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헌법소원’ 결론…탄소중립기본법 일부 ‘헌법불합치’
청구인들 “기후변화가 기본권 문제란 걸 확인” 반겨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워두지 않은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현재 정부는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만 세워두고 있는데, 이번 결정에 따라 2050년 이전까지의 감축 목표가 제시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29일 오후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감축할 것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의 탄소중립기본법(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1항이 “과소보호금지원칙과 법률유보원칙에 반하여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2050년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국제사회가 합의한 시점이다.

다만 이미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해둔 정부의 계획과 그 근거인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에 대해서만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긴 어렵고, 적어도 정부가 2049년까지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결정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2026년 2월28일까지 2031~2049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내용을 반영해 탄소중립기본법의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연합]
 

이번 결정은 ‘청소년기후소송’(2020년)과 ‘시민기후소송’(2021년), ‘아기기후소송’(2022년)에 이어 제기된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2023년) 등 네 건의 청구를 병합해 내린 것으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기후소송’이라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렸다.

헌법소원 심판 청구인·대리인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의 결정을 반겼다.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의 윤세종 변호사는 “오늘 판결로 우리는 기후변화가 우리의 기본권의 문제이고 누구나 기후변화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 권리가 지켜질지는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이제 정부와 국회의 차례”라고 밝혔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사무국장은 “2031년 이후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없는 것이 헌법 불합치라는 내용이 선고 됐다.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우리의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판결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주 변호사는 “위헌 결정 내용 중에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지만, 독일 기후 소송처럼 국회의 후속 법 개정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실질적인 강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아기기후소송’에 청구인으로 이름을 올렸던 한제아(12)양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세상의 일원으로 태어났고 당연히 기후위기에서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며 “이번 판결은 저희에게 주어진 책임도 알려주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저와 같은 어린이들이 헌법소원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번 판결이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헌재 결정에 대해 환경부는 이날 “정부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며, 후속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 박기용 윤연정 기자 >

 

'미래세대 기본권' 다룬 아시아 첫 기후소송…일부 인정 결실

청구 4년 만에 "2031년 이후 공백, 미래에 과중한 부담" 헌법불합치

일부 기각됐지만 유럽·미국 판결 발맞춘 첫걸음…일본 등 영향 줄 듯

 

착석하는 헌재재판관들 =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2024.8.29

 

 

어린이·청소년에 태아까지, 대한민국 미래 세대들이 주축이 돼 아시아 최초로 제기한 기후소송이 4년간의 심리 끝에 일정 부분 열매를 맺었다.

2031∼2049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공백은 정부가 환경권을 침해한 것으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끌어낸 점에서다.

다만 가장 중점적으로 문제 삼았던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에까지 전향적 판단이 나오지는 않아 첫 시도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 됐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기후 위기 헌법소원은 2020년 3월 청소년 환경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이 첫발을 뗐다.

이들은 당시 저탄소녹생성장기본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소극적이기 때문에 청소년의 생명권·환경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아시아 최초의 기후 소송이었다.

2021년 10월에는 같은 문제의식으로 시민단체와 정당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022년 6월에는 당시 태명이 '딱따구리'인 20주 차 태아(이후 같은 해 10월 출생)를 비롯해 2017년 이후 출생한 아기 39명과 6∼10세 어린이 22명도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첫 청구 후 4년 만인 올해 4월 이같은 소송을 병합해 첫 공개변론을 열어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갔다. 이 역시 아시아 최초라 많은 주목을 받았다.

청구인 측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법)과 시행령, 국가 기본계획 등에서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으로 설정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같은 정부의 대응은 충실하지 못해 미래 세대에게 '안정된 기후에서 살 권리'를 비롯한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온실가스 40% 감축 자체가 기존 목표를 대폭 상향한 것으로,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주요 선진국보다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이 늦은 점 등을 고려하면 경제계·산업계에서 느낄 부담이 크다고 반박했다.

마지막까지 최종진술 연습하는 한제아 어린이 =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국내 첫 기후소송 2차 변론 시작에 앞서 아기기후소송 청구인인 한제아 어린이가 최종 진술문을 확인하고 있다.
헌재는 20년부터 23년까지 제기된 기후 소송 4건을 병합해 심리하고 있으며 이르면 올해 9월 결론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2024.5.21

 

 

5월 열린 두 번째 공개 변론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12) 학생이 청구인 대표로 직접 출석해 미래세대 당사자로서 "기후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우리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며 어른들의 전향적인 결정을 촉구했다.

결정권을 쥔 재판관들은 2030년 이후 2050년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 감축 목표량이 없으며, 정부 발표상 감축 목표연도와 목표점이 계속 변경되면서 투명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 시선을 끌기도 했다.

결국 헌재는 이날 정부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규율한 것"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는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환경권을 침해했으므로 2031년 이후 기간에 대해서도 법률에 직접 규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다만 '2030년까지 40% 감축' 목표에 대해서는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며 청구를 재판관 전원일치로 기각했다.

이날 헌재의 결정은 비록 전면적인 판단은 아니지만 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다른 국가의 선행 판결에 일부 발맞춘 '첫걸음'으로 받아들여진다.

네덜란드 환경 단체는 정부의 기후 변화 조치가 불충분하다며 2013년 소송을 제기했고, 2019년 네덜란드 법원은 감축 목표를 강화하라는 이른바 '위르헨다 판결'을 했다. 기후소송의 시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2021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55% 감축'이라는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이에 따라 독일 연방정부와 의회는 법을 개정해 2030년 감축 목표를 55%에서 65%로 올리고, 2040년 목표를 88%로 신설했다. 탄소중립 시기도 2050년에서 2045년으로 당겼다.

이밖에 프랑스, 아일랜드, 미국 몬태나주 법원, 유럽인권재판소에서도 기후 소송에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기후 대책에 대한 정부 정책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점을 우리 헌재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일부라도 인정하면서, 올해부터 본격화하고 있는 대만·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기후소송 판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연합 이대희 기자 >

광복회장 “강도 일제가 뺏어도 국권은 우리 것”

● COREA 2024. 8. 30. 01:06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이종찬 회장 "참모가 대통령은 역사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되나”

“(국권을) 일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장관 하겠다니 나라가 제대로 되겠느냐”

 

 

이종찬 광복회장이 29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광복회 제114주년 국권상실의날 행사에 참석해 개식사를 하고 있다. [연합]
 

이종찬 광복회장은 일제강점기 국적 문제와 관련해 “강도 일제가 칼을 대고 우리에게 국권을 빼앗아갔다”며 “비록 강도가 가져갔더라도 그것은 우리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날 광복회 주관으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114주년 ‘국권상실의날 추념식’ 개식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그것이 일본 것이라고 장관 하겠다는 사람이 그러니 나라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일제시대 때 나라가 망했는데 무슨 (한국) 국적이 있느냐”며 당시 우리 국민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발언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 회장은 ‘일제의 국권 침탈이 불법·무효인지 입장을 밝혀달라’는 광복회 요청을 받은 외교부가 “식민지배는 원천적 무효”라고 답한 것을 언급하며 “이게 정확한 얘기인데, 자기 번지수도 모르는 사람이 장관을 하면 되겠나”라고 개탄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 27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통령께서는 뉴라이트라는 의미를 정확히 모를 정도”라고 말한 것을 두고는 “대통령 참모가 대통령은 역사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되나”라며 “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정부를 운영하는가. 정말 화가 나고 한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뉴라이트가 생기고 (이들이) 1948년에 건국됐다고 난리 치는 것은 우리가 (제대로) 못 가르친 책임이기도 하다”며 장관과 공공기관의 장으로 지명될 이들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함양하도록 힘쓰겠다고 했다.  < 박민희 기자 >

국회청문회서 국체부정 발언 등으로 임명취소 요구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받으며 안경을 매만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을 임명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막말·역사관이 도마에 오르며 야당이 지명 철회를 요구했지만 끝내 임명을 강행한 것이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임명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윤석열 정부에서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27번째 인사(장관급 인사)가 됐다.

김 장관은 지난 2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인가”라는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일본이지, 국적이 한국입니까. 상식적인 이야기를 해야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시면 안 된다”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또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한 ‘4·3 폭동’은 명백하게 남로당에 의한 폭동”이라는 등의 발언도 했다. 결국 야당의 반발 속에 인사청문회는 파행으로 치달았고, 인사청문보고서는 채택되지 않았다.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지난 2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일제 시대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 발언에 대해 “부적절했다”고 평가했지만 “역사관에 대한 견해는 참으로 다양하다”며 임명 철회 건의 뜻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서승환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최양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유일호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김창경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 위촉안도 함께 재가했다. < 이승준 기자 >

헌재가 써주는 '검사 불패' 신화…이정섭 탄핵도 기각

검사는 절대 파면되지 않는다 '검사 방탄의 법칙' 동조

"소추 사유 불명확하거나 직무 집행과 무관" 판단
위장전입, 리조트 접대, 마약 수사 무마 숱한 의혹
'공소권 남용' 안동완에 이어 두 번째 면죄부 발급

야권 "헌재 보수화와 검찰의 조직적 방해가 합작"
"검찰-법무부-헌재, 추악한 공범의 사슬로 하나돼"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가 28일 오후 탄핵 심판 2회 변론기일 출석을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들어가며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4.5.28. [연합]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래 76년간 파면된 검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검찰이 이슬만 먹고 사는 청렴결백의 결정체이거나 무오류의 화신과 같은 집단이어서는 아니다. 헌법도 초월하는 이 '특수계급'은 그 어떤 추악한 부정·비리를 저질러도 파면되지 않는다는 '검사 방탄의 법칙'이 기득권 세력의 암묵적 담합 속에 깨지지 않는 불문율로 고착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9일 국회가 의결한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 즉 파면 요구를 기각했다. 이 검사가 처남에 대한 경찰의 마약 수사를 무마해주고, 서울 강남구 도곡동 거주지에서 딸의 진학을 이유로 인근 아파트로 위장전입을 하고, 남의 전과기록을 무단으로 조회하고, 호화 리조트에서 재벌기업 임원으로부터 각종 접대를 받고, 선후배 검사들에게 골프장 편의를 봐주는 등 숱한 비위를 저지른 구체적 사실과 정황이 제기됐는데도 파면할 사안은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이미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를 '보복 기소'했던 안동완 부산지검 2차장검사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내줬던 헌재다. 일반 공무원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검사 불패'의 신화를 헌재가 앞장서서 써주고 있는 셈이다.

헌재는 이 검사를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소추 사유가 특정되지 않았다거나, 직무 집행과 무관해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국회의 탄핵소추를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우선 소추 사유 중 ▲범죄경력조회 무단 열람 ▲리조트 이용 관련 청탁금지법 위반 ▲골프장 예약 편의 제공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해 "행위의 일시·대상·상대방 등 구체적 양상, 직무집행과의 관련성 등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형식적 적법성을 갖추지 못한 소추 사유들에 대해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의혹의 사실관계가 불명확하다는 얘기다. 위장전입을 했다거나, 코로나19 유행 당시 집합금지 명령을 위반하고 리조트에서 사적인 모임을 가진 사실에 대해서는 "직무 집행과 관계가 없는 행위는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봤다. 국회는 이 검사가 과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죄 형사재판에서 증인신문 전 증인 최모 씨를 면담해 무죄 선고의 빌미를 줬으므로 국가공무원법·검찰청법 등을 위반했다고 탄핵소추 사유에 포함시켰지만 헌재는 "이 사건 기록만으로는 사전면담이 위법하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다만 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이 검사가 한 사전면담이 파면할 정도의 행위는 아니지만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와 헌법상 공익실현 의무를 위반한 것은 맞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가 이뤄진 안동완 부산지검 2차장검사와 대리인인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왼쪽)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첫 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2024.2.20. [연합]
 

앞서 헌재는 안동완 검사의 심각한 위법 행위인 '공소권 남용' 및 그 '의도성'을 대법원이 확정판결로 인정했음에도 "전혀 위법하지 않거나 의도성이 없다"면서 기각한 바 있다. 대법원 판시를 정면으로 뒤집는 무리수를 범하면서까지 문제 검사를 감싼 데는 윤석열 정부 들어 '보수 우위'로 재편된 헌법재판관 구성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서울 법대 79학번 동기인 이종석 헌법재판관을 소장으로 임명하고 수구보수 성향으로 유명한 정형식 판사를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으로 낙점하는 등 헌재의 우경화에 가속 페달을 밟아왔다.

검찰독재정권의 아성을 헌재가 굳건히 수호해주는 형국이 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추진 중인 후속 검사 탄핵 사안들도 전망이 더 어두워졌다. 민주당은 지난달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강백신 수원지검 성남지청 차장검사,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엄희준 부천지청장 등 비위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해놓은 상태다.

야권은 이날 헌재 결정이 나오자 즉각 반발했다. 그래도 상대가 사법부라 '매우 유감스럽다' '대단히 안타깝다' 등으로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한 절제된 표현을 썼지만 개중에는 '참담하고 분노스럽다'는 직설적인 반응도 나왔다. 야권은 납득할 수 없는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검사 탄핵은 계속 추진할 것이며, 국회 법사위 조사와 공수처 수사 등을 통해 진상 규명 작업도 병행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헌재는 이정섭 검사의 의혹에 대한 실체적 규명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며 "애초에 검찰은 이정섭 검사에 대한 의혹 규명 요구를 검찰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협조를 거부했다. 엄연히 이정섭 검사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사법 시스템을 통해서 이를 규명하고 심판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연 헌재의 기각 결정이 국민의 법 상식에 부합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민주당은 국회 법사위 차원에서 이정섭 검사의 비리 의혹에 대한 실체 규명 노력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검찰개혁 태스크포스(TF) 단장인 김용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헌재의 보수화와 검찰의 조직적 방해가 만들어낸 기각 사건"이라며 "이번 결정은 검찰개혁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 과제는 끝까지 완수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또 "현재 국회에서 진행 중인 검사 탄핵에 대해 국힘과 검찰이 헌재를 믿고 방해하더라도 우리는 국민을 믿고 계속 나아가겠다"면서 "검사에 대한 징계가 일상적이고 공정해져야 억울한 국민이 안 생긴다. 그렇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2024.8.29 [공동취재]
 

조국혁신당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대단히 안타깝다. 헌재가 기각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빈 구멍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의 수사를 통해 메워져야 한다"며 "헌재의 기각 사유는 이 검사 비위 혐의의 구체적 양상과 직무 관련성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가 헌재에 이 검사 파면을 요청하면서 제출한 탄핵소추안이 부실했던 탓"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검사의 비위 사실과 직무 관련성을 특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쪽 소추인이 얼마나 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라며 "당시 법사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이고 이정섭 검사 탄핵소추에 소극적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짚었다.

원내 제4당인 진보당은 '추악한 공범의 사슬'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가장 격렬한 입장을 내놨다. 홍성규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눈물이 나올 만큼 참담하고 분노스럽다"며 "이럴 거면 도대체 검사탄핵제도는 왜 만들어둔 것인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 무슨 죄를 지어도 번번이 벌을 줄 수 없다고 하는 법의 존재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검사불패에 다시 무릎 꿇은 헌재의 굴욕적인 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 원인 사실 6가지 모두에서 도저히 눈 뜨고는 봐줄 수 없을 만큼 구린내가 진동했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반대 의견을 제출했고, 헌재는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과 법무부에 이어 헌재까지 추악한 공범의 사슬로 하나가 된 셈"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