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제공권 장악 뒤 3면에서 우크라군 포위

키예프 장악하고 동부 우크라군 고립 시도

향후 변수는 시가전과 우크라군 항전 여부

우크라 안정화엔 중장기적으로 60만 병력 필요

 

러시아군의 25일 새벽 미사일 공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둘러 보고 있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24일 개전 첫날부터 우크라이나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기갑부대는 수도 키예프 인근까지 육박했다. ‘결사항전’을 외치는 우크라이나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상태다.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오후 러시아군의 의도에 대해 개전 초 키예프를 신속 점령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을 ‘참수’(제거)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대리 정권을 세우려는 의도라는 분석을 내놨다. 다른 서구 정보·군사 당국자들도 러시아군이 키예프에 압도적인 전력을 쏟아 부어 함락시키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데 동의한다.

 

벌써, 침공 12시간만에 러시아군 공수특전 병력과 공격용 헬기는 수도 키예프의 25~30㎞ 안에 접근해서 북서 외곽에 자리한 공항을 놓고 전투를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와 관련해 키예프 서부의 고스토멜과 안토노프 공항을 놓고 공방전을 벌여 재탈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키예프를 겨냥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도 이어지고 있다. 25일 새벽 키예프에 러시아의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이 여러 발이 떨어져 굉음이 발생했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서방의 한 정보 당국자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러시아는 정해진 시간 내에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효율적인 불도저 같은 우위를 같고 있다”며 “핵심 변수는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전투를 벌여서 푸틴에게 코피를 흘리게 하느냐이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며칠 내 전쟁의 운명을 가를 변수는 키예프 등 주요 도시에서 진행될 시가전의 양상이다. 미국 등 서구 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키예프를 뭉개 버리기보다는 질식시키기를 원한다”고 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즉, 키예프를 포위한 뒤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무너지기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전력의 러시아군이 키예프를 포위한 뒤 시가전을 시도하면,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가 꺾일 수 있다.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에 노출돼 있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24일 전경. 키예프/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면, 러시아군이 일방적 우세를 보일 것임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하지만, 예측보다 훨씬 빨리 전황이 기운 것은 두 나라 사이의 압도적인 전력 격차,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 외부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 불가능한 상황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꼽힌다. 그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변수가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취약성’이다.

 

우크라이나를 거대한 시계로 보면, 러시아는 10시 방향에서 12시를 지나 7시 방향까지 세 방면에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벤 베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연구원(전 영국 육군 준장)은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우크라이나의 이런 지형적 취약성에 대해 “방어자에게 매우 어려운 입지”라고 말했다. 잭 워틀링 영국 왕립연합연구소 연구원도 우크라이나는 다방면에서 위협받아서 그 전력이 아주 “옅게 퍼져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침공군 전력은 19만명에 달하나, 우크라이나의 전체 정규군 병력은 12만5천명이다.

 

실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개전을 선포한 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주요 군부대에 미사일 공격과 공습을 가한 뒤 3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국경을 넘어 침공했다. 북쪽에선 벨라루스 접경, 동쪽에선 돈바스 지역의 분리독립 세력들의 자칭 공화국 경계, 남쪽으로는 2014년에 강제 합병한 크림 지역을 넘어서 침공했다. 침공이 시작된 뒤 우크라이나의 첫 방어선은 러시아 군의 정밀 미사일 공격으로 폭격 당했다.

 

핵심 전선은 북쪽 국경에서 수도 키예프까지 불과 100㎞ 떨어진 북쪽 전선이다. 벨라루스에서 국경을 넘어 침공한 러시아군은 전투기, 공수 특전부대, 헬기를 동원해 키예프 인근 주요 공항들을 공략하고 있다. 목적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우크라이나 정권 전복이다. 서구 고위 관리들은 러시아가 키예프를 며칠 내로 점령하려고 “압도적인 전력”을 모으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 국방부의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러시아군의 초기 작전은 “주요 인구 중심지들을 점령하려는 의도가 확실하다”며 특히 키예프의 정부를 ‘참수’하는 것이 궁극적인 의도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을 받아 벽면이 너덜너덜해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아파트 건물 앞에서 25일(현지시각) 이곳에 살던 주민이 절규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전날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전면적인 침공을 감행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러시아군은 이 공격을 받치기 위해 동부와 남부에서도 동시에 진격해 우크라이나군의 주력을 포위하려 시도하는 중으로 보인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주력은 돈바스 내전 때문에 동부에 배치돼 있기 때문에 동시 공격을 벌여 이 전력의 발을 잡아두겠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현재 가장 치열한 전투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중심 도시인 하르키우(하리코프)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쟁의 양상을 결정한 또다른 요소는 제공권이다. 전쟁이 시작된 직후 지상과 흑해 함대에서 100여발의 미사일이 발사돼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을 무력화했다. 러시아의 Kh-31P 미사일은 우크라이나군의 레이더와 통신시설을 공격했다. 또, 러시아 공군의 전투기 75대가 발진해 우크라이나의 방공망, 지휘통제 시설, 공군기지, 대규모 병력 주둔지를 공격했다. 유럽의 한 서방 정보 관리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은 지금 효과적으로 제거됐다”며 “그들은 더 이상 비행하거나 자신들을 보호할 공군력이 없다. 본질적으로 러시아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완전한 제공권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전쟁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가르게 될 마지막 변수는 우크라이나군이 서부 배후지로 전략적 후퇴를 한 뒤 항전할 수 있느냐이다. 그러려면 우크라이나군 주력은 러시아의 포위를 피해 서구와 가까운 서부로 이동한 뒤 러시아의 진공을 저지하며 새 전선을 확보해야 한다. 마이클 코프먼 미 해군분석센터(CNA) 연구원은 “러시아군의 진공에 우리는 놀라서는 안 된다”며 “문제는 우크라이나 군이 저지선을 확보하느냐”라고 지적했다. 나토 국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뒤 게릴라전을 막으려면 약 60만명의 병력이 필요할 것이라 보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러시아 입장에서도 상당한 출혈이 불가피하다.

 

마티유 블레그 영국 채텀하우스의 유라시아프로그램 연구원은 앞으로 “2~4일 동안 상황을 판단하면서 진공, 정지, 탈환이 반복되는 진격-중단 작전이 될 것이다”며 “그 다음은 러시아 군의 사망자가 어느 정도이냐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전쟁은 최대한 전면적인 접근이나, 단순히 돈바스를 확보하려는 기만전략일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친러 분리독립 세력들의 자칭 공화국이 있는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무너뜨리고 대리정권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정도에서 그칠 것인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수렁에 빠질 것인가? 향후 며칠이 고비이다. 정의길 기자

 

러시아, 우크라 침공 3일째…오늘 ‘키예프 대공세’ 할 듯

 

러시아군, 키예프 북·서부 진입 시도

인근 50㎞까지 근접해 치열한 교전

동부·남부 지역 주요 도시서도 전투

유엔, “난민 최대 400만명” 예상

두쪽, 정전 협상 나설 의지 밝혀

 

러시아의 침략을 피해 피난에 나선 가족이 아이를 열차에 태우고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이 3일째로 접어든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 밤(현지시각) 사이에 키예프에 대한 러시아의 총공세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키예프로 진입하려는 러시아 군과 이를 막으려는 우크라이나 군은 키예프 북부와 서부 인근에서 이날도 치열한 교전을 계속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화상 연설에서 “오늘밤은 어제보다 더 어려운 날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수도를 잃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늘밤 적들이 거칠고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방어를 무너뜨리려 시도할 것”이라며 “오늘밤 (키예프를) 몰아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군과 우크라이나 군의 전투는 이날 내내 키예프 인근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러시아는 키예프 진입의 교두보 구실을 하는 인근의 호스토멜(고스토멜) 비행장을 장악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 비행장 주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확인했다고 전했다.

 

<아에프페>는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40~80㎞ 떨어진 두 곳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고위 정보 관계자는 러시아 군이 키예프 북부와 서부에서 수도 인근 50㎞까지 접근했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키예프 외곽에는 러시아 전차, 보병, 공수부대원들이 침투를 준비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파괴 공작원들은 이미 키예프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당국은 키예프가 조만간 함락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군의 저항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키예프 시내 정부 기관 주변에서는 무장 차량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돼,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은 “시 북부에 있는 발전소 인근에서 3∼5분 간격으로 다섯 차례 폭발음이 들렸다”며 “긴급대응팀이 출동해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현지 방송은 발전소가 정상 가동되고 있다고 전했다. 클리치코 시장은 러시아군이 키예프와 가까워짐에 따라 시내 모든 다리를 보호하고 특별 통제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트위터를 통해 키예프 북동부 도시 체르니히우와 남부 해안 도시 멜리토폴에서도 교전이 거센 상황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제2 도시인 동부 국경 지대의 하르키우 인근 공항에서도 폭발음과 총격 소리가 들렸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유엔 관리들은 적어도 10만명의 우크라이나 주민이 피란에 나선 것으로 보이며 피란민은 최대 400만명에 이를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에이피>가 전했다.

 

우크라이나 인근 해상에서 선박 두 척이 이날 포격을 당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우크라이나 인프라부는 경유를 운반하던 몰도바 국적 ‘밀레니얼 스피릿’과 오데사 항구에서 곡물을 선적하던 파나마 국적 ‘나무라 퀸’이 포격을 당했다고 밝혔다. ‘밀레니얼 스피릿’에는 러시아 국적 승조원 10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 중 2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무라 퀸’의 피해 상황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러시아는 앞서 정전 협상을 위해 대표단을 벨라루스 민스크로 보낼 의향이 있다고 밝혔고, 우크라니아 대통령 대변인도 협상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신기섭 기자

 

폴란드 · 헝가리 국경으로 몰리는 피란 행렬…“이건 시작일 뿐”

 

우크라 피난민들 탄 버스·기차 폴란드 도착

400여명은 걸어서 헝가리 국경 넘어

러시아에선 반전 시위…1600명 이상 체포

 

24일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 프셰미실의 기차역으로 피란한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야외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다. 프셰미실/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4일(현지시각) 한적한 폴란드 남동부 마을인 메디카에 우크라이나 피란민 행렬이 몰려들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이 마을에 이날 우크라이나 피란민 수백명이 버스와 미니 밴을 타고 도착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피란민 대부분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젊은 부부들이었으며, 버스 운전기사 한 명은 “혼란 그 자체다. 모든 버스가 꽉 찼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버스 운전기사는 “이건 시작일뿐이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고도 말했다. 메디카에 도착한 우크라이나인들 상당수는 폴란드와 거리가 64㎞ 남짓에 불과해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꼽혔던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프에서 온 이들이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26살 이바나 카르피네츠는 “폭발음에 일어났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냥 뛰었다”며 “우크라이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짐을 싸서 떠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날 폴란드 남동부 국경도시 프셰미실에 도착한 정기 열차에서도 100여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내렸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출발한 이 열차에서 내린 이들은 전쟁을 피해 왔다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500㎞ 국경을 접한 폴란드는 피란민 행렬이 시작 단계일 뿐이라고 보고, 국경에 임시 대기 시설 8곳 그리고 부상자 수송 특별 열차를 마련했다. 폴란드에는 일자리를 찾아온 우크라이나인 100만여명이 이미 거주하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추가로 100만명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24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열린 반전 시위에 참가한 이들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다른 동유럽 국가들에도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도착하고 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24일 헝가리 국경 도시 자호니로 들어오는 우크라이나 자동차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전했다. 헝가리에 도착한 첫번째 우크라이나인 피란민 중 한명은 아에프페에 “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도망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아내와 어린 아이가 있다. 아내가 아빠 없이 아이들을 키우게 하고 싶지 않다”며 징집되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헝가리 <엠티아이>(MTI) 통신은 이날 우크라이나인 400여명이 걸어서 헝가리로 들어왔다고도 전했다.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려는 이들도 있다. 33살 우크라이나 의사는 동료 2명과 함께 헝가리에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돌아갈 것”이며 “히치하이킹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615㎞ 국경을 접한 루마니아에도 이날 우크라이나에서 5300여명이 들어왔다. 유엔난민기구 대변인은 러시아 침공 뒤 우크라이나인 10만명이 이미 집을 떠나 피란길에 올랐고 수천여명은 국경을 넘었다고 밝혔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이날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서 반전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이 시위 참가자 1600명 이상을 체포했다고 정치범 체포를 감시하는 비정부기구(NGO) ‘오브이디(OVD)-인포’가 밝혔다. 조기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