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기쁨과 소망] 감사의 훈련
노희송 목사
- 토론토 큰빛교회 담임목사 -
청명하고 높은 하늘 그리고 따스한 햇볕 아래, 곳곳에 붉고 노란 옷들을 입은 단풍으로 가을이 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 주일을 맞으면서 감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감사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감사를 잘하도록 양육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감사하는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감사함을 표현합니다. 반면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좋은 것을 받고 누려도 표현하는 것에는 인색합니다. 쑥스러워하기도 하며, 굳이 표현까지 해야 하냐고 여길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좋은 것을 받아도 당연하게 여깁니다.
평소에 감사의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사람이 관계도 잘 가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고,관계도 원만합니다. 신앙생활 가운데도 이런 감사의 훈련은 필요합니다. 기도, 예배, 찬양 등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은 기쁨과 평강이 충만한 삶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제사로 나아오는 자녀들의 예배와 삶을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십니다. 성령 충만한 자들에게는 감사의 열매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 가운데 감사의 훈련은 필요합니다.
첫 번째, 감사의 훈련이 감사하는 습관을 만듭니다. 늘 감사하는 습관이 있는 분들은 다릅니다.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감사한 것들이 눈에 보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늘 감사함을 표현하다 보니 관계가 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도 감사로 대화를 시작하면 분위기가 달라지고 일도 순조로워지는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가끔 은행, 전화 서비스, 보험회사 등에 전화할 때, 오랜 시간 동안 연결되기를 기다리다가 지치기도 하지만, 과중한 업무를 이해하고 또 도와줘서 고맙다는 짧은 인사를 했을 때 상대에게 위로를 줄 뿐만 아니라 해결하고자 했던 일도 잘 풀리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합니다. 만약 불평을 했다면 될 일도 어려워졌을 텐데, 쉽지 않은 일도 되도록 도와주려 합니다. 감사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감사할 제목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어려움을 통과하고 극복합니다. 문을 열어 주셔도 감사, 닫아 주셔도 감사하게 됩니다. 응답받은 기도도 감사, 기다리는 시간도 감사, 그리고 거절을 당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음을 신뢰하며 감사하는 비결을 깨닫게 됩니다.
두 번째, 감사의 훈련이 더욱 감사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평소에 감사할 내용이 많은 분들은 감사를 축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성도에게 더 풍성한 것들을 부어 주십니다. 그것이 영적인 법칙입니다. 감사가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는 배로 번식합니다. 모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하는 분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은 감사로 가득합니다.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영적 법칙을 깨닫지 못한 분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불만과 불평이 많은 분들의 삶을 보면, 불만이 많은 분들에게는 늘 불만 거리가 쌓여 있습니다. 누가 도와주고 섬겨주어도 불만, 도와주지 않아도 불만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직장이나 사업장에서도 마음과 관계가 어려워집니다. 결국 인생이 힘들어집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로 나아가는 분들에게는 인생의 역전이 일어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감사하는 자들에게 감사의 열매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믿음과 신뢰와 연결된 씨앗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많이 뿌리는 자들에게는 감사의 열매도 풍성합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서로에게 감사의 인사와 표현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의 훈련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훈련만 잘해도 많은 기회와 관계들이 원만하게 됩니다. 그동안 감사하지 못하고 소홀했던 관계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회복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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