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다루는 억지력 부대에 ‘경계 태세 강화’ 명령

러시아-우크라는 개전 나흘만에 첫 회담 나서기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7일 서구의 강력한 제재 조처에 불만을 터뜨리며 핵무기를 다루는 ‘억지력 부대’에 경계 태세 강화를 명령했다. 모스크바/AF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나흘째인 27일(현지시각) 핵무기를 다루는 억지력 부대의 경계 태세 강화를 명령하며 위협 수위를 끌어올렸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결제망에서 배제하는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초강수 경제 제재를 꺼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편으로 대화 개시에 합의하는 등 전쟁이 강온 양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공개한 영상을 통해 “나는 국방부 장관과 총참모장에게 육군의 억지력 부대를 특수 경계 태세로 둘 것을 명령한다”고 밝혔다. ‘억지력 부대’는 핵 무기를 운용하는 부대다. 푸틴 대통령은 “서구 국가들은 우리나라에 불법적 제재라는 경제적 차원의 비우호적 조처를 취했을 뿐 아니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주요국의 최고 관리들은 우리나라에 관한 공격적 발언을 했다”고 이번 조처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린다-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시비에스>(CBS)와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 이 전쟁을 계속 확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의 발표에 앞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를 규탄하면서 핵심 제재 수단으로 꼽혀온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의 러시아 주요 은행의 퇴출을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 개인과 러시아의 주요 은행, 귀족층 등의 자산 동결 등 조처에 이은 것이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도 강화했다. 분쟁 지역에 무기 수출을 금지해온 독일이 대전차 무기 1천정과 군용기 격추를 위한 적외선 유도 지대공미사일 ‘스팅어’ 500기를 지원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또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인근에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고, 제2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에 진입해 시가전을 벌이는 등 공세를 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인종학살(제노사이드)을 벌이고 있다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평화 협상을 위한 대화를 위해 만나기로 합의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궁은 이날 성명을 내어 “우리는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러시아 대표단과 전제조건 없이 우크라이나~벨라루스 접경의 프라피야티 강 인근에서 만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양쪽이 협상 장소 등을 놓고 티격태격한 끝에 결정된 것이다. 앞서 이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러시아 대표단이 벨라루스 남동부 호멜에 도착했고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벨라루스가 러시아군의 침공 거점이라는 점을 들어 벨라루스가 아닌 곳에서 하자고 요구했다.

 

한편, 미국은 26일 현재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필사적 저항에 의외로 고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 국방부 고위 관리는 “저항이 러시아가 예상했던 것보다 크다. 러시아가 지난 24시간 동안 점점 더 좌절하고 있다는 신호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키예프를 사수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26일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성공적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며 항전을 독려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총을 지급받고 화염병을 만드는 등 저항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황준범 정의길 기자

 

‘침공 나흘째’ 러시아, 제2도시 하르키우 진입…우크라 “결사항전”

 

러, 키예프에 미사일 쏘는 등 공세 강화

우크라 제노사이드 이유로 러 ICJ 제소

젤렌스키, 러 “유럽·민주주의 겨냥 전쟁”

미국·유럽 “국제 결제망서 러 은행 배제”

 

 우크라이나의 한 병사가 26일 수도 키예프에서 불타는 군용 트럭 옆을 걸어가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해 키예프에 미사일 공격을 가하는 등 우크라이나 동·남·북부에서 진격을 이어가고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침공 나흘째인 27일(현지시각) 수도 키예프에 이어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에 진입하는 등 공세를 강화했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초강수 경제 제재를 꺼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에 결사항전하겠다는 태도를 꺾지 않으며, 전쟁의 초반 전개 양상이 러시아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모습이다.

 

러시아는 27일 새벽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인근에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며 나흘째 공세를 이어갔다. 공세는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이뤄져 러시아군은 동북부의 하르키우에 진입해 시가전을 벌였다. 올레흐 시네후보우 하르키우 주지사는 “러시아군 차량이 하르키우 도심까지 들어왔다”며 “우크라이나군이 적을 부수고 있다. 민간인은 외출하지 마라”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인종학살(제노사이드)을 벌이고 있다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두 나라는 사태 수습을 위한 협상 개최 여부를 놓고도 티격태격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27일 “러시아 대표단이 벨라루스 남동부 호멜에 도착했고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동영상 연설에서 “러시아와 평화 협상은 기꺼이 하겠다”면서도 이곳이 러시아군의 침공 거점이라는 점을 들어 “벨라루스(에서의 대화)는 거부한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한 보좌관은 러시아가 협상 대표단을 보낸 것은 “선전전”이라고 말했다.

 

개전 나흘째인 27일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군에 대항하기 위해 화염병을 만들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결사 항전할 뜻을 꺾지 않으면서, 시민들도 똘똘 뭉쳐 러시아의 침공에 대항하는 모습이다. 키예프/AP 연합뉴스

 

26일 현재까지,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필사적 저항에 의외로 고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 국방부 고위 관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저항이 러시아가 예상했던 것보다 크다. 러시아가 지난 24시간 동안 점점 더 좌절하고 있다는 신호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키예프를 사수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26일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성공적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며 항전을 독려했고, 27일엔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유럽과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평화적 공존을 상대로 한 전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총을 지급받고 화염병을 만드는 등 저항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키예프의 전황이 고착될수록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와 국제사회의 반전 열기가 커지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점점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 때문에 러시아군이 키예프 상황을 속히 마무리하는 가차 없는 공격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압박 수위는 올라갔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은 26일 러시아 숨통을 조일 핵심 제재로 꼽혀온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의 러시아 주요 은행의 퇴출을 발표했다. 분쟁 지역에 무기 수출을 금지해온 독일도 대전차 무기 1천정과 군용기 격추를 위한 적외선 유도 지대공미사일 ‘스팅어’ 500기를 지원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분열시킬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동맹들의 결집을 재차 강조했다. 전세계 주요 도시에선 나흘째 전쟁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황준범 박병수 기자

 

키예프 총성 들으며 태어난 아기…“대피소에서만 80명 출산”

 

우크라이나인들 곳곳서 필사적 저항 의지

23살 여성, 대피 중에 지하철역서 출산해

도로설비 회사는 표지판 떼내 러시아군 교란

러시아군용 차량 수십대 막아선 ‘탱크맨’도

 

우크라이나 의원 한나 홉코가 대피소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며 트위터에 올린 사진. 트위터 갈무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 압도적인 전력을 앞세워 전방위적인 침공을 개시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이 이에 꺾이지 않는 결연한 저항 의지를 보이며 전 세계인에게 묘한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인 <에이치비>(HB)가 25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30초짜리 동영상을 보면, ‘우크라이나 탱크맨’의 모습이 등장한다. 빠르게 돌진하는 러시아 군용차로 보이는 차량 수십대 행렬 앞으로 한 남성이 돌진하듯 뛰어든다. 차량 행렬을 막으려는 듯 손으로 제지하는 모습을 보이자, 당황한 군용차는 비틀거리며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1989년 6월 천안문 민주항쟁 때 시위 진압에 나선 인민해방군 탱크를 막아서며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인들의 뜨거운 열망을 전했던 원조 ‘탱크맨’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에이치비>는 이 영상과 함께 “우크라이나인이 점령군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적의 장비로 돌진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덧붙였다. 영상이 찍힌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한 설비회사는 러시아군이 길을 잃게 하기 위해 도로 방향 표지판을 떼어내고 있다고 밝혔다. 도로 및 빌딩 유지 보수 업체인 우크라프토도로는 25일 페이스북에 “적들은 통신 상태가 좋지 못하다. 그들을 지옥으로 직행하게 돕자”는 글을 올렸다. 그와 함께 “꺼져라” “또 꺼져라” “러시아로 꺼져라”고 쓴 표지판 합성사진도 첨부했다.

 

우크라이나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러시아 군용차 앞을 막아서고 제지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인 <에이치비>(HB)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 중 한 장면.

 

세계복싱평의회(WBC) 헤비급 챔피언을 지낸 우크라이나의 복싱 영웅이자 수도 키예프 시장인 비탈리 클리치코는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24일 영국 <아이티브이>(ITV)와 한 인터뷰에서 “다른 선택지는 없다. 나는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6일 키예프에 저녁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령을 내리는 등 키예프 상황 통제를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대립하며 국외를 떠돌다 지난달 귀국한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키예프에서 총을 들었다. 그는 25일 미국 <시엔엔>(CNN)과 키예프 거리에서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들고 인터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영원히”라고 답했다. 그는 이튿날인 26일 영국 <스카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선 방탄조끼를 입고 인터뷰하며 “우리는 키예프 한복판에 있다.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평범한 우크라이나 시민들도 공습이 이어질 때마다 지하철역 같은 임시 대피시설로 이동하며 항전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침공이 우크라이나를 하나의 국민국가로 통합시키는 듯한 모습이다.

 

전쟁의 와중에도 새 생명은 태어난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러시아군의 공격이 계속된 26일 키예프 지하철역에서 대피 중이었던 23살 여성이 ‘미아’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를 출산했다고 전했다. 출산 이후 이 여성은 경찰의 도움을 받아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우크라이나 의원 한나 홉코는 신생아의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미아가 태어났다. 우리는 생명과 인간성을 수호한다. 키예프시에 따르면 이 아이는 지난 이틀 동안 대피소에서 태어난 아이 80명 이상 중 한 명”이라고 적었다. 26일 러시아 접경 지역인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루한스크)의 병원 지하실에서도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는 시간에도 러시아군은 밖에서 포격을 하는 상황이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 인근에 있는 즈미니섬 국경 수비대원들이 러시아 군함의 항복 권유를 거부했다가 몰살된 것으로 알려진 사건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경수비대가 지난 24일 러시아 군함의 항복 요구를 받자 욕설과 함께 “러시아 군함, 꺼져라”고 답했다는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들 13명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는데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정정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즈미니섬의 우크라이나군 82명이 모두 항복했다고 발표했다. 조기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