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사건 선정에 비판 속출, ‘교사 복직’이 중대범죄라니…
“이런 거 하라고 만든 거냐” ‘김학의 출금’ 등 검찰 수사 회피
“정치적 논란 피하려 쉬운 길 선택” 쓴소리 봇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왼쪽)이 1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수처가 ‘1호 사건’으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특별채용’ 의혹을 선택한 것을 두고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진보성향의 교육감을 수사 대상으로 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사건 자체가 그동안 공수처 설립을 원했던 시민들이 원했던 권력형 비리나 부패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직 인력과 조직이 정돈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감사원이 대부분 조사해놓은 비교적 쉬운 사건을 택한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을 맡은 2005년부터 계속해 공수처 설치를 요구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1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라며 “공수처 위상을 강화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1호 사건’을 선정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어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비위와 부패를 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다. 조 교육감이 고위공직자이긴 하지만 해당 사건이 권력형 범죄라고 보긴 어렵다”며 “절차상 위법이 있을 순 있지만 사소한 절차 위반 사건 수사를 위해 공수처가 만들어진 게 아니다. 외부 압력 때문에 다른 1호 사건을 포기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도 이날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특채 권한이 교육감에게 있고 제도에 따른 인사 절차를 거쳐 ‘전교조 해직교사’들을 특별채용해 교사로서 일할 수 있게 조처했는데 입건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공수처를 만든 목적이 고위공직자가 법을 어긴 ‘중대범죄’ 사건인데, 어디서도 ‘중대범죄’라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수사 대상’인지 논란이 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을 지적한 이들도 있다.
김남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개혁입법특위 위원장)는 “교육감도 수사대상이다. 다만 특별채용이 교육감 권한이고 권위주의적 정부에서 억울하게 해고된 교사들을 구제하는 측면이 있다. 절차적인 문제 존재 여부와 별도로 강제수사 대상일지 논란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라며 “공수처의 본질은 고위공직자 부패 문제에 대한 수사다. 국회의원이나 판검사 등에 대한 부패 비리 수사를 원했던 국민으로선 의문이 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여러 내부 사정을 고려한 공수처의 고육지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4월 수사 착수를 공공연하게 밝혀온 만큼 5월부터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고, 여러 사건 가운데 그래도 ‘무게감’ 있는 인사를 택했을 거라는 분석이다.
검찰의 한 중견 간부는 “술접대 검사 사건은 검찰이 이미 기소해버렸고, 앞서 거론됐던 ‘김학의 불법 출금’ 연루 검찰 간부들을 1호 사건으로 택하면 그 순간부터 공수처는 수사 전체가 정치적 논란에 휘말려 진영 공방의 대상이 되는 게 뻔하다. 권력형 비리나 부패 사건이 마땅히 없는 상태에서 정부와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는 조 교육감을 첫 사건으로 택해 정치적 중립 이미지라도 확보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쉬운 사건’을 선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양홍석 변호사는 “감사원이 수사의뢰했으니 어느 정도 조사됐고 법리 판단 문제만이 남은 상태다. 너무 쉽게 가려 한 게 아닌지 의문”이라며 “다만 교육감의 경우 기소 권한이 검찰한테 있어, 공수처가 수사 뒤 검찰한테 ‘숙제 검사’를 맡아야 한다. 검찰에 넘겼는데 불기소가 나오면 공수처가 체면을 구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업무 배제 직권 남용” vs “교육감 정당한 권한”
공수처 조희연 수사 쟁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특별채용’ 의혹과 관련해 본격 수사에 나서면서, 공수처가 선택한 ‘1호 사건’의 성패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감사원은 이 사건을 처음 경찰에 고발하며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는데, 이는 공수처 수사 대상 범죄가 아니다. 이에 공수처는 이 사건 수사를 위해 조 교육감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이첩받았다. 반면 조 교육감 쪽은 ‘특별채용은 교육감의 정당한 권한’이라며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 “업무 배제 등 권한남용” vs “정당한 채용”
공수처는 지난주 서울시교육청에 조 교육감 수사 개시를 통보하며 ‘죄명’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라고 명시했다. 조 교육감이 2018년 11월30일 공고된 중등교사 특별채용 과정에서 특별채용에 반대한 부교육감 등의 업무배제를 지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해 2018년 12월31일 교사 5명을 특별채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감사원 조사 결과를 보면, 조 교육감은 2018년 7~8월 해직 교사 5명을 특정해 특별채용을 검토·추진하도록 지시했다가 담당자로부터 반대 의견을 보고받자, 교육감 비서실 소속 ㄱ씨가 채용에 관여한 것으로 돼 있다. ㄱ씨는 기존 심사위원 선정방식과 달리 친분이 있는 변호사 등을 선정했고, 심사 결과 해직 교사들만 채용됐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향후 공수처 수사 과정에서는 실제 조 교육감이 사전 내정자들의 특별채용을 반대했다는 부교육감을 업무에서 배제해 공정한 채용 과정을 방해했는지, 중등교사 특별채용이 교육감의 정당한 권한인지 등이 법적인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특별채용 자체는 교육감 권한이지만 ‘채용 대상자를 미리 정한 뒤 그 대상자에게 유리하게 채용절차를 진행하는 건 위법’이라고 보고 있다.
조 교육감과 서울시교육청 쪽은 공수처의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특별채용 자체가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교육감의 권한이라고 설명한다. 2016년 6월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으로 특별채용 자체가 공개경쟁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교육청도 이전과 달리 정식 공고를 내 서류 탈락자가 발생하는 등 공정하게 진행했다고 주장한다.
공수처가 지적하는 ‘부교육감의 업무배제’ 건에 관해서도 서울시교육청 쪽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교육청은 자료를 내 “부교육감 및 국·과장은 법률자문을 통해 특별채용 절차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했으나, 이전 특별채용에서 발생한 문제로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라며 “교육감은 부교육감 및 국·과장 등 해당 공무원을 배려하기 위해 이들 동의를 얻고 결재란 없이 특별채용 절차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특별채용 교사 중 한명이 2018년 조 교육감 캠프에서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는 감사원 지적에 교육청 쪽은 “당시 공동선거본부장 인원만 스무명이 넘었다”며 관련성을 부인했다.
■ 직권남용 입증 까다로워…기소권 없어 변수
기소권 없어 변수 공수처가 애초 감사원이 적용한 국가공무원법 위반 대신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입건한 것은 국가공무원법 위반은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적용한 국가공무원법 제44조는 ‘누구든지 시험 또는 임용에 관해 고의로 방해하거나 부당한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것으로, 직권남용에 비해 입증이 비교적 쉽다.
반면 직권남용은 당사자들의 직무권한 범위나 행위의 동기나 목적 등에 따라 판단이 달라져 ‘사법농단’ 등 주요 사건 재판에서도 서로 다른 판단이 나와 입증이 까다롭다. 양홍석 변호사는 “직권남용은 (판단 기준이) ‘고무줄’이다. 결국 특별채용 최종 판단은 교육감 몫이라 수사가 만만치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수처가 조 교육감에 대한 기소권이 없다는 점도 향후 변수가 될 수 있다. 공수처는 검사와 판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의 공소제기 권한을 갖고 있지만, 교육감은 수사만 할 수 있다. 결국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공소제기를 요구해야 하는데, 이를 받아든 검찰이 어떤 판단을 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공수처 수사 결과에 제동을 걸진 않겠지만, 직권남용만 적용하기보다 감사원의 판단대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도 같이 적용해 기소할 수 있다. 하나의 행위가 여러 가지 죄명에 해당하는 ‘상상적 경합 사건’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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