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승리 미 대선 1년 지났지만 결과 부정하며 ‘재출마’ 띄워
공화당 지지층 78% “재출마를”…탈세 수사· 트위터 봉쇄도 변수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가운데)가 지난 30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4차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대 휴스턴 애스트로스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애틀랜타/AP 연합뉴스
최근 미국 <뉴욕 타임스> 독자 의견란에 공화당의 리즈 체니 하원의원이 2024년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렸다. 체니 의원은 지난 1월 아직 대통령이던 도널드 트럼프(75)의 두번째 탄핵안에 찬성했고, 현재는 1·6 의사당 난입사태 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공화당 내 대표적인 ‘반트럼프’ 인사다. 그가 제3당 후보로 출마하면,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공화당 지지층 가운데 반트럼프 표를 흡수해 ‘트럼프의 당선’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미국에서 트럼프의 2024년 재출마 시나리오는 유권자들이 이런 전략적 고민을 해야 할 정도로 ‘현실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의 우려처럼 3년 뒤 트럼프의 컴백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3일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로 끝난 미 대선 1주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대선 패배 뒤 1년이 지나도록 트럼프는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백악관 재입성을 노리는 왕성한 현역 정치인으로 행보하고 있다. 그는 증거도 없이 ‘지난 대선은 사기였다’는 주장을 펴면서 집회를 열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지지, 탄핵 찬성 의원 10명 등 당내 반대 세력에는 저주를 보내며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제45대 미국 대통령’ 명의로 매일같이 바이든 대통령 비난 성명을 쏟아내고, ‘미국을 구하자’며 끊임없이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재출마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그들(민주당)을 세 번째 깨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거나, 자신이 출마하지 않을 유일한 이유는 “의사에게서 안 좋은 전화를 받았을 경우”라고 하는 등 출마 의사를 강력하게 내비치고 있다. 그의 오랜 참모인 제이슨 밀러는 지난 9월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재출마 가능성을 “99~100% 사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가 출마 선언을 하려는 것을 참모들이 좀더 기다리자며 말렸다고 최근 보도했다. 박홍민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는 <한겨레>에 “트럼프는 ‘출마할 수도 있다’고 흘리는 것만으로도 여론의 관심과 영향력 등 원하는 결과를 얻고 있다. 공식적으로 캠프를 꾸려 사람 고용하고 당국에 자금을 신고하는 등의 불편을 겪는 것보다 출마 선언을 최대한 뒤로 미루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재출마를 노리는 트럼프의 가장 큰 밑천은 강력한 충성 지지층이다. 퀴니피액대학이 10월15~18일 성인 134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트럼프가 2024년에 다시 출마하는 걸 보고 싶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8%는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공화당 지지층에서는 78%가 트럼프 재출마를 원한다고 응답했다. <폴리티코>·모닝컨설턴트가 10월27일 발표한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35%, 공화당 지지층에서는 60%가 지난 대선 결과가 뒤집혀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넬대학이 10월20일 발표한 조사에서는 ‘오늘이 2024년 대선이라면 누구를 찍겠냐’는 질문에 바이든과 트럼프가 40%씩 동률을 기록했다.
이런 인기 때문에 공화당에서 트럼프에 필적할 상대는 아직 안 보인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톰 코튼 상원의원 등 잠재적 주자들은 출마 의사를 숨긴 채 트럼프 눈치를 보고 있다. 의사당 난입사태와 관련해 트럼프 책임론을 제기했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마저 트럼프가 재출마하면 “절대적으로” 지지하겠다고 하는 등, 공화당 지도부 또한 트럼프의 자장 안에 머물고 있다.
물론 공고한 지지층만으로 당선이 보장되진 않는다.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성공한 사업가’, ‘워싱턴 정치 파괴자’ 등의 이미지에 힘입어 당선됐던 2016년에 비해 트럼프의 2024년 재도전에는 장애물도 상당하다. 미 헌정사상 하원에서 두번 탄핵당했다는 불명예, 대선 결과 부정과 의회 폭동 추동, 무책임한 코로나19 대응 등의 전력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검찰 수사도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뉴욕 검찰은 트럼프의 사업체인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의 탈세 등 비리를 수사 중이고, 조지아주에서는 그가 지난 대선 직후 주 장관에게 개표 결과 뒤집기를 압박한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민주당)은 “트럼프는 감옥에 안 가기 위해서 2024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1·6 의사당 난입사태 특위 조사나 8000만명의 팔로어를 거느렸던 트위터 계정을 빼앗기는 등 예전처럼 대중에게 노출되기 어렵다는 점도 지난 대선보다 불리해진 점이다. 트럼프는 이에 맞서 자체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곧 출시해 대반격을 시도할 예정이다. 페이스북, 넷플릭스, <시엔엔>(CNN) 등에 맞먹는 ‘트럼프 미디어 앤 테크놀로지 그룹’을 출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냉정하게 따져볼 때 트럼프의 본선 경쟁력은 어떨까. 지난해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는 각각 8100만여표, 7400만여표를 득표했다. 트럼프가 재출마할 경우 민주당 지지층 결집도를 높일 가능성이 높은 반면, 트럼프가 중도표까지 확장해 7400만표를 훨씬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트럼프는 다음 대선 때 78살의 고령이 된다. 1984년 이래 2000년 한차례만 빼고 미 대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온 앨런 릭트먼 아메리칸대 교수는 일찌감치 지난 3월 미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현직도 아니고 (성공한 사업가) 브랜드도 무너졌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다음 대선에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재 트럼프 재출마는 ‘상수’에 가깝다. 미국 정치를 가까이서 관찰해온 송원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사무국장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음모론을 신봉하면서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트럼프의 ‘트루스 소셜’에 빠져들 것이다. 그런 사람이 미국에 30~40%는 있다”며 “트럼프 재등장이 외국에서 볼 때는 말이 안 되지만 냉정하게 미국 현실을 보면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2024년 11월 대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어떤 확언도 위험하다. 하지만 내년 11월 중간선거가 트럼프의 미래를 가늠할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첫째 변수는 트럼프의 영향력이다. 래리 새버토 버지니아대학 교수가 운영하는 정치분석 뉴스레터 ‘새버토의 크리스털볼’의 존 마일스 콜먼 부편집장은 <한겨레>에 “트럼프가 지지한 후보들이 공화당 경선이나 본선에서 패배한다면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낡은 뉴스로 본다는 신호일 것”이라고 말했다. 두번째 변수는 중간선거를 계기로 공화당에 새 인물이 부상할지 여부다. 박홍민 교수는 “선거를 거치며 누군가 극적으로 공화당 안에서 붐을 일으키면서 대항마로 떠오른다면 트럼프 열기가 사그라들 것이다. 그런 인물이 안 나타난다면 트럼프가 본선까지 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결과조차 부정하는 트럼프가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은 그 자체로 미국의 극심한 분열과 민주주의 위기를 웅변한다. 콜먼 부편집장은 “트럼프가 출마하지 않더라도 그의 우파 포퓰리즘은 여전히 공화당 안에서 상당한 유용성이 있다”며 “트럼프는 직접 출마하지 않을 경우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2024년 백악관 복귀에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출마할 듯 냄새를 풍기면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지지자들의 관심 속에 자신의 본능을 충족하며, 사업적인 야심까지 불려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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