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정적 제거의 비열함

● 칼럼 2023. 10. 10. 12:5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정적 제거의 비열함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지난 18일 하원 긴급연설에서 인도 정부를 공개 비난한 내용은 놀랍다.

지난 6월 BC주에서 총격 피살된 시크교도 분리주의 운동단체 지도자가 인도정부 요원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것이다. 트뤼도 총리는 신뢰할 만한 정보분석 결과를 들어 “캐나다 국적 시민이 캐나다 영토내에서 살해된 것에 외국정부가 개입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주권침해”라고 인도를 맹비난했다. 트뤼도 총리는 지난 주 인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게 이 문제를 강력 제기했다고도 덧붙였다. 외교관 맞추방과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중단 등 양국 관계가 극히 험악해졌다.

캐나다의 인도계 140~180만명 중 거의 절반에 달하는 시크교도의 지도자로 알려진 피살자 하디프 싱 니자르(45)는 시크교도 독립국가 건립운동을 펼쳐, 인도 정부가 ‘테러분자’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니까 인도의 힌두 민족주의 세력을 정치기반으로 하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 정부가 캐나다 시민인 눈엣가시 시크교도 정적을 자국 정보원을 보내 살해했다는 이야기다.

사실이면 캐나다 정부는 암살을 실행한 인도 요원을 붙잡아 캐나다 법으로 처벌했어야 옳다. 자국내에서 시민을 살해했는데도 단순히 추방에 그친다면 그야말로 위험한 선례가 되지 않겠는가.

모디 총리는 2002년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총리 시절 관내에서 힌두교도가 무슬림 1천∼2천명을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편파적인 태도를 보여 일부에선 ‘구자라트의 도살자’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제반 상황으로 볼 때 모디 혹은 그의 정부가 시크 지도자 암살의 배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파키스탄의 전 외교장관 빌라왈 부토 자르다리는 이를 두고 “인도가 깡패 힌두 테러리스트 국가가 됐다”고 힐난하기도 했다.

정적을 핍박하다 못해 목숨까지 빼앗은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까지 권력의 마수를 뻗쳐 암살을 마다않는 정권은 전제-독재권력이 아니면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국제법 위반이며, 비열하고 추악한 범죄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2013년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데 이어 2017년에는 말레이시아에 암살요원들을 보내 이복형 김정남을 공항에서 독살했다. 앞서 1997년에는 경기 성남에 거주하던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이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피살당한 일도 있다.

지난 6월 하루살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비행기 사고로 죽은 러시아 용병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사건은 푸틴의 보복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러시아에서 망명한 요인들이 독살 혹은 피살되는 일이 잇달면서 배신자나 반대자 제거작전이라는 관측이 나오곤 했다. 푸틴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리가 독살위기를 넘긴 뒤 감옥에 갇혀 20년형을 받은 것도 정적 죽이기의 본보기 사례 중 하나다.

요즘 중국에서는 국방부장(장관) 리샹푸가 3주일이 넘도록 행방이 묘연해 숙청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번지고 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촉망받는 실력자라던 친강 외교부장이 장기간 사라졌다가 면직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사실상 1인 지배 독재권력의 민낯이라고 할 수 있다. 푸틴이나 시진핑이 민주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아무리 권력 감시와 통제 시스템이 훌륭한 민주국가라 해도 권력자가 자신을 비판하고 대드는 사람들을 좋아할 리는 없다. 하다못해 욕을 하든, 귀쌈을 한 대 먹이든 보복하고픈 마음이 간절할 것은 보편적 인간심리다. 그렇지만 민주국가 정치제도는 권력의 작동 메카니즘 자체가 민주적으로 운용되게 설계되어 있다. 권력자의 위험한 독선적 행동을 제어하고 견제하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두고있고, 밖으로는 언론과 시민의 매서운 감시망이 있어, 자제하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이고 원리이다.

그런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최고법원의 판결을 묵살한 채 ‘제3자 보상’을 밀어붙이고, 최근에는 대법원이 유죄 확정했는데 3개월도 안돼 “법원판결이 잘못됐다”고 주장한 자를 특별 사면·복권시켜 보궐선거 재출마를 시킨 무법적 코미디가 벌어졌다. ‘시행령 정권’이라는 말도 상위법 무시를 지적한 말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비판 시민들을 공산-반국가세력이라 매도하고, 비판 언론에는 명예훼손 당했다고 고발한다. 한술 더 떠 “가짜뉴스” “괴담 제작소”라며 언론인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독설을 퍼붓는 민주국가 여당 대표를 본적이 없다. 특히 거대 야당의 대표를 출범이래 한번도 만나지 않고 범죄인 취급 적대시하면서, 손발처럼 부리는 검찰이 4백번 가까이 압수수색하고도 증거를 못잡아 몇 년째 특수수사로 괴롭히는 정권이 민주화 이후 있었던가. 더구나 단식 19일째 쇠진해 입원한 날 그 야당대표를 기어이 구속해 보겠다고 영장을 청구한 잔인무도의 극치를 21세기 ‘민주’국가에서 보고들 있으니… 정적 취급에도 금도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선열들의 피끓는 민주항쟁으로 오늘까지 지켜 온 나라가 아닌가.<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