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청회에서 정재열 본부장 설명을 듣고 있는 참석자들.
‘객관·공정’ 확보장치 관건
토론토 한인회가 내년 한-캐 수교50주년에 즈음해 캐나다 한인이민사 반세기를 정리해 책으로 펴낸다는 ‘이민사 편찬사업’을 처음으로 동포사회에 공개 설명했다. 그동안 소수그룹 주도로 일사천리 밀어붙이며 ‘졸속추진’ ‘총체적 부실’등 쏟아진 비판을 외면했던 태도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지난 24일 각계원로를 포함, 70여명이 참석해 관심을 보인 공청회에서 한인회는 검증 문제점과 기간촉박 등 지적을 유념하겠다는 낮은 자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편찬기구의 구체적 인적구성과 명실상부한 운영, 필진 및 집필의 편파우려 및 보정방법 등 합리적이고 실질적으로 ‘공정과 객관성’을 담보할 가시적인 개선안은 아직 내놓지 않았다. 지난 한달간 “한인동포들의 자존심이 걸린 역사기록을 몇몇이서 입맛대로 버무려 담으려 한다”는 등 문제점을 지적했던 인사들은 한인회의 수용자세를 평가하면서도 “공청회를 통해 해명과 설득에 중점을 두더라”면서 ‘쓴소리를 못들은 척’에서 ‘들을 척’으로만 바뀐 것은 아닌지, 여전히 불안감을 남겼다고 주장하고 “앞으로 진행과정을 지켜보겠다”고 이구동성 입을 모았다.
한인회 이민사 편찬작업의 문제점과 공청회에서 밝힌 개선내용 등을 짚어본다.
캐나다 한인이민 역사가 60년 안팎에 이른 시점에서 한인동포들의 발자취를 모아 이민사를 펴내는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든다는 게 중론이다. 언제든 해야 할 일인 만큼 이제라도 시작한 것이 다행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발상과 의욕은 칭찬 할만 하지만, 방대한 작업을 너무 쉽게 생각한 나머지 여론 수렴도 없이 일방 추진한데다, 지나치게 성급하고, 편협하게, 객관 및 공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방법과 절차로 서둘러 해치우려 한데서 각계의 거센 비판이 불거져 나왔다.
■ 여론 수렴없이 일사천리 추진= 우선 지적된 문제점은 편찬작업에 대한 각계 여론과 의견 청취를 생략하고 일방 추진한 것이다. 한인회는 편집장 모집 및 임명 공지를 냈을 뿐, 내부적으로 이민사 편찬사업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상근여직원을 채용해 구제적인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외부에 거의 알리지 않았다. 4월16일 가진 첫 필진 설명회에서 이미 확정된 ‘이민사 프로젝트’ 내용과 내년 1월14일 출판기념회까지의 제작일정, 책자의 페이지, 항목, 선정된 필진 등을 알리고 각자 9월까지 20페이지씩 쓰라며 1인당 1500$을 지급한다는 계약까지 맺었다. 예정 30명중 확정된 23명이 모인 필진은 “나와 달라“는 그날, 원고제목과 마감일까지 할당받은 것이다. 이때 한인회는 필진들에게 설명회를 가졌다는 보도자료만을 공개하고, ‘프로젝트’ 자체는 물론 필진도 알리기를 꺼렸다. 다만 불투명한 재원확보 방안으로 1인당 100$이상 후원할 ‘자문위원 300명’ 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냈다. 누가 보아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비밀주의와 앞뒤가 맞지않는 사업진행이었다. 시사 한겨레 보도를 통해 이같은 ‘일방적 졸속추진’을 알게 된 각계 원로와 동포들이 비판을 쏟아내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 이름뿐인 조직과 역할= 조직과 기구는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인회는 이민사 편찬 프로젝트를 위해 편찬위원회와 편집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편찬위원회는 총괄 정재열 한인회 이사장과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여직원 1명, 그리고 편집위원회에 위원장 김세영 이사, 김운영 편집장, 위원 김규철 이사 등이 인원의 전부였다. 결국 5명이 조직의 성원이었고, 이들이 ‘프로젝트’를 만들었으며, 추진체인 두 위원회는 사실상 이름 뿐 임을 알게 했다. 사업을 진행하고 편찬 방향 및 항목결정, 필진선정, 집필지도, 자료수집 및 선별, 검증, 원고감수와 보정 및 첨삭 등 복잡한 단계별 작업을 이같은 허술한 조직으로 감당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대한 각계의 문제점 지적에 대해 한인회는 ‘5.24 공청회’에서 사업총괄을 이우훈 이사장이 새로 맡고, 정재열 이사를 본부장으로 했다고 밝혔다. 또 편찬위원회는 ‘10여명으로 구성’하고, 편집위원회는 편집장과 부편집장, 편집위원 등으로 구성하며, ‘감수위원회’를 새로 만들어 원로중심으로 구성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언제, 누구를 선정해 위원회를 구성 완료하여 실질 운용할 지는 숙제로 남아, 역시 ‘면피용 명목기구’로 내세운 게 아닌지 두고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부에선 이민사 편찬기구에 대한 설치 및 운용 규칙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또 윤택순 전 한인회장은 이민사 편찬은 향후 지속돼야 하므로, 차제에 상설기구를 설치하자는 제안도 했다.
■ 편향된 필진과 검증소홀= 이민사 편찬작업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료수집 및 검증과 집필이다. 이 부문에서 한인사회에 오랜 경험과 이해를 지닌 각계 원로, 전직 한인회장 등은 한인회 ‘프로젝트’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즉 일부 신문의 자료가 대거 활용될 경우의 편향성, 그리고 필진이 일부 신문 소속 종사자 및 관계자들이 다수이고, 항목에 따라서는 문외한, 혹은 이해당사자, 짧은 이민경력 등으로 이민역사 기록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소화하고 정리하는 데 적절치 않은 필진이 선정됐다는 걱정이 쏟아졌다. 자료 선별의 객관성 확보방안과 검증 및 보정장치도 별달리 마련되지 않은 마당에 함량미달의 불공정한 글이 취합될 경우 수준이하의 말썽거리 책자를 내는 데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모 전 한인회장은 “한 신문사 직원이 3분의1 이나 되고, 그 회사에서 이민사를 쓴다고 했던 사람이 편집장을 맡아 한다는 데 괜찮겠느냐는 얘기들을 많이 해온다”면서 “그동안 편파성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첨언했다. 하지만 ‘5.24 공청회’에서 한인회는 필진 부분에 대해 별다른 개선책은 내놓지 않았다.
■ 단기간에 가능한가= 50~60년의 이민사는 단순하지 않다. 많은 곡절을 겪으며 발전해 왔고, 사안에 따라 다툼과 이견, 공(功)과 과(過)가 엇갈려 당사자들의 자존심이 부침(浮沈)하는 이해도 숨겨져 있다. 모국과의 정치적,사상적 갈등관계도 기억에 남아있다. 이같은 복잡다단한 역사의 발자취를 발굴하고 증언을 듣고, 취합하여 검증·선별하여 기록한다는 것이 단시일에 얼렁뚱땅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모든 자료가 일목요연히 정리되어 글을 쓸 경우에도 필자의 객관·공정을 위한 고심은 하루 이틀에 될 가벼운 일이 아니다. 또 개인이 아닌 공적 출판물이라면, 타인에 의한 검증과 보정, 첨삭의 작업도 필요하다. 그런데 한인회는 필진에게 9월까지 5개월간 원고를 완성하라고 맡겼다. 그리고 3개월간 번역을 하고 12월에 출판해 1월14일 기념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에 각계 인사들은 검증도 없는 단기·졸속을 염려하며 짜맞추기 일정으로 해선 안된다고 연장을 강력히 주장했다. 현 회장 임기중 마치려는 공명심도 버리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진수 회장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면서 “기간은 진행에 따라 신축적으로 하겠다. 하지만 길게 잡는다고 반드시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만도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답변, 상황에 따라 늦어질 수 있지만 일부러 늦추지도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 불투명한 재원대책= 이진수 한인회장은 공청회에서 “재원이 가장 큰 걱정”이라면서 재정적 후원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대해 한 원로는 “사업을 제대로 하면 자발적으로 많은 동포들의 후원이 답지할 것”이라고 응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편찬사업 추진이 선결 과제임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사실 이번 편찬사업의 재원은 현재로서는 막연하다. 당초 한인회는 모국과 캐나다정부에 5만$을 요청하고 책자 1천부를 팔아 5만$을 충당하며, 자문위원 300명이 3만$, 그리고 기타 찬조금 1만5천$ 등 14만5천$을 계상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정부지원이 여의치 않고, 책자 판매수입도 ‘수긍할 만한 작품’을 만들지 않는 이상 장담할 수 없으며, 후원금도 예상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5.24 공청회에서 한인회는 다소 수정해 모국과 캐나다 정부 보조금을 1만$, 편찬위원회 찬조금을 4만$ 등으로 조정했다.
한인회는 예산지출에 필진 원고료와 번역료 등으로 7만$을 쓰고, 사무행정 관리비에 3만$, 디자인과 인쇄에 4만$, 출판기념식에 5천$을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일부에서 필진들의 명예봉사를 주장한데 대해서는 “자료수집과 수고료로 불가피하다”며 “누가 무료 봉사하겠느냐”고 반박했다. 하지만 키치너-워터루 한인회 송선호 회장은 “나 라도 써서 보낼 테니 넣어만 달라”고 말하는 등 널리 공모해보지도 않고 지레 주장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 타지역 경시·항목 기계적 배분= 이밖에 캐나다 이민사를 온타리오 중심으로 만들 경우 다수 한인이 있는 밴쿠버를 비롯해 몬트리올, 캘거리, 몬트리올 등을 20페이지씩 배분하고, 여타 지방은 제외하는 방식에 각지 동포들 반응이 걱정스럽다는 지적도 나왔다. 토론토 위주의 항목선정과 주도적 추진에 타지역 호응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소수의 임의로 결정된 항목에 대해 다수 시각의 전문가들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항목별로 기계적인 20페이지 균등 배분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공청회에서는 토론토가 주도하더라도 한인회 총연합회나 각지 한인회와의 연계 협력으로 범 캐나다범위의 이민사편찬이 되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이에대해 한인회는 한인총연합회 및 각지 한인회와의 연락 및 협조에 애로가 있음을 토로했다. 또 자문위원단을 100$이상 찬조하는 후원인사들로만 구성하지 말고 명실상부한 자문그룹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한인회는 각계 지도자들로 구성해 최상의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조직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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