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의 주범은 정부, 이런 경제위기는 ‘정부 재정 위기’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37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우리나라 경제가 ‘침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기획재정부가 우리나라 경제가 ‘둔화’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지 반년 만이다. ‘둔화’를 넘어 ‘침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최근 우리나라 경제가 안 좋다. 물론 심리적으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는 항상 안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침체’라는 늑대가 나타났다고 해도 양치기 소년의 말처럼 별 감흥 없이 들릴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잡았던 한국 경제

 
그러나 외환위기 극복 이후 우리나라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했다. 경제지표만 보면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 할 만하다. 국내총생산(GDP)은 1998년 3800억달러에서 2020년 1조6천억달러를 초과했다. 무려 330% 급증이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지디피 평균 증가율은 104%에 불과하다. 디지털 혁명을 주도하며 ‘나홀로 성장세’라는 미국 지디피 증가율도 130%다. 유럽의 제조업 강국 독일은 70%, 영국은 64%, 일본은 26% 성장에 그친다.양적 성장뿐만 아니다. 우리나라의 질적 성장은 더욱 눈부시다. 2000년 우리나라 지디피 대비 연구개발(R&D)비 지출 비율은 오이시디 평균에도 미달했다. 그러나 최근 20년 동안 연구개발비 지출 비율은 미국과 대만을 큰 차이로 따돌리고 이스라엘과 투톱 체제를 확고히 한다. 2000년 우리나라 사회복지 지출액은 지디피 대비 4.4%로 압도적인 꼴찌에서 12%까지 증가했다.
 
2000년대의 눈부신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유소년 인구는 줄어들고 아직 노인 인구는 많지 않아 근로가능인구가 황금기인 이유도 있겠다. 나아가 2000년대부터 비로소 우리나라 재정이 정비되고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우리나라 재정의 기틀은 2006년 국가재정법이 제정되면서 마련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재정이 자원배분의 효율성, 형평성, 경기 조정 등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1998년 우리나라 정부 전체 지출액(오이시디 기준)은 100조원에 불과했다. 2020년은 660조원이 넘는다. 지디피 증가를 훨씬 뛰어넘는다. 아직도 지디피 대비 국가 지출 규모는 오이시디 평균에 크게 못 미치지만 그래도 눈부신 성장을 한 것은 맞다.
 
결국 우리나라는 1970년대 산업화, 1980년 민주화에 성공했고, 2000년도 이후에는 국가 재정의 기틀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이런 ‘제2의 한강의 기적’을 통해 구매력 기준 1인당 지디피는 2018년 이미 일본을 추월했다. 실질 1인당 지디피의 일본 추월도 2027년일지 2030년일지는 몰라도 조만간 따라잡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위기도 겪었지만, 위기 때일수록 오히려 다른 선진국보다 더 빠르게 극복했다. 그야말로 ‘눈떠보니 선진국’이었다.
 

정부의 ‘청개구리 재정정책’

 
 
그러나 올해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제통화기금( IMF )이 10월 예측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4%다. 미국은 2.1%다 . 21세기 들어서 처음으로 일본 성장률 2%보다 뒤처졌다. 국제통화기금의 선진국 평균 경제성장률 1.5%에도 미치지 못한다. ‘눈떠보니 후진국’이 되는 느낌이다.
 
올해 경제지표를 자세히 분석해보자. 경제성장률(지디피 증가율)은 ‘소비+투자+순수출’이다. 이들이 늘면 지디피도 증가한다. 올해 수출은 3분기(누적)까지 7.2% 증가했다. 수입 증가율 2.9%를 크게 상회한다. 수출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문제는 내수다. 올해 3분기까지 투자(총고정자본형성)는 -0.38% 역성장했다. 소비(최종소비지출)는 불과 0.16% 증가했다. 1.6%가 아니다. 소비가 3분기 동안 0.16%만 증가한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결국 최근 경기 침체의 주범은 소비와 투자에서 발생한 내수 위기다. 3분기 누적 소비 증가율이 0.16%를 하회했던 시기가 언제일까? 바로 외환위기, 카드대란 위기,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 외에는 없다. 즉 내수는 1997년 이후 이런 위기 때를 빼고는 꾸준히 증가했다.
 
그럼 2023년 위기의 이름은 무엇일까? 이건 외국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진원지도 명확하지 않다. 나는 이를 ‘정부 재정 위기’라고 명명하고 싶다.코로나19 위기의 경우 민간소비가 감소(-6.4%)할 때, 정부는 지출을 늘려(2.3%) 소비 감소를 방어했다. 금융위기 때도 민간소비 감소(-2.9%)를 정부 지출 증가(5.6%)로 완화했으며, 카드대란 위기도 민간에서 발생한 불을 정부가 진화했다.
 
그러나 2023년 경제위기의 진원지는 민간이 아니다. 혹자는 가계빚으로 인한 민간소비 감소를 2023년 위기의 진원지라고 평하지만 민간소비는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0.84% 증가했다. 다만 정부소비가 -1.56% 역성장해서 내수 경기 악화의 주범이 됐다. 올해 민간투자 증가율은 0.62%, 정부투자는 무려 -5.63%로 전체 투자 증감률은 -0.38%다. 결국 2023년 경제위기의 주범은 정부이며 이런 경제위기는 ‘정부 재정 위기’라고 불러야 한다.
 
국가 살림 원칙은 가정 살림 원칙과 반대다. 가정은 수입이 늘면 지출을 늘리고 수입이 줄면 허리띠를 조여야 하지만 국가 재정은 내수가 나쁘면 지출을 확대하고 내수가 좋으면 지출을 줄여 경기 조절 역할을 해야 한다.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2023년 정부 지출이 왜 줄었을까? 세수가 줄었다고 정부가 당장 지출도 줄일 수 있을까? 국가 살림은 주먹구구가 아니다. 올해 지출 용처와 규모는 모두 2022년 말 국회에서 예산 심의 때 이미 확정됐다. 여야는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정치투쟁을 통해 2023년 639조원의 지출을 확정했다. 임의대로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만약 세수 부족으로 지출을 줄이고 싶으면 국회에 감액추경을 요청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감액추경 등 국회의 동의 없이 임의로 지출을 줄이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2023년 ‘정부 재정 위기’다.특히 기재부는 지방정부에 23조원의 교부세 등을 올해 지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회가 확정한 금액을 추경조차 없이 지방정부에 지급하지 않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전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행정안전부는 23조원의 교부세 감액을 공문 한장 없이 전화 등의 비공식적 절차로 통보하고 있다. 그런데 야당은 아무런 지적도 반응도 없다. 경기가 어려우니 이미 국회가 확정한 금액이라도 정부가 충실히 지출하기만을 바라는데 이조차 언감생심이다. ‘눈떠보니 후진국’이 되는 느낌이 계속 드는 이유다.       <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