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돌아누운 민들레 꽃대

● 칼럼 2012. 5. 20. 18:45 Posted by SisaHan
읽던 책 한 권을 끼고 집을 나섰다. 커피숍까지 산책 삼아 걷고 있는데 산책길 옆의 잔디를 깎고 있어 멀리까지 풀냄새가 진동을 했다. 짧게 밀어버린 초록 잔디 군데군데에 용케도 살아남은 노란 민들레 꽃들이 한숨 돌리고 있었다. 기계가 지나가면 슬쩍 누운 척하다가 다시 일어서는 민들레의 생존 전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민들레 꽃이 올 봄에는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겨울이 춥지 않은 덕에 작년에 퍼뜨린 홀씨를 성공적으로 키워내어 의기양양해진 민들레가 지천으로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에도 천지를 노랗게 물들이며 꼬마 전등을 깔아놓은 것처럼 대지를 환하게 밝혀 한때 장관을 이루었었다. 노란 불이 꺼지면서 골프공만한 하얀 홀씨들이 줄기마다 하나씩 가뿐히 올라 앉아 있어 또 한동안은 세상이 온통 골프연습장 같았다. 그러다가 봄 바람이 지날 때면 스스로를 시들게 하던 삶의 무게를 털어내려는 듯 이미 가벼워진 몸에서 솜털마저 낱낱이 훑어내어 날려보내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어제는 비가 내렸다. 한차례 지나가는 봄비치고는 우악스러운 소낙비가 쏟아졌다. 그러고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갠 하늘은 순수한 어린아이 눈동자처럼 맑았다. 산책길 좌우로 넓게 펼쳐진 잔디가 비에 씻긴 말끔한 얼굴로 햇빛을 받아 배시시 웃고 있었다.
 
문득 저게 뭘까 싶어 걸음을 멈추었다.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저것. 초록 잔디에 불그스름한 빨대를 빼곡하게 꽂아놓은 것 같은 저것들. 처음에는 그게 뭔지 언뜻 분간하지 못하다가 가까이 다가가서야 갑자기 쏟아진 소낙비로 졸지에 홀씨를 잃고 줄기만 앙상하게 꽂혀있는 민들레 꽃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오늘, 더 이상 버티고 살아있어야 할 의미를 지니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하얀 햇살을 받아 몸을 뒤튼 채 줄기들이 잔디에 아무렇게나 돌아누워있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몸부림을 목격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민들레 참상의 현장에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순간 나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진지하고도 심각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홀씨를 널리 퍼뜨려야 하는 번식의 임무를 순리대로 마치지 못한 민들레가 생존의 의미를 잃고 저리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하듯, 사람 역시 어느 순간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생을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울 때까지는 자식이 생명줄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살아야 할 충분한 의미가 되어주고 부양의 의무를 마치기 전까지는 한눈 팔 겨를조차 없기 때문이다. 자식들을 성가시켜 떠나 보낸 후에는 아내나 남편이 기대고 있을 자신의 어깨를 치울 수 없다는 것이 존재의 구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배우자가 떠나고 혼자 남겨질 경우 나머지 생을 의연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삶의 버팀목이 될 무엇인가를 준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육신과 정신의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베갯머리에 묻어있는 꿈 조각을 붙들고 살기 보다는 의식을 확장 시켜 나갈 무엇인가가 필요하리라는 의미이다.
 
어찌됐든 가냘픈 몸피로 척박한 환경에서 불굴의 삶을 살아야 하는 생명이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된 강인한 생명력과 적응력은 놀랄만하다. 그러나 민들레 또한 한시적인 생명이거늘 예기치 못한 일로 순리를 거역하는 상황에서 담담할 수는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젖으면 자신도 젖는다는 이치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소낙비에 홀씨를 갑자기 잃어버린 그들, 만일 그들이 제 할 일을 순조롭게 마무리했다면 적어도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에 저항하는 몸부림은 없지 않았을까. 
노랗게 익은 희망의 빛을 밝히며 생을 살아낸 민들레의 전성기를 추억하며 걷다가 햇빛을 받아 잠시나마 다시 꼿꼿하게 몸을 일으킨 줄기 몇 가닥에 마음이 잡힌다. 꺼지기 직전에 반짝 강한 빛을 발하는 촛불 같아서였을까.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