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국 반대하면 세계기록유산 심사 중단

일본의 강력한 요구로 유네스코 도입... '자승자박'꼴

외무성 간부 “합의 없이 사도광산 추천하면 제도 퇴색”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모습. 누리집 갈무리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앞두고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일본의 ‘강력한 요구’로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 다른 회원국의 이의가 있으면 심사를 중단시키는 제도를 지난해 새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반대에도 등재를 강행하면, 일본이 자신의 말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아사히신문>은 19일 사도광산 등재와 관련해 일본이 놓인 난감한 상황을 지적하며 “(중국이 추진한) 난징대학살 기록이 등재된 뒤 일본 정부의 호소에 따라 유네스코가 지난해 세계기록유산 등재 과정에서 회원국이 반대하면 등재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어 “일본이 (한국 등과) 합의 없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에) 추천하면 애써 도입한 제도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외무성 간부의 말을 인용해 일본이 놓이게 된 궁색한 처지를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앞선 2015년 10월 일본군이 1937년 난징 점령 이후 중국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난징대학살’ 관련 기록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중-일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다. 중립·공평해야 할 국제기구로서 매우 유감”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어, 2016년 한국·중국 등 8개국 14개 단체가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에 대해 등재 신청을 하자, 유네스코에 분담금을 내지 않는 등 ‘전방위적 압박’을 통해 지난해 4월 회원국이 반대하면 심사를 중단한 뒤 기한을 정하지 않고 당사국 사이에 대화를 계속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그 때문에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등재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이 제도는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것으로 사도광산과 같은 ‘세계유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진성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문화팀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유산의 종류가 다르다고 해서 논리가 달라질 수 없다”며 “사도광산 등재 신청을 강행할 경우 세계기록유산 제도개혁 논의과정에서 자신들이 주장했던 논리를 스스로 거스르는 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부의 시선이 신경 쓰여 등재 신청을 보류하면, 엄청난 내부 역풍이 예상된다. 자민당의 보수·우익 성향의 의원 등으로 구성된 ‘보수단결의 모임’은 18일 회의를 열고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추천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해 외무성과 문화청에 제출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이날 기자단과 만나 “등재 실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무엇이 가장 효과적인지 생각해서 검토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다음달 1일까지 사도광산의 등재 추진과 관련해 최종 결론을 내려 유네스코에 추천서를 내야 한다. 다음주 외무성이 주도하는 관계부처 회의와 각의(한국의 국무회의)를 거쳐 최종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도쿄/김소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