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마당] 미치광이와 신부님들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뭐라고 하는지 아시느냐? 사전에서는 '미치광이'라고 한다. 저는 미치광이를 이렇게 풀이하겠다.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전쟁과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람들이라고…"
신부님은 말을 이어갔다. "국민을 앞세우며 국민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 법과 원칙을 주문처럼 외우지만 실상은 한줌 권력의 밑바닥을 핥는 내로남불의 사람들, 이른바 언론의 이름을 지녔지만 조잡한 가짜뉴스를 양산하며 가증스럽게 말과 글과 정신을 더럽히고 자기욕망과 이익에 복무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새롭고 개혁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고 그럴 듯 주장하면서도 실은 제 잇속만 챙기는 정치 낭인들, 이런 사람들을 미치광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사회는 이런 미치광이들이 주름잡는 시대인 것처럼 보인다.”고 한탄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요즘 정기적으로 열고있는 '오염된 바다,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우려하는 월요시국기도회'에서 한 신부님이 진단한 시국 현실이다. 필자가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어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는 성직자의 매서운 외침은 우리들 가슴에 울림을 준다.
세상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그런 ‘미치광이’들의 세상이 아닌지 의심이 들게된다.
자국민들이 수없이 죽어 나가는데 2년째 공방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호전광들을 본다. 병력 부족에 우크라 장병 평균연령이 43세가 되고, 푸틴은 감옥의 살인범들까지 총알받이로 내몰고 있다. 요즘엔 북한이 보내주는 포탄과 미사일로 득의만만인 반면, 전선이 밀린 젤렌스키는 미 유럽에 애걸복걸이다.
중동은 어떤가. 무차별 기습공격으로 1천3백여명을 죽이고 240여 명을 인질로 납치한 하마스의 무모한 도발, 그에 분노해 ‘씨를 말리겠다’는 이스라엘의 잔학한 보복전. 겨우 3개월여 만에 2만5천여명이 사망하는 참상에도 여전히 버티는 하마스의 130여명 인질극에 지친 여론으로 극우 네타냐후는 사면초가다.
트럼프의 재등장이 현실화하고 있는 미국은 미치지 않은 건가. 중범죄를 포함한 91건의 혐의, 4번의 기소, 그것도 민주주의 본산인 의회를 유린한 내란선동의 주역이다. 희대의 거짓말쟁이로 확인된 그가 공화당의 압도적 1인자이고, 여론조사 마다 바이든을 앞선다. 대법원이 명줄을 쥐었다지만, 그가 임명한 다수의 보수판사들이 미치광이 유권자들처럼 미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가 있을까.
“남이야, 지구야 망하든 말든” 마약과 마피아, 광물과 동물과 환경수탈, 권력에 눈멀어 정적 죽이기에 미친 자들이 횡행하는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동족을 이제부턴 동족이 아니라며 연일 적개심을 쏟아내고 있는 북(北)의 지도자와 그를 궁지로 내몰며 화를 돋우는데 열심인 남(南)의 대통령은 과연 제정신 인가. 하긴 여당대표를 앉혔다가 쫓아내는데 재미들린 듯 옥신각신 미심쩍은 ‘윤-한 소동’도 그들만의 ‘광대극’은 아닐지.
우리들 가까이 득실대는 미치광이들도 다시금 수오심(羞惡心)을 부른다. 본분을 망각하고 즐겨 뇌물성 명품까지 챙겼다는 영부인부터, ‘야당대표 살인미수’라는 정치테러 대사건과 범인을 쉬쉬 덮고 왜곡하고 가짜뉴스로 뭉개는 배후 의심 세력들, 대통령과 악수하며 쓴소리 했다고 국회의원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다 내동댕이 친 횡포권력. 혹한 속에 1만5900배 철야행동으로 159명이 참사한 이태원 특별법을 애소하는데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비정한 자들…
시국기도회의 신부님들은 또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에겐 부끄러운 친일의 역사도 있지만 그보다 더 숭고하고 위대한 수많은 의병과 독립운동 역사가 있다.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광풍의 역사도 있지만 그것을 극복해낸 4·19 혁명이 존재한다.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련과 아픔의 역사도 있지만 5·18 민주화운동을 씨앗으로 87년 6월 민중항쟁과 6·29 선언을 이끌어낸 환희의 역사도 있다. 그리고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혁명 승리도 있다" 신부님들은 아파하는 마음들을 다독이며 용기를 북돋운다.
"가난한 이들의 친구, 죄인들의 피난처, 병자들의 치유자이셨던 예수님의 삶이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예수의 죽음이라는 절망과 아픔, 시련을 가지고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부활의 당신을 보이시고 사명도 주셨다. 우리에게 죽음이 끝이 아님을, 새로운 시작임을 알려주셨다. 예수의 삶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는 것, 바로 거기에 길이 있지 않겠느냐. 이 시대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걸어가도록 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사회 집단을 '패거리'라고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제 우리 자신이 세상의 온갖 미치광이 패거리들의 패악질을 불태울 수 있는 들불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다짐하자"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회 칼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0) | 2024.03.05 |
---|---|
[편집인 칼럼] 한국의 ‘트럼프 리스크’ (0) | 2024.02.21 |
[목회칼럼] 축복의 삶 (0) | 2024.02.21 |
[목회 칼럼] 내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0) | 2024.01.28 |
[편집인 칼럼] 인동초를 만드는 정치 (0) | 2024.01.15 |
[목회 칼럼] 처음 가는 길 (0) | 2024.01.15 |
[신년 논설] 우울한 새해...반딧불 열망 모이면 빛의 세상 되리 (0) | 2024.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