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우리 교회 기쁨과 소망]
가득할 복(畐)옆에 무엇을 둘 것인가?
함진원 목사 < 순례길교회 담임 >
복(福)하면 떠오르는 성경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그의 이름이 아브람(큰 아버지)에서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으로 바뀌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 또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그의 이름을 떨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말 복을 받은 인물이었을까요?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을 때는 그의 나이 75세, 그가 드디어 아들을 얻었을 때는 100세... 약속이 이루어지기 까지 무려 25년이 걸린 것입니다. 말이 25년이지, 이 기간동안 아브라함과 사라가 겪은 일들을 생각해 보면 ‘그가 정말 복을 받은 인물이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단 그는 나그네가 되는 일을 감당해야 했고, 아름다운 아내로 인해 자신의 안전을 전전긍긍해야 했고, 처음엔 재산도 있었지만 나중엔 목숨이라도 붙이자고 애굽으로 들어가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주 긍정적인 시선으로 봐줘서 아브라함이 자신을 사라의 오빠라고 (두번이나) 속이는 행위도 결국은 자신이 죽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지 못하게 됨으로, 그것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처신이었다 해도, 25년이라는 시간의 무응답은 복(福)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의 인생을 복의 근원이라고 규정 지은 것일까요? 이 25년의 세월도 그가 복의 근원임을 말하고 있을까요?
복(福)이라는 단어는 ‘가득할’ 복(畐)자 옆에 ‘보일’ 시(示)자가 있습니다. 시(示)자는 제단의 모양에서 나온 상형문자인데, 신과 연관이 있는 문자입니다. 신에게 보여주는 것도 의미하지만, 신이 보여주는 것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채워 주시는 것이 복(福)입니다.
그런데, ‘가득할’ 복(畐)자 옆에 사람(人)이 들어가면,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人)+ 복(畐)= 핍박 할 핍(偪)자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을 봐도 그가 뭔가를 스스로 이루려 할 때마다, 오히려 걱정거리가 하나씩 늘어만 갔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결국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스스로 보이시고, 말씀하시고, 그와 동행하는 것, 바로 그것이 진정한 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00세가 되어 아들을 얻은 순간부터 비로소 복의 근원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순간부터 그는 이미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복의 주체는 그의 소유에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복의 근원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걷는 길을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동행하며 그의 실패와 실수를 다 수습해 주십니다. 그의 결핍을 채워 주십니다. 25년의 세월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훈련시키고, 가르치는 가운데 그와 함께한 아주 의미있는 복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득할 복(畐)자 옆에 무엇을 둬야 할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실 자리를 두시고, 그분이 개입할 여지를 두시고, 그분과 함께 할 시간을 두십시오.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福)된 순례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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