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내 접종-미접종자 갈등 깊어져

명절시즌에 별거, 모임 거부 등 마찰

부작용 우려에 백신 음모론이 틈 벌려

 

미국 캘리포니아 주도인 새크라멘토의 주의사당 앞에서 코로나19 백신 학생 의무 접종에 반대하는 이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새크라멘토/AP 연합뉴스

 

이달 8일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자들에게 국경을 전면 개방하자 미국 공항들에서는 1년 반 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들의 눈물의 상봉이 잇따랐다. 하지만 정작 미국 내에서는 접종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가 15일 보도한 웨스트버지니아주 간호사 로럴 호트의 사례는 갈등이 별거로까지 이어진 경우다. 주도 찰스턴 교외의 호숫가에서 살아온 호트는 지난 5월 집을 떠났다. 접종 거부자인 딸 샘과 그 동거남에게 이사하라고 요구했지만 남편이 집을 떠나지 않겠다는 딸을 편들자 13㎞ 떨어진 막내딸 집으로 옮겼다. 호트는 자가면역질환 탓에 고위험군에 속하는데도 접종을 거부하는 샘을 “너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달 심장마비로 숨진 남편의 장례식에서야 딸을 다시 만난 호트는 “다시 만날 때까지 감염돼 죽지 않기를 기도할게”라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그런데 막내딸 집도 완전한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코앞에 사는 막내딸의 전 남편 부모도 접종 거부자들이었다. 두 손주를 봐주기도 한 사돈들은 9월에 코로나에 감염됐다.

 

미국 언론들은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올해는 11월21일)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미국인들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이 “당신과 당신 가족이 접종했다면 가족 및 가까운 친구들과 보통 때처럼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를 즐기라”고 했지만 가족 모임을 해야 할지, 미접종자를 배제할지, 완강히 버티는 미접종 가족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고민거리다. 연간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독감철도 겨울과 함께 다가와 걱정이 더 크다.

 

미네소타주 쿤래피즈에 사는 조나탄 미첼은 지난해 취소한 추수감사절 모임을 고민 끝에 올해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에이피>(AP) 통신에 말했다. 희귀 신경질환을 지닌 그는 접종자만 오라고 할 수도 없다며, 접종을 마친 친구들과의 모임으로 대체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미접종자인 장인과 처남을 보겠다고 고집한다며 “백신 반대를 고집하는 몇몇 친구나 지인들과는 관계를 끊었지만 가족과는 그럴 수 없다”며 난감해 했다.

 

접종 거부자들은 가족 모임 시즌이라고 해서 ‘신념’을 굽힐 수 없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사는 에바 켈러는 두 차례 바이러스에 감염됐지만 남편과 달리 백신을 맞지 않고 있다. 그는 “남편 가족은 접종 전까지는 자기들 집에 발을 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75만명이 사망한 미국의 접종 완료율은 15일 기준 59%(18살 이상 71%)다. 강력한 접종 권고에도 불구하고 미접종자가 허다한 데는 인터넷 음모론도 한몫을 한다. 호트의 딸과 동거남은 정부와 제약사들이 뭔가를 숨긴다는 주장에 공감하며 접종을 거부한다. 호트의 시동생도 정부가 사회보장 지출을 줄이기 위한 인구 감소책으로 ‘죽음의 접종’을 시행한다고 믿는다. 백신에 기생충이 있다는 주장도 퍼져 있다. 이들이 사는 웨스트버지니아의 접종 완료율은 41%로 미국에서 꼴찌다. 백신 거부는 음모론과 친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맹종하는 흐름과도 이어져 있다. 호트 막내딸의 전 시부모도 백신은 치명적이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내 미셸이 사실은 남자라고 손주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분열뿐 아니라 ‘백신 분열’도 미국의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린넬대의 칼라 에릭슨 교수(사회학)는 코로나가 긴급한 보건 우려로부터 장기적인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으로 의미가 바뀌고 있다고 <AP>에 말했다. 이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