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석' 훼손 당사자가 ‘형소법 및 규칙’따라 '정석대로 가자'고 요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5월1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이 3일 다시 본격화했다. 지난 2월 마지막 증인신문이 이뤄진 뒤로 9개월 만이다. 양 전 대법원장 1심 재판은 ‘형사재판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정석대로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일반 형사재판에서는 지켜지기 어려운 모습이 많아 ‘황제 재판’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35-1형사부(재판장 임정택)는 3일 오전부터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고 전 대법관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1심 재판 증인신문을 다시 시작했다. 지난 4월부터 지난달 22일까지 무려 7개월 동안 이전 공판 내용 녹취파일만 재생한 터라, 이날 공판 시작 전 재판 관계자들은 9개월 만의 증인신문을 준비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2019년 2월 시작된 양 전 대법원장 1심 재판은 2년8개월째 계속되는 중이다. 최근 7개월 동안 녹취파일만 재생하게 된 이유는 양 전 대법원장 쪽이 형사소송법 및 규칙에 따른 절차를 정석대로 밟자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올해 2월 법관 정기 인사로 양 전 대법원장 1심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 3명이 모두 바뀌었는데, 양 전 대법원장 쪽은 앞선 증거조사 공판 녹취파일을 모두 재생하는 방식으로 새 재판부가 공판갱신절차를 밟을 것을 요구했고 새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일반적인 형사재판에선 보통 앞선 절차를 간략하게 요약해서 언급하는 방식으로 공판을 갱신한다. ‘사법정석’을 훼손한 당사자가 사법정석을 주장하는 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가 수용함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는 증거조사 녹취파일을 일일이 재생하는 방식으로 공판절차를 갱신했고 여기에 7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이날 9개월 만에 재개된 증인신문에는 법원행정처 윤리감사심의관이었던 최두호 수원지법 여주지원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형사공보판사였던 신재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출석했다. 최 부장판사에게는 2015년 불거진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비위 의혹과 관련해 감사위원회에 회부하지 않았던 경위에 대해 물었고, 신 부장판사에게는 201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공보판사로 재직하던 당시 수행했던 각종 업무와 관련한 신문이 이뤄졌다. 최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