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결혼뒤 한국행, 미국인이자 한국인으로 살아온  일생

남편과 함께 반유신독재 투쟁…20일 서울 한빛교회 추모예배

 

미국인이자 한국인으로 살아온 고 문혜림 여사. 유족 제공

 

미국인으로 한국 민주화운동과 기지촌 여성 권익운동에 헌신한 고 문동환 목사의 부인 문혜림(본명 헤리엇 페이 핀치백)여사가 지난 11일 미국 뉴저지의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유족들이 전했다. 향년 86.

 

‘페이 문’으로 불린 고인은 1936년 미국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자수성가한 영국계 이민자 부모 농장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 흑인인권운동의 영향으로 1960년 하드포드 신학대학원에서 사회사업을 전공했다. 그때 한국에서 유학온 문동환 목사를 만난 그는 사랑과 신앙의 힘으로 15살 연상, 가난, 언어 등 여러 장벽을 넘어 이듬해 12월 서울 경동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한신대 교수인 남편과 함께 1972년 서울 방학동 자택에 새벽의 집 공동체를 꾸리고, 개인주의 극복하는 삶을 실천하고 애썼다. 고 문 목사가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과 79년 와이에이치(YH)무역노조 사건으로 두 차례에 걸쳐 27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던 유신 독재 시절 그는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등 구속자 가족들과 함께 보라색 한복을 입고 석방운동에 앞장섰다. 미군부대에서 사회사업가로 일한 그는 민주화를 지지하는 선교사들과 함께 ‘월요모임’에 참여해 한국의 반독재 투쟁 소식을 검열을 피해 국외로 알리는 활동을 펼쳤다.

 

1986년부터는 의정부, 동두천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하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두레방을 열었다. ‘양공주’ ‘양키 마담’으로 낙인 찍혔던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군사문화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일깨운 두레방 활동은 여러 성매매 여성 인권단체로 이어졌고,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제정을 끌어내는 결실을 맺었다.

 

1992년 남편과 함께 뉴저지로 돌아간 그는 한국인 여성들을 위한 ‘무지개의 집’을 세워 인권보호 활동을 했다. 그때 두 살배기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20년형을 받고 수감중이던 주한미군의 부인 송종순씨의 억울한 사연을 알고 구제에 나서 석방시키는 데도 앞장섰다.

 

이후 2013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오랜 지병에 시달리다, 지난 2019년 3월 남편을 먼저 보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요양중이었다.

 

유족으로는 아들 창근·태근, 딸 영미(늦봄 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영혜씨, 사위 정의길(<한겨레> 선임기자)씨 등이 있다.

 

장례는 뉴저지에서 치르고, 한국에서는 오는 20일 오후 3시 서울 미아리 한빛교회에서 추모예배를 올릴 예정이다. 김경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