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맥켄지 기념행사에 다녀와서

● 칼럼 2023. 11. 4. 07:52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기쁨과 소망] 맥켄지 기념행사에 다녀와서

 

 박태겸 목사 (캐나다 동신교회)

 

맥켄지는 지금까지 한국에 간 캐나다 선교사 중에서 가려진 인물이었습니다. 1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의 선교와 삶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그의 선교는 화려하지도 오래 지속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맥캔지 선교사는 숨겨진 보화였습니다.

그는 기독교 복음전도의 길이 막힌 이 시대를 위해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는 가을 들판에 핀 국화처럼 다른 선교사들의 화려한 사역의 꽃이 모두 핀 후에 가장 늦게 외로운 성도의 가슴에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휘장에 가려진 분향단의 향기와 같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그의 냄새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비난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중에 이번에 해외한인장로회(KPCA) 캐나다동노회 선교부에서 그의 선교의 중심을 찾아내고 그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길이 남기기 위해 고향 헬리팩스와 한인교회에서 기념행사를 갖게 된 것은 매우 소중하고 기쁜 일입니다.

맥켄지는 예수님의 영성을 가장 많이 닮은 선교사입니다. 그는 심령이 가난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였습니다. 그는 한국교회를 위한 그의 부르심의 목적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 조선에 온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왔습니다. 영광을 받기 위해 선교한 것이 아니라 한 알의 밀알이 되기 위해 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살다가 34세에 황해도 소래 땅에 묻힐 때 남은 유산은 미화 172달러 뿐이었습니다. 이것을 동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그가 조선에서 활동한 1893-1895년은 한국 역사상 가장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명성왕후(민비)가 일본의 칼에 시해되며, 콜레라와 폐병이 만연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어가며, 마침내 국운이 일본에게 넘어가는 절대절명의 기간이었습니다. 양반과 평민이 분열하고, 동학교도들이 서양종교와 선교사들을 죽이고, 제국주의가 조선반도를 지배하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중에 맥켄지는 서울과 평양이 아닌 시골 어촌인 소래교회를 선교지로 택했습니다. 그는 일본군에게 쫓기는 부상당한 동학 교도들을 숨겨주며 치료했습니다. 소래교회를 건축할 때 건축헌금 1/3은 동학교도들이 헌금했으며, 조선에서 선교사들이 세운 모든 서양교회를 불태울 때 동학교도들이 멕켄지의 소래교회는 우리를 위하는 교회인 것을 알리기 위해 조선 최초로 <십자가>를 달아 교회 표시를 하게 했습니다.

맥켄지는 캐나다 사람이 아닌 조선인보다 더 조선인으로 살았습니다. 그와 함께 동역하는 서상륜 서경조 영수(장로)는 맥켄지가 죽자 캐나다 선교부(PCC)에 맥켄지 같은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편지를 냈습니다. 소래 사람들은 그에게서 복음과 인격이 하나가 된 예수님의 성품이 보았습니다.

나는 한국교회가 그를 통하여 복음전파에 새로운 길을 찾게 되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