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135인, 반대 24인, 기권 24인으로 가결
지난 23일 오후 서울 도봉구 강북힘찬병원에서 직원들이 수술실 폐회로텔레비전(CCTV)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7년에 걸쳐 부침을 거듭했던 ‘수술실 폐회로텔레비전(CCTV·시시티브이) 설치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릴 근거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환자의 권익을 한걸음 진전시켰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시시티브이 설치·운영비를 의료기관이나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어떻게 나눠서 부담할지 등에 대해서는 정해진 게 없어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31일 본회의를 열어 수술실 내부에 시시티브이를 설치하도록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135명의 의원이 찬성했고, 24명이 반대, 24명이 기권했다. 개정안은 전신마취 등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의료기관은 수술실 내부에 시시티브이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시행일은 2년 유예 기간을 거쳐 2023년 8월30일부터다.
이에 따라 법 시행 이후 환자나 환자 보호자가 요청할 경우에는 의료기관은 수술 장면을 의무적으로 촬영해야 한다. 다만, 응급 수술이나 위험도 높은 수술, 전공의 수련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의료기관장이나 의료인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뒀다. 수술 장면을 촬영할 때 녹음 기능은 사용할 수 없지만, 환자와 참여 의료인 등 정보 주체 모두가 동의할 때는 녹음도 가능하다.
의료기관장은 촬영 영상이 분실·도난·유출·변조·훼손되지 않도록 저장장치와 네트워크를 분리해야 하며, 접속 기록 보관과 출입자 관리 방안 마련 관련 조처도 해야 한다. 또 범죄 수사, 공소 제기·유지, 법원 재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의료분쟁 조정·중재 절차 등으로 관련 기관이 요청하는 경우나 환자와 의료인 모두의 동의를 받은 경우가 아니면 촬영 영상을 열람하게 하거나 제공해선 안 된다. 의료기관은 영상을 30일 이상 보관해야 하고, 촬영 정보 열람 비용을 요청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
수술실 시시티브이 의무화법은 수술실 생일 파티 등의 논란으로 2015년 처음 국회에서 발의됐다. 이후 계속되어온 수술실 내 성범죄와 무자격자 대리수술 등으로 19·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진척되지 못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시시티브이 의무화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의 인권 보호에 부합한다며 법안에 찬성하는 의견을 냈다. 이후에도 간호조무사 대리수술 사건 등이 드러나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안규백,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법을 발의했고, 지난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25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어 “2014년 강남 일대 미용성형 병의원 유령수술 실태를 고발한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무자격자 대리수술로 아들을 잃은 경험을 토대로 1인 시위로 수술실 시시티브이 입법화에 앞장선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 등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법안은 지금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환자와 의료인 모두 100% 만족할 수 없겠지만, 유예 기간 2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 환자와 의료인 모두 동의할 합리적 방안을 찾아가길 희망한다. 법안의 국회 통과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저녁 성명을 내어 “2021년 8월31일은 대한민국 의료 역사에 오점을 남긴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법안이 시행되기까지 2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지속해서 법의 잠재적 해악을 규명하고, 선량한 집도의들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법이 규정하는 직업 수행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헌법소원을 제기해 법정 투쟁도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법은 시행령 제정 등의 과정에서 시시티브이 설치·운영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 등의 쟁점을 두고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에 “국가 및 지자체는 시시티브이 설치 등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지원 규모 등을 정하지 않아 정부와 병원 사이에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감시 환경 아래에서 의료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환자와 의사 사이 불신 조장 등을 이유로 법 제정에 강하게 반발해온 대한의사협회와 병원협회가 비용 부담에도 소극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신마취 수술이 많은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같은 필수 중증 수술과목을 지원하는 의사들이 법제화에 부담을 느끼면서 정원 미달 상황이 악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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