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제한 풀리는 10년 뒤 예측

완전 독점화 노선 인상폭 더 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으로 항공권 값이 최대 32%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한을 걸어둔 10년이 지난 뒤에는 이런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공정위 경제분석 결과를 보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 뒤 한국∼북미 중복노선에서 항공권 가격을 26.3% 인상할 것으로 예측된다. 중복노선이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둘 다 취항하고 있는 노선을 가리킨다. 유럽 중복노선에서도 가격을 11.5% 올릴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이들 항공사의 2013∼2019년 월별 노선 운임 데이터를 이용해 회귀분석한 결과로, 대한항공 쪽도 이런 예측 결과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았다.

 

특히 완전 독점화하는 노선에서 가격 인상폭이 클 것으로 예측됐다. 공정위는 노선별로 봤을 때 서울∼로스앤젤레스(LA)의 인상폭이 31.9%로 가장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노선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합산 점유율이 100%에 가까운 대표적 사례다. 1회 경유 항공권을 포함해도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마찬가지인 서울~뉴욕과 서울∼시애틀 항공권 가격도 각각 27.5% 오를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다른 항공사가 여럿 취항한 중국(7.6%)과 동남아시아(4.9%), 일본(2.9%) 노선에서는 인상폭이 비교적 작았다.

 

이는 아시아나항공이라는 경쟁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기준점으로 삼아 가격을 책정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2018년 작성된 대한항공 내부 문건도 아시아나항공을 ‘벤치마킹 항공사’라고 표현했다. 대한항공 점유율이 70% 이상인 미국 노선의 경우 아시아나항공보다 30만원 더 비싸게 가격을 책정한다는 내용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가격을 기준으로 두고, 자사 점유율이 높을수록 이보다 더 많이 비싼 값을 받는 식이었던 것이다.

 

이런 분석 결과는 가격 인상 제한 등이 풀리는 10년 뒤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들 항공사의 기존 평균 운임은 대체로 노선별 상한선의 절반에 못 미쳐 인상 여력도 충분하다. 가격 인상보다 소비자 저항이 덜한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비행기 좌석 간 간격을 줄이거나 질이 떨어지는 기내식을 제공하는 식이다. 비행기에서 볼 수 있는 미디어 콘텐츠가 줄고 무료로 싣는 수하물 무게가 지금보다 제한될 수도 있다. 마일리지 적립률이나 공제율도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바뀔 수 있는 요소다.

 

공정위의 가격 분석 결과는 다른 항공사가 해당 노선에 새로 진입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도출됐다. 새 항공사가 진출해 대한항공 쪽 점유율이 줄어들면 가격 인상도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이재연 기자

 

공정위 “34개 노선 팔아라”…대한항공 “수용” 표정관리

 

     아시아나항공 합병 심의 결과

 

34개 운수권 10년안 넘길 때까지 가격인상·품질저하 제한 조처 부과

북미 노선 LCC 진출 가능성 낮아 노선 매각 이행 안될 거란 전망도

국내 노선 6개 제외, 독점길 열려 마일리지 통합땐 고객선택지 제약

가격 억제 ‘행태적 조처’ 안 먹힐 듯 ‘황금시간 슬롯’ 외국사 진출 관건

 

 

“국제화물을 제외하고는 공정위 심사관의 모든 시정조치를 겸허히 수용합니다.”

 

지난 9일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을 심의하는 자리에서 대한항공 대리인의 변론은 이렇게 시작했다. 과징금 몇푼, 시정조치 문구 한두 글자를 놓고 거친 말이 오가는 심판정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대한항공은 왜 공정위의 제재에 반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걸까.

 

■ “40개 노선 독과점 우려…34개는 팔아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26개 국제 여객 노선(왕복)과 14개 국내 여객 노선(편도)에서 독과점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시정조치를 부과했다. 기존에 심사관이 내놨던 시정조치안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내용이다. 국제 화물 노선이 아예 조치 대상에서 빠졌다는 게 사실상 유일한 차이점이다.

 

공정위의 시정조치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다. 먼저 40개 노선 중 국내 노선 6개를 제외하고는 해당 운수권이나 공항 슬롯(이착륙 시간대)을 다른 항공사에 넘기도록 했다. 이른바 구조적 조치다. 구조적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는 가격 인상과 공급량 축소, 서비스 품질 저하를 제한하는 등의 행태적 조치가 부과된다. 구조적 조치 이행 기한은 10년이다. 그 안에 대한항공의 슬롯·운수권을 넘겨받을 항공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행태적 조치만 10년간 이행하게 된다.

 

일부 노선은 완전 독점화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다. 특히 일부 북미 노선의 경우 한국인 여행객 비중이 압도적인 만큼 외국 항공사는 운항하지 않아왔다. 저비용항공사(LCC)가 장거리 노선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구조적 조치 중 일부는 이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한항공의 미온적 태도의 근저에는 이런 셈법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병희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대한항공이 (공정위 조치에 대해) 다투기보다는 신속하게 결정되는 것을 원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마일리지로 저당잡힌 고객들은 어쩌나

 

국내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걱정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이들 중 상당수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에 적립된 마일리지로 발목이 잡혀 있어 더욱 문제다. 이런 고착(lock-in) 효과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 뒤 더 강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마일리지가 많이 쌓이는 장거리 노선에서 선택지가 사실상 하나로 압축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과 뉴욕·로스앤젤레스(LA)·시애틀 간 왕복 노선은 두 항공사의 기존 점유율이 총 100%로 인수합병 후 완전 독점화된다.

 

행태적 조치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다. 10년 후에는 조치가 해제될 뿐 아니라 내재적인 불확실성이 있어서다. 마일리지의 경우 대한항공이 통합 마일리지 제도를 만들어 공정위의 승인을 받는 방식인데, 아직까지 어떤 기준으로 승인 여부를 판단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도 있다. 공정위는 가격과 공급량 모두 2019년 수준으로 유지하되, 코로나19 상황을 반영해 기준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결국 장거리 노선에 다른 항공사가 진입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꼽힌다. 공정위는 ‘황금 시간대’ 슬롯에 기대를 걸고 있다. 공정위는 다른 항공사가 국내 공항 슬롯을 넘겨받겠다고 나서는 경우, 대한항공이 해당 항공사가 신청한 시간대와 1시간 넘게 차이나지 않는 슬롯을 주도록 했다. 외국 항공사 입장에서는 인천공항에서 수익성이 좋은 슬롯을 받을 가능성이 열리는 셈이다.

 

공정위의 기대가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외국 항공사가 한국 노선에 진출하지 않은 근본적 원인은 국내 소비자들의 국적 항공사 선호 현상에 있다. 여기에는 언어 장벽과 마일리지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얽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공정위는 약 30개 항공사에 진입 의사를 타진했으나, 모두 진입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조 위원장이 “신규 진입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항공업계 전체가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한 배경이다.

 

대한항공은 미국과 유럽, 중국 등에서도 심사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해외 심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반영해 다시 심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해외 경쟁당국은) ‘기업의 경영상 위기는 일시적이나 시장의 구조 변화는 영구적’이라는 점에 기반해 엄격한 기업결합 심사 기조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