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 오락가락…상식 어긋난 구시대 행태

 

지난 1일 <MBN> 토론회에 출연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손바닥에 한자로 ‘왕’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MBN> 유튜브 채널 갈무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 때 손바닥에 한자로 ‘임금 왕’ 자를 써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여당과 야당 내 경쟁 후보들은 ‘주술적 의미 아니냐’, ‘시대착오적이다’라며 비난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3일 “지지자가 왕과 같은 기세로 자신감 있게 토론 잘하라고 응원의 뜻으로 써준 것”이라며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얘기는 억측”이라고 해명했다. 윤 전 총장 쪽은 해프닝이라고 치부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우선 윤 전 총장 쪽 해명이 오락가락하고 상식과 맞지 않는다. 문제가 불거지자 처음에는 최근 5차 토론회에서만 벌어진 일인 것처럼 해명하더니 3·4차 토론회에서도 같은 글자가 손바닥에 쓰인 장면이 나오자 말을 바꿨다. ‘글자를 지우려 했지만 지워지지 않아 그냥 토론회에 나섰다’는 해명도 손바닥 글자가 토론회 때마다 나타났다 지워졌다를 반복한 것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우지 못했던 게 아니라 최소한 윤 전 총장의 묵인이 있었던 셈이다. 애초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면, 두번째부터는 아무리 지지자의 요청이라도 정중히 거절했어야 마땅한 일 아닌가.

 

무속적 의미를 둔 행위인지 여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윤 전 총장은 지난 8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오찬에도 역술인과 동석했던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무속과 관련한 구설이 자꾸 나오는 것 자체가 정치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무엇보다 경선 토론회는 민주주의 정치 과정의 핵심인 선거에서 중요한 절차 중 하나다. 국민 앞에서 대통령 후보로서 자질과 정책을 검증받는 공식적인 무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리에서 전근대적 통치를 상징하는 ‘임금 왕’ 자를 손바닥에 써 반복적으로 노출한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할 수 없다. 시대에 맞지 않는 통치관을 가진 게 아니냐는 의구심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윤 전 총장은 “요즘 세상에 왕이 어딨나”라고 해명했는데, 그렇다면 더욱 신중했어야 할 일이다.

 

윤 전 총장 쪽은 과도한 논란이라는 입장이지만, 본인은 물론 선거 과정 자체를 희화화하는 결과를 낳은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윤 전 총장은 그동안에도 여러 분야의 정책과 관련한 말실수로 비판받고 뒤늦게 해명하곤 했다.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정치인으로서 품격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말기 바란다.

 

윤석열 손바닥에 ‘王’자…“‘오방색 타령’ 최순실과 뭐가 다른가”

이상한 캠프 해명도 논란…경쟁 주자들 “무속 대통령 하려 저러나” 맹폭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세 차례의 당내 경선 토론회 때 손바닥에 한자로 ‘왕’자를 쓰고 임한 것을 두고 당내 대선주자들이 맹폭을 퍼붓고 있다.

 

홍준표 의원은 3일 페이스북에 “점으로 박사학위 받는 것도 처음 봤고 무속인 끼고 대통령 경선 나서는 것도 처음 봤다”며 “늘 무속인 끼고 다닌다는 것을 언론 통해 보면서 무속 대통령 하려고 저러나 의아했지만 손바닥에 부적을 쓰고 다니는 것이 밝혀지면서 참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윤 전 총장의 아내 김건희씨의 논문 주제가 ‘온라인 운세 콘텐츠’에 대한 내용인데 이어, 윤 전 총장까지 ‘무속신앙’에 의존한 정황이 있다고 연결지은 것이다.

 

홍 의원은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시켜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허무맹랑한 소문 하나로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는데 이제 부적 선거는 포기하시기 바란다”고 일갈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에 “과거 오방색 타령하던 최순실 같은 사람과 윤 후보님은 무엇이 다르냐”며 “손바닥에 글자 하나 쓴다고 사람이, 우리 당이, 대한민국이 과연 달라질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여당 대선후보가 조선 시대 왕처럼 상대방에게 봉고파직·위리안치 형벌을 내렸다. 이에 질세라 야당 후보는 손바닥에 ‘왕’자를 새겼다. 대선이 대통령이 아니라, 상대 진영을 초토화시킬 왕을 뽑는 선거가 되어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16일 1차, 23일 2차 토론회까지만 해도 윤 전 총장 손바닥에서 ‘왕’자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26일 3차 토론회 때부터 지난달 28일 4차, 지난 1일 5차 토론회에선 왼손 손바닥에 ‘왕’자가 그려져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왕’자의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다른 것으로 보아 매번 새로 쓰인 것으로 추측된다. 윤 전 총장이 무속신앙과 가까운 행보를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8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오찬에도 친분이 있는 역술인과 함께 동석했던 사실이 해당 역술인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윤 전 총장 쪽의 이상한 해명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윤 전 총장 캠프는 <한겨레>에 “윤 전 총장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지자분이 3차 토론회 때부터 ‘기를 불어 넣어 주겠다”며 손바닥에 써 준 것”이라며 “마치 커닝페이퍼 적어놓은 것처럼 비칠 수도 있고 해서 닦아보려고 했지만 잘 안 지워져서 그냥 토론회에 나섰다고 한다. 6차 토론회 때도 (지지자분이 응원하러) 나오실 텐데 또 (‘왕’자를) 써주시면 그대로 나가실 것”이라고 했다. 지지자들의 성원이었을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한 것이다.

 

그러나 유 전 의원 캠프 권성주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어 “토론이 겁나 후보가 부적을 붙이든 굿을 하든 자유이나 국민을 속이려 해서는 안 된다”며 “유성 매직은 코로나19 시대 곳곳에 비치된 손 소독제로 말끔히 지워진다. 무속에 의지하는 후보와 거짓말하는 참모들은 절대 권력을 쥐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라고 맹비난했다. 김미나 기자

 

윤석열 ‘王’자 논란에…홍준표 “부적 선거 포기하라”

 

윤석열, 홍준표 겨냥 “속옷까지 빨간색 소문 나”

윤 캠프 “홍준표 이름도 역술인이 지어준 것”

유승민 “4차 혁명 시대에 미신 믿는 후보 괜찮나”

홍준표 쪽 “김건희 개명과정도 풀어내보라”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홍준표 의원이 3일 부산시당에서 열린 ‘제이피(jp) 희망캠프’ 부산 선대위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지지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당내 경선 티브이(TV) 토론 때 손바닥에 ‘왕(王)’자를 적은 모습이 포착되면서 당내 주자들 사이 난타전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시작된 해당 논란은 때아닌 ‘무속신앙 공방’으로 연결되는 모양새다.

 

포문은 홍준표 의원이 열었다. 그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늘 무속인 끼고 다닌다는 것을 언론 통해 보면서 무속 대통령 하려고 저러나 의아했다”, “손바닥에 부적을 쓰고 다니는 것이 밝혀지면서 참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부적 선거는 포기하라”고 윤 전 총장을 직격했다.

 

홍 의원은 이날 부산 수영구 국민의힘 부산시당에서 열린 ‘선대위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대통령 선거가 마치 무속 대통령 뽑는 선거처럼 됐다. 저는 이런 대통령 선거 처음 봤다”며 “(무속인들이) 직접 경선에 참여해서 후보에 부적 써주고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참 유치하고 우습다”고 일갈했다. 경쟁 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도 이날 경북 김천을 방문한 자리에서 “손바닥에 ‘왕’자를 새겨서 티브이 토론에 나온 것은 미신으로밖에 저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신을 믿는 그런 사람이 후보가 돼서야, 또 대통령이 돼서야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러자 윤 전 총장은 손바닥 ‘왕’자가 ‘미신’ ‘부적’이라는 일부 주장을 적극 반박하고 나섰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독립서점 ‘최인아 책방’에서 캠프 청년위원회 발족식을 연 뒤 기자들과 만나 “지지자가 왕과 같은 기세로 자신감 있게 토론 잘하라고 응원의 뜻으로 써준 것”이라며 “주술 운운하는 분들이 있는데 세상에 부적을 손바닥에다가 펜으로 쓰는 것도 있느냐”고 되물었다. 또 “지지자의 응원도 좋지만 들어갈 때는 신경을 써서 지우고 가는 게 맞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다. 깊이 생각을 못 했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그러면서 자신이 원래부터 점쟁이와 역술인들과 가깝다는 홍 의원 지적에 정면으로 맞섰다. 윤 전 총장은 이어 “어떤 분은 속옷까지 빨간색으로 입고 다닌다고 소문이 났다. 뻔히 아는 정치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건 우리나라 정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가당치 않다”고 맞받았다. 이런 발언은 평소 붉은색 패션을 선호해 온 홍 의원을 저격한 것으로 해석됐다.

 

윤 전 총장 캠프에서는 홍 의원의 개명과정에 역술인이 개입했다며 가세했다. 홍 의원은 검사 시절 홍판표라는 이름을 홍준표로 바꾼 바 있다. 윤 전 총장 캠프 김기흥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어 “원래 홍판표였던 홍 의원의 현재 이름은 역술인이 지어준 것이라는 걸 홍 의원은 잊었는가”라며 “본인의 개명이야말로 주술적이란 지적에 뭐라 변명할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그러자 홍 의원 캠프는 윤 전 총장 아내의 개명과정을 걸고넘어졌다. 홍 의원 캠프 소속 여명 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홍 의원 중간자를 ‘판’과 뜻은 같으면서 발음이 다른 ‘준’자로 하라며 충고한 사람은 당시 검찰청 소년선도위원이었던 성명철학자 류화수씨”라며 “특정한 염원을 담은 손바닥 ‘왕’자 와는 비교 불가다. 윤 전 총장의 부인 김건희씨도 윤 전 총장과 결혼 직전 김명신에서 김건희로 개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어디 한 번 김건희씨 개명과정도 풀어내 보라”라고 반발했다. 김미나 기자

 

빨라진 윤석열 주변 수사…김건희·윤우진 검찰 소환 임박했나

주요 관련자들 잇달아 구속영장…검찰 수뇌부도 '더 미룰 수 없다' 결단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과 측근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관련자들에 대해 잇달아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수사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선까지 5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사건 처리가 지연될수록 검찰이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어 관련 수사를 서둘러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2부(조주연 부장검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이모씨 등 3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윤 전 총장의 배우자인 김건희 씨는 이 사건에서 자금을 대는 역할을 맡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2012∼2013년 도이치모터스 자회사인 도이치파이낸셜의 전환사채를 시세보다 싼 가격에 매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은 최근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 측과 김씨 간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유의미한 단서를 포착하고 관련 업체들을 압수수색했다.

 

다만 법원이 지난달 29일 이씨에게 도주·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한차례 구속영장을 기각한 만큼, 검찰이 핵심 증거를 추가로 확보했느냐에 따라 구속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을 둘러싼 '스폰서 의혹'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윤 전 서장은 법조계에서 '대윤' '소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윤석열 전 총장과 가까운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검사장)의 친형이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1부(정용환 부장검사)는 2일 윤 전 서장의 측근인 낚시터 운영업자 최모씨를 구속했다.

 

최씨는 인천 지역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는 A씨로부터 각종 인허가 로비 명목으로 수차례에 걸쳐 6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 가운데 수표 1억원을 윤 전 서장과 함께 받은 돈으로 보고 있다.

 

윤 전 서장은 또 사업가 A씨를 비롯한 '스폰서'들로부터 금품을 받고 법조인·세무당국 관계자들을 소개해줬다는 의혹을 받는다.

 

윤 전 총장이 윤 전 서장에게 직접 변호사를 소개해줬다는 의혹도 제기된 적이 있어 수사 결과에 따라 정치적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부 [연합뉴스]

 

윤 전 총장 주변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의 핵심 관련자들이 잇달아 구속되거나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1년 넘게 이어진 김건희 씨와 윤 전 서장을 둘러싼 의혹 수사는 두 사람으로 향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김씨와 윤 전 서장 소환 조사가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연이은 압수수색으로 증거를 확보한 검찰이 그간 미뤄왔던 소환 조사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검찰은 유력 대권주자가 연루된 만큼 조사 시기와 방법을 놓고 고민을 거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논란에 휘말려 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도 최근 사건 처리를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쪽에서는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둘러싼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의 칼자루를 쥔 검찰이 정치적 공정성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는 기제가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의혹을 고강도로 수사하는 상황이라 야권에서 제기해온 정치 편향 시비를 비껴가며 '균형추'를 맞추게 됐다는 얘기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29일 김태훈 4차장검사 산하에 검사 16명으로 전담 수사팀을 꾸린 뒤 화천대유자산관리와 관련자들의 사무실·주거지를 압수수색하고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행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대장동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