당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놓였다. 1년을 준비해온 이번 전시에서는 애초 가벼운 버스 소녀상만 설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베를린 소녀상 설치과정의 진통을 지켜본 드레스덴 민속박물관 쪽은 이번 드레스덴 전시에서 베를린과 같은 소녀상을 전시장 밖에도 설치하자는 독-한 단체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박물관 내 소녀상은 이번 전시가 종료된 뒤에도 내년 4월15일까지 존치된다.

 

                    마리온 아커만 드레스덴 및 작센주 박물관 총괄대표.

 

2019년 독일 라벤스부르거 전시회에서 10cm 미니소녀상이 전시됐다가 일본 영사관 항의로 철거된 것을 생각하면 두 개의 소녀상은 커다란 변화다. 드레스덴 및 작센주 박물관 총괄대표인 마리온 아커만 관장(56)은 일본 쪽 압력을 예상하면서도 소녀상 전시를 수용하고 나섰다. 15일 전시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그는 “이번 전시에서도 일본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는 동시에 일본문화를 존중하고 일본정부와 계속 대화할 것”이라면서도 “홀로코스트 역사를 철저히 교육받고 자란 세대로서 나 또한 우리 사회가 전쟁 피해자를 잊지 않도록 늘 상기시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며 소녀상 전시는 관장으로서 자신의 책무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커만 관장은 이번 전시에서 할머니들이 부르는 “사공의 노래”와 할머니들의 사진들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이는 작품이 아니라 기록물이지만 피해자가 그후의 세월을 살아낸 표정이 쌓여있다고 했다. 그는 또 “더 이상 박물관은 외딴 섬이 아니라 활동가, 일반 시민, 피해자, 가해자 등을 연결하고 대화를 촉발하는 연결지점이자 매듭”이라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드레스덴 주립민속박물관은 탈식민지라는 주제로 미술을 통해서 역사적 반성과 사회참여를 담당해왔다.

 

                    레온티네 마이에르 판 멘쉬 주립민속박물관 관장.

 

전시는 아르메니아 대량학살, 구 유고슬라비아 내전, 독일제국이 저지른 헤레로-나마 집단학살 등 여성에 대한 다양한 전쟁범죄를 다뤘지만 그 중심은 한국 ‘위안부’ 문제다. 주립민속박물관 레온티네 마이에르 판 멘쉬 관장(48)은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침묵을 깬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데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조직하며, 상실을 극복해온 사례는 상징과도 같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전시를 적극적으로 기획, 추진한 이유를 밝혔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왜 드레스덴에 전시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관장의 답은 분명했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성폭력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이 와서 전시를 보고 침묵을 깨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두 명의 여성관장 및 드레스덴 박물관 큐레이터 바바라 회퍼,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 등 여성들의 강력한 의지가 만들어낸 전시라는 평을 얻는다.

 

                   한정화 베를린 코리아협의회 대표.

 

한편으로는 또 최근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이 독일 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인식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전시를 함께 한정화 대표는 “나치 청산과는 달리 독일은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비판과 성찰이 많지 않았으며 오히려 가해자-패전국인 일본의 정서에 공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소녀상을 계기로 일본정부가 예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전시 문의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드레스덴/ 남은주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