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삼권분립 허상과 ‘합법 독재’

● 칼럼 2023. 11. 18. 07:3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한마당]  삼권분립 허상과 ‘합법 독재’

 

김용민 화백

 

대한민국은 엄연히 헌법을 바탕으로 삼권이 분립된 민주주의 국가다. 3권 분립은 정립(鼎立)이라고도 한다. 입법-사법-행정부가 마치 솥의 세 다리처럼 균형과 견제로 국가를 이룬다 하여 민주국가의 정치 시스템을 그렇게 표현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삼권이 정확히 균형을 이루며 서로 견제하는 나라가 맞는가? 대답은 한마디로 “아니올시다”이다. 한국사람 어느 누구도 삼권이 정립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입법과 사법에 비해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 권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민주정치 시스템을 답습했다고 하나, 입법권력이 막강하고 각종 법률적 정치적 견제장치가 작동하는 미국에 비해 한국의 대통령 권력은 거의 기형적이라 할 만큼 무소불위에 가깝다. 법규정과는 달리 그 사람의 개인적 자질과 민주적 소양에 따라 고무줄처럼 무한대까지 늘어나 ‘왕정시대 아니냐’는 말이 나기도 한다. 요새 한국의 정정(政情)은 그런 초법적 권력을 확연히 체감시켜 준다.

사법부 독립이 법에 명시된 원칙이고 상식임에도, 대법원장 후보추천을 앞두고 대통령실이 왈가왈부하더니 ‘설마’가 ‘역시나’가 되는 것을 보았다. 대통령 구미에 맞는 판결을 유도해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 재발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온 이유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역시 대통령의 대학동기가 지명됐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비해서도 월등하다. 국회가 ‘민의’에 따라 제정한 법률을 거부권(재의 요구권) 하나로 무력화 시킬 수가 있다.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사례가 말해준다. 국회는 청문회를 통해 장관후보자들의 자격을 따지지만, 적부 검증에 상관없이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다. 현정부 들어 19명이 그렇게 청문절차를 ‘패싱’했다. 국회는 국무위원들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건의’여서 국회에서 다수결로 사실상 파면된 총리도 장관도, 대통령의 국회 무시에 기대어 보란 듯이 직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 권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대통령의 위세는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법부 수장과 대법관들을 임명하도록 한 월권적 모순과 마찬가지이고 선거관리위원회나 감사원도 예외는 아니다. 역시 민주정치 시스템의 결함 가운데 하나라고 봐야한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언론이고, 독립성과 중립성이 생명이다. 그래서 제4부 라고도 한다. 하지만 언론, 특히 방송의 ‘생사여탈권’을 가졌다고 할 만한 방송통신위 위원장과 위원, 방송통신심의위 위원들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언론의 견제를 받아야 할 권력이 언론 감독 감시기구를 좌지우지 할 수 있게 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엊그제 사장 임명 전후 황당하게 제작진과 앵커 등을 무더기 교체하는 사달을 낸 한국방송(KBS)의 경우에도 사장 임면권을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애초에 불편부당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권력에 호의적인 언론지형을 만들려는 유혹은 어느 정권이나 있게 마련인데, 현실적으로 그 유혹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여지가 곳곳에 널려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힘은 정부의 기관들 뿐만 아니라, 산하 공기업은 물론 민간 영역에도 폭넓게 미친다. 금융기관과 단체의 장들, 심지어 사기업의 임직원들 자리도 영향을 받는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직간접 영향을 받는 자리가 어림잡아 1만8천개에 달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권력이요 ‘합법적인 독재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토양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면 당연히 이들 자리가 일제히 뒤바뀐다. 권력이동에 뒤이어 엄청난 자리이동의 후폭풍이 인다. 문제는 자리 뿐만이 아니라는데 있다. 나라의 정책기조가 경우에 따라 180도 전환한다. 현 정부가 들어선 뒤 외교정책은 외교관들이 헷갈릴 정도로 바뀌었다. 국방과 교육, 경제 등도 완전히 달라졌다. 인사폭풍과 함께 글자그대로 천지개벽 수준의 대전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5년마다 대통령 한사람 바뀌는 것으로 나라의 정책이 천지가 바뀌듯이 하루아침에 달라진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도, 정상적인 일이라고도 할 수 없다. “자고나니 후진국”이라는 자조섞인 한탄이 나오는 상황이나, 대통령이 안하무인의 독재적 권력에 심취하게 되는 현실이 국가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무엇보다 그런 제왕적·독재적 권력을 쟁취하려는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의 후유증은 심각하기 이를데 없다.

대통령제가 매력적이라고는 하나 권력행사의 범위를 좁히고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 국회의 통제를 원용하되 사법수장은 사법부가 뽑고, 언론통제는 언론계 스스로 하게 해야 한다. 최근 국회가 통과시킨 방송3법도 그런 방편의 하나다. 거부권으로 무산시킬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국가정책의 변화도 정체성 혼란이 없을 만큼의 제한을 둬야 한다. 대통령 때문에 나라와 국민이 큰 고통을 겪는 것은 불행이다. 대통령은 권력만 향유하기 보다 오직 국민을 섬기며 국가발전 헌신에 집중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