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캠핑
임순숙 /수필가. 문협 회원
아이들을 위한 해방구가 어디 없을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좀 느슨해지자 한동안 묶였던 규제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잔뜩 응축됐던 일상에 생기가 돌면서 그동안 집에만 갇혀 지냈던 아이들이 마음에 쓰였다. 바이러스 전파율이 예전보다 많이 느슨해졌다고는 하나 지구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안심하기엔 이른 듯했다. 아니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이기에 한번쯤 일탈을 시도해야 했다. 우리 부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가족캠핑을 구상하여 곧 실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우리와 같은 계획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캠핑 사이트 예약이 시작되자 마자 우리가 원하는 날짜는 순식간에 빨간 색으로 덮여버렸다. 며칠 시도한 끝에 겨우 사이트 예약에 성공했다. 알곤퀸 팍에서 3박4일 간 캠핑 소식을 가족 카톡방에 올렸더니 한동안 아이들의 환호로 떠들썩했다. 벌써 육 개월 전의 일이다.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우리들의 해방구, 알곤퀸 공원에 도착했다. 호수가 인접한 아늑한 캠핑장에 식구들의 텐트가 세워졌다. 우리 부부의 텐트 옆엔 큰 아들네, 건너편엔 늦게 합류한 작은 아들네가 자리를 잡았다. 얇은 텐트막 넘어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실루엣 되어 캠핑장을 유영했다. 내 어린 시절, 여섯 남매가 이방 저방에서 웃고 떠들면 할머니는 늘 흐뭇한 표정으로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하셨다. 그때 할머니의 마음이 이토록 풍요로웠을까. 지척에서 느껴지는 아이들의 인기척에 훈훈한 밤이 되었다.
혼돈의 세상사는 잠시 내려놓으라는 듯 늦여름 알곤퀸 공원은 푸르름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 푸르름 사이사이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정겨워 보였다. 빙그르 둘러앉아 와인잔을 들며 담소하는 사람들, 모닥불 피워놓고 독서삼매에 빠진 노부부, 아이들 돌보느라 분주한 젊은 부부 등 자연속에 있으니 그냥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공공의 적을 향해 매진했던 투사들이 잠시 창과 방패를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광경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어떤 연대감에 위안이 되기도 했다.
이른 저녁, 식구들이 캠파이어 가까이 모여 쉼 없이 깔깔거렸다. 아침부터 하이킹, 카누 타기, 그냥 뒹굴기 등 각자의 희망대로 시간을 보낸 후 느긋하게 불가에 모여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참이었다. 순간 인원 점검을 해 보니 할아버지, 아들, 손녀 삼대가 빠져있었다. 저녁 찬거리를 위해 고기 잡으러 갔다는 후문에 또 한번 배꼽을 잡았다.
우리 가족은 5:3 혹은 3:5 뭉치기로 유명하다. 다름아닌 혈액형이 같은 식구들끼리 잘 뭉친다는 뜻이다. 다섯 명의 O형들이 세 명의 A형 강태공들을 기다리다 늦은 저녁식사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도 똑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열살 짜리 손녀가 일어나기 무섭게 눈비비며 따라나서는 모습은 앙증맞기도 하지만 신기한 현상이기도 했다. 고기 잡는 손맛을 너무 일찍 터득한 게 아닐까. 호숫가의 삼대 덕택에 끼니마다 진수성찬을 꿈꾸는 캠핑이 되었다.
별 보러 가자는 아이들의 성화에 따라 나섰다. 깜깜한 호숫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망부석처럼 우뚝우뚝 서서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낮게 앉은 별무리가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나도 목이 아프도록 올려다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떨어지는 별똥별을 향해서 나직이 소원을 빌었다. ‘예전의 일상으로 얼른 돌아갈 수 있기를’ 하고.
[1500 칼럼] 브루스 트레일( Bruce trail) 예찬
임순숙 수필가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자유로운 여행이 쉽지 않은 요즈음 나는 종종 유튜브에 올려진 영상들을 보며 허기를 달랜다. 건강한 땀냄새가 그대로 느껴지는 고국의 농어촌 주민들의 일상이나, 아직 가 보지 못한 먼 나라의 신비한 풍경 속을 헤메다가 나오면 심란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유튜브에 올려진 수많은 콘텐츠들 중에 가장 선호하는 장르는 산에 관한 다큐물이다. 히말라야 산맥, 안데스 산맥, Mt.마터호른 등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명산들을 간접체험하고 나면 오래도록 진한 여운이 내 안에 남는다. 지난 인생 여정 중 반 이상은 산과 무관했었는데 중년 넘어 ‘산 바라기’ 삶으로 바뀐 연유는 전적으로 브루스 트레일의 영향임을 인지한다.
이층 침실 창가에 서면 전나무 가지 사이로 야트막한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계절 변화가 겨우 읽혀질 만한 거리에 있는 그곳은 평평한 주변 지형에 비해 제법 도드라진 품새를 내뿜는 유일한 곳이다. 산이라 칭하기엔 높이가 좀 아쉽고 앞동산이라 부르기엔 옆으로 뻗은 자태가 어색하지만 나의 중년기의 시름을 보듬어준 마음의 고향이자, 이십 년이란 긴 세월 동안 아낌없이 속살을 내어준 브루스 트레일의 한 자락 이다. 간간이 그 능선을 바라보며 지난 추억 떠올려보는 시간은 여느 부자가 부럽지 않다.
브루스 트레일은 남서쪽 나이아가라 강에서 북서쪽 죠지언 베이, 토버머리(Tobermory)까지 이어지는 캐나다에서도 유수한 트레일로, 메인길과 사잇길을 포함하여 총 길이 1300km 가 넘는다. 토론토는 물론 GTA 지역을 포함하여 외곽지역에서도 접근이 용이하여 평소에도 적잖은 시민들이 애용하고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은둔의 시기엔 브루스 트레일의 진가는 더욱 더 그 빛을 발한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구축된 길이라 인위적이지 않고 길을 걷는 동안은 나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에 같은 눈높이로 동식물을 대하게 된다.
이곳에 첫발을 내딛은 시기는 아마도 이민생활 십 여년 차, 심신이 가장 피폐했던 때로 기억한다. 당시 운영하던 사업체에 작은 변화가 생겼을 무렵 하이킹 회원을 모집한다는 신문 광고를 접하곤 주저없이 동참하게 되었다.
초겨울로 기억되는 하이킹 첫날엔, 솔숲 사이로 불어오는 칼바람이 왜 그렇게 감미롭던지 땀 범벅에도 아랑곳 않고 마냥 걸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자연을 향해 늘 목말라 하면서도 쉬이 다가갈 수 없었던 그 시절, 오랫동안 억눌려있던 오감이 한 순간에 열리며 자연과 합일을 꿈꾸는 계기가 되었다.
하이킹 첫날부터 브루스 트레일에 푹 빠졌던 나는 매주 토요일엔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으로 들녘을 누볐다. 비바람, 한파, 폭설 등 하이킹을 훼방하는 악천후쯤은 개의치 않고 열성으로 걷고 또 걸었다. 억지로 행하는 일이라면 금방 실증이 났으련만 마음이 동해서 걷다보니 체력 향상은 물론 매사 자신감도 배가되었다.
브루스 트레일과 인연을 맺기 전과 후의 삶은 극과 극의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비슷한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후의 삶은 매 순간 윤기가 돌았고 일의 성과 또한 상상 이상이었다. 어쩌다가 장거리 트레킹을 다녀온 후엔 무탈, 무병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도 했다.
내 삶에서 브루스 트레일과의 인연은 엄청난 축복이며 필연이었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인생 후반기에 그 인연의 땅과 마주하며 살게 될 줄 누가 상상조차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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