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 첫 화상회담
대만·무역 등 3시간14분 논쟁…각자 입장 되풀이하며 신경전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15일 워싱턴 백악관의 루스벨트 룸에서 화상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이번 회담은 지난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10개월 만에 처음 열리는 것이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어색한 표정으로 회의장에 입장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면에 설치된 화면 속의 ‘옛 친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사람 좋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지난 1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뒤 무려 열달 만에 미·중 정상이 화상 회의를 통해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두 정상의 웃음은 여기까지였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15일(미 동부시각·한국시각 16일) 열린 첫 화상 정상회담에서 대만·인권·무역 문제 등에서 각자의 입장을 되풀이하며 날카롭게 부딪쳤다. 2·9월 두차례의 정상 간 통화와 외교장관 등 고위급 회담에 이어 열린 정상회담에서조차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더 높아지면서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 낀 한국 등 주변국에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백악관 발표와 중국 관영 <신화통신> 보도를 보면, 두 정상은 이날 194분간 이어진 회담에서 최근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대만을 놓고 장시간 논쟁을 벌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고수할 것이라는 원칙을 밝히면서도, 대만해협에서 현재 상태를 변경하거나 평화·안정을 해치려는 일방적 시도엔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대만해협의 정세가 긴장되는 이유는 대만 당국이 ‘미국에 기대 독립을 도모’(倚美谋独·의미모독)하기 때문이고, 미국의 일부 인사들이 ‘대만으로 중국을 견제’(以台制华·이태제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불장난을 하면 불장난을 한 사람이 반드시 자신을 태우게 된다”며 맞불을 놓았다. 이어,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최대한의 성의와 최선을 다해 평화통일의 비전을 이루려 하겠지만 만약 대만 독립·분열 세력이 도발하고 심지어 레드라인(红线·홍선)을 돌파하면 우리는 부득불 단호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 머리발언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경쟁이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게 두 정상의 책임”이라며 “상식적 가드레일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회담 뒤 미 정부 고위 관리는 기자들에게 “대만과 관련해 가드레일이나 다른 어떤 양해의 형태로 새롭게 만들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 양국이 의미 있는 접점을 찾는 데 실패했음을 내비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중국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신장, 티베트, 홍콩의 인권 문제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또 “자유롭고 개방되고 공정한 국제 시스템을 진전시킬 수 있도록 21세기의 통행 규칙을 동맹·파트너들과 함께 보장할 것”이라고 말해, 중국에 국제 규범 준수를 촉구했다. 그는 시 주석에게 1단계 미-중 무역 합의 준수도 강조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양국 경제무역 문제를 정치화하지 말아야 한다”며 “미국 쪽은 국가 안보 개념의 남용과 확대, 그리고 중국 기업 때리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맞섰다. 시 주석은 “상호 존중, 평화 공존, 협력·상생”을 미-중 공존의 세 원칙으로 제시하면서 “제로섬 게임을 하지 말자”고 했다.
북핵 등 한반도 현안은 회의 막판에 짧게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미·중 양쪽 자료에 두 정상이 아프가니스탄, 이란 핵문제, 한반도 정세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는 구절이 담겼다. 워싱턴 베이징/황준범 정인환 특파원
‘돌아온 미국’ 대 ‘달라진 중국’…향후 간극 메우기 쉽지 않을 듯
[미-중 정상회담 무엇이 논의됐나]
관계 악화 방지, 협력 심화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민주주의·대만 등 구체 현안에선 한치도 안 물러나
정상회담 성과 못 내며 갈등 장기화 불가피해질 듯
15일 오후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화상 회담 모습. 신화통신 갈무리
15일 오후 열린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는 우려했던 그대로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대만 등 핵심 현안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정상은 그동안 상대를 겨냥해 해왔던 말을 재차 고스란히 주고받으며, 공동 발표문조차 없이 3시간 남짓(194분)한 회담을 마무리했다.
이날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미-중 관계 회복과 악화 방지의 중요성엔 원칙적으로 공감했다. 관영 <신화통신>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시 주석은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등 지구적 차원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건강하고 안정적인 중-미 관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양국 간 경쟁이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상식에 기반한 가드레일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의사소통 채널을 열어둬야 한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각론에선 인식 차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시 주석은 양국 관계의 3대 원칙으로 △상호 존중 △평화 공존 △협력 상생을 제시했다. 이어 “상대방의 사회제도와 발전 경로, 핵심 이익과 중대 관심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어느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은 지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상호 이익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을 발전을 가로막으려 한다’는 중국 내 인식을 그대로 쏟아낸 셈이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양국 관계의 복잡성”과 “책임성 있는 경쟁”을 앞세웠다. 회담의 목적도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인 대화 기회”를 통해 “다양한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의도와 우선순위를 제시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는 “미국의 이익과 가치를 지키고, 동맹·우방국과 함께 자유롭고 개방적이고 공정한 국제질서 유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도 중국을 비판할 때마다 ‘자유·개방·공정’을 거론한 바 있다.
이런 인식 차는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관점 등에서 도드라졌다. 시 주석은 “민주주의는 하나의 맞춤형 제품이 아니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는 해당국 국민이 스스로 판단해야 하며, 민주주의의 형식이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는 것 자체가 비민주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인권 문제를 논하고 싶지만, 인권 문제를 빌미로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등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의 체제를 바꾸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재차 밝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백악관 자료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은 “신장위구르·티베트·홍콩 상황을 비롯한 광범위한 인권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했”을 뿐이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인권 문제가 여러번 거론됐으며, 바이든 대통령이 솔직하고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 특히 중국이 국제사회의 규범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규칙 변경을 시도하려는 데 대해서도 우려했다”고 전했다. 양국 간 ‘핵심 현안’인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도 양쪽은 강도 높은 언어를 주고받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결국, 양국 정상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미-중 고위급 전략대화(3월·앵커리지)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부장-셰펑 중 외교부 미국 담당 부부장 회담(7월·중국 톈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좌관-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 회담(10월·스위스 취리히)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왕이 외교부장 통화(8월·11월) 및 회담(10월·이탈리아 로마) 등의 논의를 고스란히 반복하는 데 그쳤다. 최고 수위의 외교수단인 정상회담마저 공전되면서, ‘돌아온 미국’과 ‘달라진 중국’의 간극은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베이징 워싱턴/정인환 황준범 특파원
미-중 관계 악화에 두 정상 ‘오랜 우정’까지 깨지나?
부통령-부주석 시절부터 “옛 친구”라 불러 온
바이든-시진핑 우정 양국 관계 악화로 싸늘해져
2012년 12월 부주석 시절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로스앤젤레스의 국제연구학습센터에서 학생들이 양국의 우의 증진을 기원하는 문구를 넣어 선물한 티셔츠를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과 함께 들어보이고 있다.
“대선에서 이겼을 때 축하 전화를 해줘 고맙다. 매우 정중했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직접 대면하는 것만큼 좋지는 않지만, 내 오랜 친구를 보게 되어 매우 기쁘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15일(미 동부시각·한국시각 16일) 화면으로 얼굴을 마주한 바이든 대통령(78)과 시 주석(68)은 부드러운 분위기로 회담을 시작했다. 악화한 미-중 관계에 견줘 볼 때 상대적으로 따뜻한 태도로 인사를 나눈 것이다. 지난 3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알래스카에서 만나 방송 카메라 앞에서 한 시간 동안 공개 설전을 벌인 것과는 대조되는 출발이었다.
그러나 미-중 양쪽이 전한 회담 결과를 보면, 두 정상은 11분간의 언론 공개 발언 이후 약 3시간에 걸친 비공개 회담에서는 한 치의 양보 없는 논쟁을 벌였다.
시 주석의 표현대로, 두 정상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2011년 8월 당시 바이든 부통령과 시 부주석은 중국에서 회담하고 협력을 강조했다. 베이징의 식당을 방문해 함께 국수를 먹기도 했다. 2년 뒤인 2013년에도 시 주석은 중국을 방문한 바이든 부통령을 “나의 오랜 친구”라며 환대했고, 바이든 부통령도 둘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두 정상의 관계도 싸늘해졌다. 지난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어떤 세계 지도자보다도 자신이 시 주석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서도, “시 주석에게 민주적인 구석은 전혀 없다”는 등 노골적인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 회담에서 시 주석이 내년 2월 베이징겨울올림픽에 바이든 대통령을 초청할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였으나, 올림픽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고 미 정부 당국자가 전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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