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은퇴자의 재정관리

베이비부머 첫 세대의 은퇴가 시작된 이후 시니어들은 가족구성원이나 생활형태, 그리고 건강의 변화와 함께 장기간 지속될 은퇴기간 동안 소득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자산축적(Wealth Accumulation)에서 자산보전(Wealth Protection)과 소득창출(Income Generation), 그리고 자산이전(Wealth transfer)이라는 형태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즉 자산축적에 중점을 둔 재정관리는 은퇴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은퇴자들은 단순한 자산증식을 위한 투자관리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관점에서의 재정계획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60대 베이비부머들을 중심으로 은퇴계획과 재정관리에 관해 알아본다.
 
언제 은퇴할 것인가? 대부분 캐나다인들의 평균 은퇴나이는 국민연금(CPP)이나 노령연금(OAS), 그리고 직장연금(RPP)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65세이다. 그러나 재정적인 제약으로 많은 사람들은 은퇴시기를 연기한다. 정부통계에 의하면 캐나다 시니어들은 21%가 계속해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선택으로 일을 하느냐 아니면 필요에 의해 일을 하는가는 은퇴나 재정계획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먼저 은퇴를 연기하는 이유는 인구통계학적인 면에서 볼 때 길어진 평균수명이 보다 많은 은퇴저축을 필요로 하고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료기술 등의 발전에 힘입어 시니어들이 보다 건강해진 것도 은퇴를 연기할 수 있게하고 있다. 또한 OAS나 CPP와 같은 정부의 각종 연금도 수령시기를 연기할수록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노령연금은 이제 수령시기를 70세까지 연기할 수 있고, 연기할 수록 연금을 더 받을 수 있다. 고용면에서도 고용주들은 시니어들을 고용하기 위해 보다 유연한 고용조건을 제공하고 있고, 은퇴자 4사람 중 1명은 연금에 영향이 없다면 파트타임의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이들은 낮은 이자로 인한 부동산투자 선호, 그리고 주식시장의 변동성 등으로 인해 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이러한 부체를 가진 은퇴자들이 은퇴를 늦추고 있다.
 
그렇다면 은퇴소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재정관리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CPP, OAS 등의 수령시기를 결정할 때 정부연금들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경우 본인의 소득 및 세금상황, 그리고 건강상태도 고려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소득이 적고, 예상수명이 짧다고 생각되면 65세 전에 CPP연금을 받기 시작하거나, OAS도 70세까지 연기하는 것보다 65세부터 바로 신청하는 것이 유리하다. 또한 소득이 많아 노령연금을 반납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소득을 노령연금반납 소득한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소득을 TFSA로부터 인출해 사용하거나 양도차익을 여러해로 나누어 발생시켜 사용하는 것도 연금의 감소를 피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금융자산 보유자는 지속 가능한 인출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흔히 금융기관에서 제공하는 매달 배당금을 지급하는 일반 뮤추얼펀드라면, 이러한 배당금은 투자수익률이 아니기 때문에 은퇴초기에 투자손실은 원금의 손실을 크게하여 배당금액도 크게 줄어들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고정적인 생활비에 해당하는 만큼은 평생 소득을 보장하는 연금형태로 전환하는 것이 좋다. 특히, 회사연금이나 RRSP의 경우는 이러한 연금형태가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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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 마음에 심은 무궁화

● 교회소식 2014. 8. 25. 19:36 Posted by SisaHan

[선교 후기 & 간증] 동부연안 원주민사역을 마치고… 문대석 집사

지난 일주일 동안 노바스코샤 원주민 보호구역들에서 토론토 큰빛교회 선교팀과 원주민들과 하나가 되어 한국의 꽃 무궁화를 함께 열심히 심었다. 뜻하지 않았던 많은 무궁화나무 기증은 원주민 마을에 처음있는 일로 그들은 기쁨으로 한인선교팀을 맞이하며 환영했다.
매년 지속되는 선교를 통하여 이제는 선교팀을 초청하는 가정도 많이 늘어나고 복음전도 사역과 문화교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현지 천주교 신부님도, 추장도, 적극적인 협조를 하면서 오랫동안 침체된 원주민마을에 동질감을 느끼는 한인들이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기를 기대하였다. 인디언 부룩은 일명 원주민어로 ‘감자가 많이나는곳’ 을 의미하는 슈바나카디로 불리며 인구 2500명이 강제로 이주당하여 살고있는 원주민 보호구역이고 동부에서 유일하게 원주민 문화를 말살하려던 원주민 기숙사 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 추장 Rufus 씨는 지역 신문사를 통하여 선교활동과 무궁화 보급 등에 관한 인터뷰기사도 실어주었다. 추장의 삼촌은 한국전쟁 중 전사하여 지금은 부산 UN군 묘지에 안장되어 있는데, 멀리 토론토에서 와서 이렇게 기념해주는 것을 고마워하며 선교팀 편의를 위하여 자기의 집을 숙소로 제공해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또한 케이프 브레톤섬에 있는 에스카소니 (‘숲이 우거진곳’ 이라는 말)는 인구 4000명으로 동부에서 가장 큰 보호구역이며 산속 깊은 외진 곳에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강제로 이주시킨 지역이나 대부분이 실업자여서 여름이면 블루베리 따는일을 위하여 마을을 잠시 떠나기도한다. 원주민 기숙사 생존자와 한국전쟁 유일한 생존 참전용사가 같이 참석하여 무궁화 나무를 심으며 친교를 나누었다. 원주민 기숙사학교 생존자들은 그들의 아픈 기억들을 나누기를 꺼려하였지만 한국전에서 지뢰파편으로 부상당해 일본에서 4개월 치료받고 캐나다로 돌아온 86세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브라함 듀셋 씨 부부는 한국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며 한인 학생들의 마사지도 받고, 옆에 있던 정윤희 씨를 수양 딸로 입양하고 온 선교팀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였다.
동부 원주민들은 여름이면 자기들 나름대로 올림픽과 같은 섬머 게임을 돌아가면서 개최한다. 한인선교팀이 섬머게임 동안에 선교와 봉사활동도 하였는데 2000명 정도가 모이는 야외 공연장 무대에 초대받아 복음송과 워쉽댄스, 원주민어로 Amazing Grace를 불러 큰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올해 원주민 게임이 열리는 포트레텍 보호구역에서도 초청을 받았고 선교팀들을 위한 민박 제의도 받기는 하였지만 금년에는 선교일정상 그리고 인원 부족으로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원주민들이 잘 활용하지 않는 방송시설을 이용하여 선교방송을 내보낼 수 있도록 한인선교팀에 배려를 해주어 영어로 된 방송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또 한인 2세들과 영어권, 그리고 도시지역 인터넷 사용자들의 원주민 선교참여가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원주민 마을에는 성인 중 약 70%는 당뇨를 앓고 있으며 고혈압과 심장병 등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평균 수명이 55세 정도로 건강에 큰 문제가 있지만, 제대로된 식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있다. 이들을 위한 건겅식 메뉴를 이용한 유료식당 운영 아이디어는 추장과 밴드오피스, 헬스센터, 그리고 신부님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았고, 식당장소와 선교센터 숙소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 사용제의를 받기도 하였다. 이를 통하여 원주민 청년들에게 직업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고 노약자와 많은 장애인을 위한 무료 음식배달 등으로 가정방문 사역을 하며, 주위 공터에 밭을 만들어 자체 농사도 할 수 있는 경제적으로 자립된 평신도 실버선교 사역의 기회는 앞으로 한인 원주민 선교가 지향해야 할 실용적인 원주민 선교 모델이라 하겠다.
 
동부 원주민 마을에서의 원주민 선교는 그동안 꾸준한 관계중심 선교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지난 500여년동안 백인들의 착취와 상실의 고통속에서 신음하며 그들이 전한 기독교에 반감을 가지고, 살아남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남은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원주민들에게 기독교 우월주의의 선교나, 얄팍한 물질 제공을 통한 구제식 선교, 그리고 자기 중심적 선교가 아닌, 친구로써 조용히 다가가 고통을 함께하며 말이 아닌 실천으로 한 알의 말알처럼 사랑을 베풀 때 그들은 한인 선교팀이 백인들과는 다른 진실성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선교비 마련을 위하여 지렁이 잡으러 나선 학생, 선교에 참여하려 가게 문을 닫고 온 이민 초년생, 자신은 선교를 잘 모르지만 멀리서 온 선교팀을 지원하기 위하여 휴가를 신청하고 주방을 도맡은 일식 요리사, 2종류의 암을 지니고 선교에 열중하는 이…, 이러한 이야기들을 듣는 원주민들의 눈에서 아직도 마르지 않은 눈물을 본다.
 
이번에 동부지역에 많은 무궁화를 심었다. 그들은 무궁화 나무가 한국의 국화라는 사실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자기의 친구들이 왕복 4000 km의 길을 운전하여 나무를 배달하고 처음으로 자신들을 위하여, 꽃이 없어 메마른 땅에 선교팀이 오는 여름철에 활짝 필 무궁화를 심어준다 생각하니 무궁화가 사랑스러워지고 그 꽃이 피어나는 계절에는 여지없이 자기의 친구들이 다시 오리라는 약속처럼 느껴진 것이다.
앞으로 동부를 여행할 기회가 있으면 원주민 마을에 피어나는 무궁화를 보면서 약 125년전 한국에서 한국인에 의한 첫 번째 교회 소래교회를 세우다 34세에 한국땅에 묻힌 윌리암 존 멕켄지의 삶을 추모해보자. 그가 캐나다 원주민 선교를 하던 중 한국선교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우리의 한인교회들이 이제는 그의 고향에서 선교의 발걸음을 내디딘다.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던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구절을 되새기면서….
 
< 문대석 집사: 열린 한마음교회 >


주님의 심장으로 전할 때 회복이

● 교회소식 2014. 8. 25. 18:52 Posted by SisaHan

[선교 후기 & 간증] SEA Mission 도시빈민사역 참여… 최정숙 권사

할렐루야!!
해마다 시리아로 선교를 다녀오다가, 올해는 별다른 선교계획이 없이 교회에서 사랑부를 섬기던 중, Sea Mission의 도시빈민사역팀을 알게 되었고 같은 교회에서 사랑부를 섬기시는 박일수 집사님이 몬트리얼 선교를 가신다기에 가고자 하는 마음을 주셔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도착한 몬트리올은 저에게 타국에 온 것처럼 생소했고, 첫날 밤을 한인 연합교회에서 머물렀습니다. 이튿 날 아침 200인분의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저녁에는 만든 음식을 홈리스분들에게 배식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음식을 받으시며 행복해 하시는 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마음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배식을 마치고 돌아와 예배와 찬양으로 하루를 마치고 다음 날 맥길대학이 있는 다운타운에 전도를 나가게 되었는데, 전날 밤 음식을 나누어 주었던 그분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한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그 할아버지께 다가 가 인사하고 스낵을 건네주고 영어로 된 사영리책을 건네주며 그 분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준 뒤 본격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마치 거지 나사로를 생각나게 하셨고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영혼으로 바라보게 하시며 긍휼의 마음과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시며 손톱과 발톱을 잘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코 저의 인간적인 생각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마음에 밀려들 때 영어로 된 사영리를 그분이 스스로 읽도록 권면했고, 40여분을 읽고 난 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얼굴이 상기되며 코끝이 찡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좀더 질문과 대화를 이어가려 했을 때 속이 아파하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목사님과 그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그분은 밝은 표정으로 변화되며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 분의 변화됨을 보며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마음과 심장으로 영혼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참 진리 되시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전할 때 참 회복이 있음을 다시한번 경험하며, 도시 한가운데 삶을 포기하며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소외되고 외로운 빈민들을 돌보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기도하는 이 일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해봅니다.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이사야 55:1-2절)
 
< 최정숙 권사: 서부장로교회 >


다운타운에 위치한 갈릴리장로교회 건물은 백년 전 서양 사람들이 지은 것이다. 그 교회의 엣 이름은 ‘Davenport Presbyterian Church’이다. 우리 교회당 전면 왼쪽 벽에는 1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은 서양교회 청년들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부착되어 있고, 오른쪽 벽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 교회 청년들의 이름이 적힌 동판이 있다. 비록 우리 갈릴리 교우들의 이름이 적힌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념하는 것이기에 지금도 그 동판을 잘 보관하고 있다.
전쟁에 참여하여 전사한 분들의 이름만 수 십 명이니 아마 살아서 돌아 온 이들까지 합하면 아마 100명도 넘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러니까 칠 팔십 년 전에는 이 교회에 수백 명의 남녀 청년들이 출석하고 있었던 도심의 큰 교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Davenport Presbyterian Church 교인 대표 세 명이 나에게로 찾아 왔다. 그 교회는 현재 교인이 30명 정도 되는데 대부분 노인들이고, 현재 은퇴한 노인들이 사는 건물 지하에 방 한 칸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너무 좁고 불편하여 새로운 예배 장소를 찾고 있으니, 갈릴리장로교회 건물에 와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선처를 베풀어 달라고 하였다.
오늘날 많은 한인교회들이 서양교회 건물을 빌려 교회를 개척하여 오늘에 이른 것을 생각하며 당연히 이 교회 건물을 지은 사람들에게 예배 처소를 제공하겠노라고 하였다.
그런데 서양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백년 전에는 캐나다장로교회가 한국에 선교사들을 보내어 한국교회를 일으킨 훌륭한 교회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가 매우 노령화 되어있고, 통계를 보면 매년 교회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왜 노인들만 남아서 교회를 지키다가 그들이 세상 떠나면 교회는 없어지고 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자녀들을 다음 세대의 교회 신자로 세우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전쟁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는 그들의 조상들이 전통적으로 배웠고 지켜왔던 신앙과 교회의 규범 속에서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 대신 물질주의와 쾌락주의와 개인주의 같은 세속적 가치관 속에서 자녀를 키웠기 때문에 이제 그들의 자녀와 손자뻘인 이 세대에 있어서 서양교회는 더 이상 젊은이들이 떠나고 없는 텅 빈 교회가 되고 만 것이다.
요즘 한국에 있는 대학생들의 교회출석률이 4% 미만이라고 한다. 학업과 취업을 위해 바쁜 젊은이들은 교회에 대한 인식도 나빠 교회에 오길 꺼려한다. 게다가 개방된 성과 술 문화에 빠진 젊은이들은 도덕과 절제를 얘기하는 교회보다 쾌락을 장려하는 세상이 편하고 좋은 것 같다.
 
몰락한 서양교회의 한 두 세대 전 과거 모습이 현재 한국교회에 비슷하게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먼 훗날 우리 캐나다의 한인교회가 교인이 없어 교회 문을 닫아야 하는 비극이 오게 해선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 우리의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로 세워야 한다. 우리 자녀들이 주도하는 세상이 도래했을 때 오히려 교회가 더 활발하게 하나님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부모 된 우리가 먼저 신앙적으로 모범을 보이고 분발해야 할 때다.

< 임수택 목사 - 갈릴리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