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축복의 삶
이영정 목사 (덴토니아파크 연합교회 담임)
오늘날 세상은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충돌로 사회는 점점 복잡해 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진리와 가치관이 각자가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세상에는 온전한 절대적 진리는 없다. 단지 지엽적인 진리만 있을 뿐이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따라서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이 대화의 시작부터 자신의 주장을 문화와 종교라는 테두리안에서 하는 제한적이고 상대적인 것 이라고 정의하면서 자신의 주장도 수많은 진리주장의 하나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지 못하면서 다른 종교의 교리를 무분별하게 기독교와 혼합하면서 새로운 진리라고 현혹하는, 착각속에 빠져있는 목사와 그들의 그럴듯한 주장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때에 “진정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은 쉽지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자체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학자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바른말을 하기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똑바로 이해해야 하고 이를 표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독교 안에서도 수많은 교단과 교파로 갈리어서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기 보다는 교단의 지엽적인 믿음을 대변하는 교리주의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제기되는 논점에 대한 대답을 성경을 통해서 찾고 있는데 그 당시의 문화와 사회상황을 참고하며 이해 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다원주의가 마치 지식인의 전유물인 것 처럼 착각하는 사회에서 서로 다른 믿음의 실체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없이 그럴듯한 궤변으로 현혹하고 현혹되는 요즈음의 현실에 절실히 요구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나타난 창조의 의지를 ‘정의와 자비’라는 대 명제를 통해서 성경에 증거된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삶 그리고 고난과 부활의 십자가를 통해 기독교의 정체성을 이야기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중요한 내용은 정의와 자비의 실천을 깨달음에서 그치지 않고 이 세상 안에서 “삶을 통해 증거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과 봉사로 이룬 선교가 중심이 된 삶의 핵심요소입니다. 참교회의 모습을 어거스틴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룬 믿음 공동체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은 정의와 자비를 깨닫는데 머무르지 않고 이를 삶에서 실현시키는 공동체의 선교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 시간에 제기된 한 신도의 질문이 오랬동안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하는 토론과 성경공부는 선교라는 차원에서 볼 때 준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준비를 언제 까지 하고만 있을겁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 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손과 발이되어 그의 자비로운 따뜻한 마음을 품고 우리에게 되갚을 수 없는 어려운 이웃에게 선교를 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숨이 살아 있는 축복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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