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뉴요커’의 비판

● 칼럼 2023. 10. 10. 12:1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  ‘뉴요커’의 비판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 대통령을 무참히 살해했다. 부시의 도발을 무조건 찬동하며 참전하는 바람에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영국 역사상 최악의 실패한 외교정책이었다는 이른바 ‘칠콧보고서’의 혹평으로 역사에 두고두고 오명을 남겼다. 블레어 전 총리가 ‘부시의 푸들’(Bush’s poodle)이라는 모욕적 별명까지 얻은 업보다.

영국은 미국의 ‘세계경영’에 거의 보조를 맞추며 적극 지지하고 협력해 ‘역시 형제국’, 최강의 동맹이라는 느낌을 줄 때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으로 독일과 싸운 ‘혈맹’인 미국과 영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처칠 수상은 끈끈한 우정으로 협력하며 승전을 합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실상은 처칠이 얼마나 루스벨트에게 반감을 가졌는지, 역사의 뒤안길을 파헤치는 사가(史家)들은 전쟁 막바지 루스벨트가 뇌출혈로 죽었을 때 처칠이 그의 장례식을 외면해 버린 것을 사례로 든다.

 

독일의 침략으로 프랑스가 무너진 뒤 영국은 끝없는 공습에 시달리며 고군분투했다. 처칠은 미국에 달려가 때로는 한달 씩이나 머물며 루스벨트에게 무기와 장비지원을 애걸했지만, “무상 지원할 수 없으니 현금거래하자” “영국이 항복하면 독일에 무기를 바치는 꼴”이라며 3개월을 끌었다. 다급한 영국은 캐나다 뉴펀들랜드와 카리브해에 있는 여러 해공군기지를 99년 무상 대여하고 미국내 자국 자산을 헐값 처분하는 등 굴욕적인 손실를 감수했는데, 미국이 제공한 건 쓰지도 않던 중고 구축함 50척을 제공하는데 그쳤다. 처칠은 사석에서 온갖 욕설로 분을 쏟아냈다고 한다. 영국은 2차대전 기간 미국에 진 ‘빚’을 2006년 12월에야 다 갚았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언론인인 M. 헤이스팅스는 영국과 미국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두 나라가 특수한 관계라는 생각, 즉 미국이 영국에 대해 우호적 조처를 취해 줄 것이라는 기대, 그것은 환상이다.”

 

한국의 윤석열 정권이 중-러와의 관계악화를 감수하고 굴종까지 마다않으면서 미국에 일본까지 포함한 ‘이념·가치외교’와 ‘동맹’에 몰입하는 것을 보면, 가히 ‘바이든의 푸들’이 아닌가 할 정도다. 그러면서 국내에서는 극우 전체주의적인 양태로 비판세력과 ‘이념’전쟁을 벌여 아예 진멸해 버리겠다는 태도다.

 

주요 언론들이 ‘윤비어천가’만 부르며 무도한 행태에 눈을 감고 있는 사이, 미국의 영향력 있는 주간지 ‘뉴요커’가 윤 정권과 바이든 정권을 싸잡아 비판하고 나서 눈길을 모은다. 뉴요커는 윤 정부가 언론탄압과 시민사회 및 노조탄압, 야당 정치인 수사 등 30년 전의 군사독재를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소위 민주주의 가치를 외치는 바이든 정부가 인도의 모디 정부와 베트남 공산당과 같이 탄압과 독재적 통치로 기운 윤 정부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환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정부에는 인도나 베트남 같은 폭력적 억압 정권과 다를 바 없다는 비평을, 바이든의 미국은 이를 묵인하는 이중성을 고발한 것이다.

 

실제로 큰 형님 모시듯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윤 정부가 만약 바이든으로 부터 쓴소리를 들었다면, 야당대표 구속에 그렇게 기를 쓰고 덤볐을까. 야당 당사며 언론사와 노조사무실을 막무가내 압수 수색할 수 있었을까. 자기들이 눈총을 주면 그렇게까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아마 미국도 잘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모처럼 말 잘듣는 정부, 여러모로 국제역학 관리에 효용가치가 좋은 인물을 만났으니, 독재든 극우든 구태여 제동을 걸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 보수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의 보수인사들과 싱크탱크들이 기뻐했다는 말이 그걸 뒷받침 해주고도 남는다.

 

이른바 ‘혈맹’의 허상, 자유와 민주의 본산처럼 여기는 미국의 허구, 그 미국을 하늘처럼 받드는 ‘가치외교’의 허망을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세계 곳곳 정치와 분쟁에 개입하며 국제질서 재편을 주도해 온 미국의 족적을 보면, 정의로운 나라이며 악과 싸우는 자유의 수호천사라거나. 민주주의의 보루라고까지 생각하는 미국의 민낯은 유감스럽게도 허상임을 확인해 준다. CIA를 활용해 벌인 더럽고 추잡한 공작과 전쟁들은 한 둘이 아니다. 그때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밷는(甘呑苦吐) 철저한 자국 이기(利己)와, 힘을 선(善)으로 포장해 패권만을 쫓는 ‘이중인격 국’임이 역사의 고비 고비에서 입증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도 다르지 않다. 조선을 넘긴 일본 제국주의와의 밀약, 소련을 막겠다는 38선과 신탁통치, 친일 매국노들을 활용한 반공통치, 전범국 일본을 부활시키고 독도까지 묵인한 정략거래, 쿠데타 마다 추인까지…지금도 전작권을 담보로 한국을 속국처럼 여기는데, 윤 정권은 미국의 압박에 일본 비위를 살피고, 동해를 ‘일본해’라는 데도 한마디 항의조차 못하며 처분만 기다린다.

 

‘허구’와 ‘허상’을 망각하면 허망에 빠질 수 밖에 없다. 혈맹이며 형제국인 “특수한 관계라는 생각, 그것은 환상”이라는 영국의 한탄을 미리미리 귀담아 새기지 않으면 험악한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미국에선 트럼트가 꿈틀대고, 북한은 러시아·일본과 교섭 중이다. 불안한 징조들은 사방에 널려있다.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