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교육헌장이란 것을 제정하여 전국민에게 이를 암송시킨 적이 있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한국의 민주주의와 진보 운동은 저급한 권위주의에 저항하면서 탄생하고 성장하고 발전하였다. 박정희는 5.16 이후 군사정부를 끝으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스스로 육군 소장에서 대장으로까지 진급을 시킨 뒤 군복을 벗고 대통령이 되었다.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로 언론의 자유를 박탈하고 국민을 체포·투옥한 독재 통치에 맞서서 학생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며 감옥으로 갔고,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항의하였다.
전두환과 노태우 정부로 이어진 권위주의 아래에서 다행히 노동운동과 사회민주화 운동은 더 강력한 시민사회의 연대를 이룩하고, 1987년의 6월항쟁을 거치며 한국 사회에 진보의 흐름을 확고히 세워 나갔다.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했던 한 나라가 기적처럼 경제성장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의 각성과 연대에 기반하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딘 한국의 진보운동과 민주화의 성취는 전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아도 좋을 훌륭한 자산이다. 그러한 역사의 성과 위에서 한국 진보운동은 발전해 왔고, 현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민주주의와 평화의 완성, 그리고 국제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가치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주길 염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최근 통합진보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거관리의 문제점과, 그에서 촉발된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무질서한 논란과 비민주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바라보면서 많은 뜻있는 국민들이 안타까움과 우려를 금하지 못하고 있다. 4.19 이후 수립된 장면 정부의 무능과 무질서, 그리고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을 이유로 들어 박정희는 군사독재를 시작하였다. 경제성장과 반공을 내세우며 무려 18년에 걸친 비민주적 통치가 그로부터 이어졌음을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번 총선에서 상당한 국민의 지지를 받은 통합진보당이 역설적이게도 진보의 역사와 정당성을 한꺼번에 잃고 민주주의와 진보를 반대하는 세력들에게 영속적으로 그 자리를 내주지는 않을지 걱정을 하게 된다. 당내의 논의 과정에서 규약 등 내부 규정을 따지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민주주의와 진보의 대의를 위해 자신을 꽃잎처럼 내던지던 지난 시절 국민의 가슴을 감동시킨 그 아름다운 정신의 승리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6석은 커다란 이권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미래를 열어내는 진보의 힘은 그 의석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의 당내 사정이 어떤 방식으로 귀결이 되든, 지난 수십년에 걸쳐서 우리 사회가 이루어온 자산과 성과를 싸안고 국민의 가슴속으로 다가가지 못한다면, 국민들이 그 모습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교육헌장의 강변과 달리 모든 개인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띤 것도 아니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고 무리하게 강제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민주주의는 오히려 다소는 느슨하고 불합리한 모습을 안아내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정화시켜 내는 능력이 있는 시스템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진보운동은 80년대와 달리 새로운 운동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민주주의를 더욱 성장·발전시키고, 경제적 정의와 평등을 더 진전시키기 위한 운동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 방식이 과거와는 달라졌다. 이제 시민들과 함께 웃고 노래부르고 춤추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비장한 투신 대신에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고 대화하며 즐기는 속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설계해 갈 수 있음을 촛불문화제가 보여주었고, 또 축제처럼 치러지는 몇 차례의 선거 속에서 우리 사회는 이를 확인했던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대중의 뜻을 잘 헤아리고 또 스스로를 낮추며 우리 시대가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 시민과 함께 즐거이 웃고 울며, 더욱더 부드럽게, 그러나 스스로를 던지는 데서는 누구보다 과감한 새 정치와 문화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는 것 아닐까.

<백태웅 -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