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강하면 부러지고 누르면 튄다

● 칼럼 2023. 11. 4. 08:04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강하면 부러지고 누르면 튄다

 

‘화약고’ 중동에서 다시 불꽃이 튀었다. 50년 전 제4차 중동전쟁인 이른바 ‘욤키푸르’ 전쟁 이후 최악의 유혈충돌이 벌어졌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오랜 반목이 그동안 수면하에서 들끓다가 마치 화산 폭발처럼 하마스라는 분화구를 통해 반세기 만에 ‘임계 폭발’이 재현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동-서 간의 냉전이 다시 시작됐다는 불안과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는 요즘의 국제정세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미국 중심의 우군세력과 러시아 편을 드는 쪽으로 갈라져 대립하는 바람에 지구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지 벌써 2년째. 이제 이스라엘 편을 선언한 미국 유럽 등 서방세력과 하마스의 후견을 자처하는 아랍의 반서방세력으로 또 분화·분립하여 극한 분쟁과 감정대립의 파고가 한층 거세질 것만 같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 이스라엘과 친 하마스 시위들이 이 분열과 대립의 현실을 말해준다. 특히 다민족 국가인 캐나다에서는 한쪽에서 이스라엘 규탄, 다른 한쪽에서는 하마스의 테러를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캐나다 국내마저 양분되고 있는 양상이다.

사람과 땅을 정복하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힘을 겨뤄 온 인류 역사에서 어느 한때 대립과 분쟁이 없었을까마는, 최근 국제정세를 보면 불판의 열기로 끓어오른 수증기에 주전자 뚜껑이 들썩이는 것처럼 조마조마하다. 언제 뚜껑이 튀어 올라도 이상하지 않은 불안한 상황. 마침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이번에는 하마스의 도발이 이어졌다. 대만을 둘러싼 긴장과 한반도의 안보정세도 심상치 않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며 내연하던 응축된 힘들이 미국이라는 최강의 ‘뚜껑’이 쇠락기미를 보이면서 불만과 적개심이 분출되기 시작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 충돌사태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미국의 책임을 거론한다. 이른바 ‘악의 축’이라고 생각하는 적대국들을 제압하고 따돌리기 위해 무리한 압박작전을 벌이다가 반작용을 부르며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추진한 중동정책은 ‘야심찬 평화구상’이라고 포장하지만 속셈은 이란을 ‘왕따’시키는 것이었다. 시아파 이란과 적수이며 수니파 수장이고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안전보장을 미끼로 이스라엘과 화해시키려 했다. 중동의 판도를 뒤바꿀 그야말로 야심찬 전략일 수는 있으나, 모두에게 이익이 아닐진대 계획대로만 될 리가 없다. 궁지에 몰릴 상대측이 기를 쓰고 덤벼들 것이라는 국제역학의 상식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바레인과 아랍에미레이트에 이어 사우디까지 이스라엘과 손을 잡으면 이란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역시 극한 상황에 내몰리게 될 하마스의 울분을 이란이 부추겼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팔레스타인을 무시하고 정착촌을 밀어붙이는 등 독선적인 정책으로 극심한 반감을 사고, 국내적으로도 사법개혁 등 반민주적 극우행보로 지탄을 받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부를 거든 이중적 태도 역시 바이든 책임론의 하나다.

중동의 파열음을 주시하면서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불안을 떠올리는 이들도 같은 맥락으로 미국을 겨냥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위협적 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고 ‘왕따’시키려는 협공전략에 몰두하면서 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압박 포위전략으로 이란을 고사시키려다 사달이 난 중동과 판박이가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은 최고의 우방국으로 여기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라는 정보동맹체를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운영해 왔다. 그런데 2천년대 들어 중국이 급부상하자 일본·인도·호주가 참가하는 4자 안보 협의체 ‘쿼드(Quad)’를 결성했다. 또 2021년에는 영국·호주와 3개국을 묶는 최상급 군사동맹체로 ‘AUKUS’를 출범시켰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한국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한국과 일본을 압박해 3국 안보체제를 강화하고 NATO에도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을 강압하는 3중 4중의 철망을 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뜻대로 중국이 쪼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러시아와 제3세계 중견국들인 ‘BRICS’(Brazil·Russia·India·China·South africa)와 연대를 강화해 세력을 키우고, 러시아-북한과 밀착하는 신냉전 구도를 초래하는 형국이 됐다. 미국에 올인하다 ‘불똥’을 자초한 윤석열 정부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에 직면했고, 남북간 극한대치로 한반도 위기지수는 날로 치솟고 있다.

국제사회도 당연히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힘 겨루기가 국가별 안위와 부침을 좌우한다. 세계평화는 최강국의 리더십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힘을 가진 미국이 자국 이익에만 눈이 멀어 힘을 오용하게 되면 평화가 이뤄질 리 없다. 상대세력의 반발은 물론 수많은 약소국들이 피해를 보고, 원성이 터져나올 게 뻔하다, 힘의 쇠락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무리한 발버둥을 치면 칠 수록 지구촌 물은 흐려지고 애매한 물벼락 피해는 늘어나는 것이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고 강압하면 튀어 오르는 게 인간사의 법칙이다. ‘괴물’ 트럼프가 심화시킨 대립과 갈등의 골이 미국 내부는 물론 글로벌 불화를 가중시킨 여파에 시달리면서도 슬그머니 답습하는 바이든의 우둔을 읽는다. 한국의 윤 정부도 눈을 떴으면 보고 귀가 뚫렸으면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하늘처럼 받드는 미국의 오만과 강공이 어떤 결과와 평가로 후유증을 부를지를 생각해 보는가. ‘방구석 여포’라 했는데, 국내에서는 검찰독재 비판에 눈귀를 막고 강공일색 무모의 질주를 즐기니 참 위태롭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