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디니스타’ 혁명가에서 악명 높은 독재자로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과 그의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가 7일 대선 투표소에 들러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니카라과 대통령 공보사무실 제공. AFP 연합뉴스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이 8일 대선 승리로 4연임이자 통산 5선에 성공하며 영구집권의 길을 닦았다.

 

니카라과 선거관리 당국은 이날 대통령 선거 개표를 97.7% 진행한 상황에서 좌파 여당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의 오르테가 대통령이 75.92%의 득표율을 기록해 당선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2위 후보의 득표율은 14%, 나머지 4명은 1∼3%의 미미한 수준이었다.

 

2007년 이후 연임하고 있는 오르테가 대통령은 2027년 1월까지 5년 더 집권하게 된다. 지난 2016년 대선에서 부통령 러닝메이트였던 그의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도 부통령 임기를 5년 더 연장하게 됐다. 앞서 오르테가는 1979년 소모사 장기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산디니스타 혁명을 이끈 뒤 과도 연립정부 수반을 거쳐 1985년~1990년 대통령을 역임한 바 있다.

 

이번 결과는 대선 전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르테가는 유력 야당 정치인 몇십명을 무더기 체포해 사실상 그의 권위에 도전할 만한 세력을 모두 제거한 뒤 이번 대선에 임했다.

 

이번 승리로 영구집권의 길을 닦았지만, 오르테가 대통령의 앞날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이번 대선을 “사기극”이라고 규정하며 오르테가 정권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어 “니카라과 정권의 비민주적 행위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외교, 동맹과의 공동 행동, 제재, 비자 제한을 계속 적절히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민주당 의원들 일부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오르테가 정권에 대한 제재 강화를 요구했다. 유럽연합도 성명을 내어 오르테가가 반대파와 언론인, 활동가들을 “조직적으로 구금하고 고문하고 협박했다”며 “이번 선거로 니카라과가 독재국가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비판했다.

 

해외 거주민의 국내 송금이 국내 경제에 큰 몫을 차지하는 니카라과는 2018년 대규모 시위와 뒤이은 코로나19 확산 등의 여파로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 등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면, 니카라과 경제는 오르테가 정권이 더 통제하기 어려운 수렁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

 

쿠바와 베네수엘라, 러시아는 오르테가의 승리를 인정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의 외교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선거결과를 부인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박병수 기자

 

‘산디니스타’ 혁명가는 어떻게 ‘악명높은’ 독재자가 됐을까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과 그의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 부통령이 7일 대선 투표를 하고 있다. 니카라과 대통령궁 제공. 마나과/ AFP 연합뉴스

 

니카라과 대통령선거가 7일 저녁 종료되어 개표에 들어갔다. 돌출 변수가 없는 한 다니엘 오르테가(75) 현 니카라과 대통령이 4연임이자 통산 5선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1985년~1990년 한 차례 집권한 뒤 2007년부터 이번 선거 전까지만 해도 세 차례에 걸쳐 연임에 성공한 아메리카 대륙 현역 최장수 정상이다.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 이후 1985년까지도 실질적인 국가정상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 당선돼 2027년까지 임기를 연장하면, 30년이 넘는 장기집권을 하게 된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본디 1960년대부터 우파 소모사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운동을 이끈 좌파 혁명가 출신이다. 그는 1963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에 투신했으며 1967년엔 소모사 정권에 붙잡혀 7년간 투옥 생활도 겪었다. 이후 쿠바로 건너가 게릴라전 훈련을 받은 뒤 귀국해 1978~79년 대규모 봉기를 주도해 당시 소모사 데베일레 대통령을 몰아내고 산디니스타 혁명을 성공시켰다.

 

1979년부터 임시 과도연립 정부를 이끈 뒤 1984년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해 1990년까지 대통령을 지내며 10년 남짓 니카라과를 이끌었다. 이 기간에 그는 소모사 친·인척과 권력자들이 소유했던 토지의 몰수 및 재분배, 문맹 퇴치 운동, 의료체계 정비 등 사회경제적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산디니스타 혁명의 중남미 전파를 우려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오르테가를 축출하기 위해 경제제재와 함께 이른바 ‘콘트라’ 반군 지원에 나서면서, 니카라과는 다시 내전에 휩싸이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오르테가는 결국 1990년 대선에서 미국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야당 연합후보 비올레타 바리오스 데 차모로에게 패해 정권을 내놓게 된다. 그는 1996년, 2001년 다시 대선에 도전했지만 거푸 실패하고 만다. 절치부심한 오르테가는 2007년 대선에선 평화와 화해를 강조하며 이미지 변신에 나섰다. 한때 정적이었던 콘트라 반군 출신 하이메 모랄레스 코라소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끝에 어렵게 당선됐다.

 

권력을 내놓은 지 17년 만에 집권 2기를 연 오르테가 정권은 비교적 순항했다. 공공의료와 교육시설 확충 등 사회개혁을 재가동하면서 집권 1기 때보다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등 정책적 유연성을 보였다. 마침 차베스의 베네수엘라가 석유를 시장가격보다 유리한 가격에 제공하는 등 우호적인 주변 환경에 힘입어, 경제도 2013~2018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이 4~5%에 이르는 등 탄탄한 성적을 거뒀다.

 

자신감을 얻은 오르테가는 정치적으로 장기집권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2011년 대선에서 다시 승리한 뒤 그는 2014년 산디니스타가 다수당인 의회를 움직여 대통령 연임 금지 조항을 없애는 개헌을 단행했다. 2년 뒤 2016년 대선에서는 러닝메이트로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70) 부통령과 함께 나서, 세계 최초로 부부 대통령·부통령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부인 무리요와 함께 나섰다.

 

그러나 2018년 4월 연금 기여금은 늘리고 연금 수령액은 줄이는 연금개혁을 발표했다가 이에 반발한 대중들의 대규모 항의시위로 위기를 겪었다. 오르테가는 곧바로 연금개혁안을 철회했으나 불붙은 시위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정부가 친정부민병대 등을 동원해 폭력 진압에 나서면서 시위는 3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은 유혈사태로 막을 내렸다.

 

그동안 순항하던 니카라과의 경제는 이후 대규모 시위에 따른 사회 불안 등으로 곤두박질쳤다. 2018년 경제성장률이 -3.4%로 후퇴하더니, 2019년과 2020년엔 코로나19 확산이 겹치며 -3.7%와 -2.0%로 주저앉았다.

 

그럼에도 오르테가는 장기집권 야욕을 거두지 않았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오르테가는 지난 5월부터 크리스티안 차모로 바리오스와 아르투로 크루스 등 유력 야당 정치인 몇십명을 “국가보안”이나 “테러 방지” 등의 명목으로 체포하거나 추방했다. 사실상 오르테가 대통령의 4연임을 저지할 도전 세력을 사전에 제거한 것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오르테가의 이런 장기집권 시도를 강력 비판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고 민주적이지도 않은 팬토마임(무언극) 선거”라며 강력한 추가 제재를 할 뜻을 내비쳤다. 그는 “오르테가-무리요 가족은 독재자로 니카라과를 지배하고 있으며, 40년 전 오르테가와 산디니스타가 맞서 싸웠던 소모사 정권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니카라과 정부에 책임을 묻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박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