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한마당] 언론의 굴종과 타락
요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판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설치한 ‘선거방송 심의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다. 이 심의위가 최근 한 민영방송사를 대통령 부인의 이름이 들어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을 ‘김건희 특검’으로 호칭했다고 “행정지도!”라며 트집 잡았다. 영부인 예우를 안하고 정부여당을 비판해 공정성을 해쳤다는 것이다. “그러면 ‘영부인 김건희 여사 특검’이라고 해야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코미디 같은 이야기다. 요사이 한국의 언론사정을 단적으로 드러낸 해프닝이자 ‘공정성’의 의미가 어떻게 변질되고 오용이 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선거방송 심의위는 모체인 방송통신심의위가 이미 그처럼 뒤틀린 공정성을 주장하며 방송시장을 뒤흔들어 온데다 인적구성도 편향적인 인물들로 채워, 생겨나기 전부터 ‘불공정을 목적으로’ 설치됐다는 지적을 받아 온 터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함께 방통심의위원회는 정권과는 거리를 둔 독립기관으로 엄정한 운영이 기본이다. 그럼에도 현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권력 하수기관이 되어 비판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입틀막 기동타격대’로 전락해 버렸다. 한 예로 검찰과 정부비리를 들춰낸 탐사보도 매체 ‘뉴스타파’에 칼을 겨눠 위원장이 자신의 친인척 등을 동원해 처벌 진정을 넣게 한 이른바 ‘민원사주’ 사건이 들통난 일이다. 뉴스타파는 인터넷 유튜브 기반 매체여서 심의대상도 아니다. 그런데 방통위·방심위를 필두로 여권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압수수색까지 벌이는 ‘조자룡 헌칼’소동을 연출했다. 다른 비판적 매체들에게 조심하라는 공개적 ‘엄포쇼’를 벌인 것이다.
국회의 탄핵 직전 위원장이 도망가듯 물러나 오명을 떨친 방통위는 일찌감치 언론파괴의 권력돌격대로 선발됐다. 눈엣가시인 MBC의 지배권을 강압적으로 바꾸려다 법원 제동으로 실패했지만, YTN은 단 2명이서 매각을 승인하는 불법적 행태로 말썽이다. 앞서 대한민국 대표 공영방송 KBS는 시청료 징수문제로 압박한데 이어 편법으로 이사진을 쫓아내고는 끝내 운영권을 장악했다. 시청자들이 전두환 시절의 ‘땡전뉴스’ 같은 ‘땡윤뉴스’ 시청을 날마다 강요당하게 된 배경이다. 대통령 신년회견 대신 녹화된 ‘기획대담’을 두 차례나 내보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 것도 KBS의 추락한 현주소를 말해준다.
윤석열 정권 출범이후 이같은 언론 파괴적 현상들은 빙산의 일각이고, 그 사례는 차고 넘치게 됐다. 검찰을 앞세운 정부기관들의 전방위 강박에 언론사들이 굴종하고 주눅든 현실뿐 만이 아니다. 검찰정권 하에서 법조기자 출신들의 입지가 우월해지고, 입김도 거세지면서 언론보도의 친검찰·친정권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권력 비판의 강도가 약해지고, 줄어들고, 아예 사라진 언론이 대부분이다. 소위 진보언론이라는 매체들도 무뎌지고 눈치를 보는 것은 예외가 아니다. 거기에 원래 친정부적인 권력 밀착형 보수매체의 보도행태는 글자그대로 ‘애완견’이니 ‘나팔수’라는 치욕적 지칭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즐기고 영합하여 ‘검·언·정 카르텔’을 과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한국의 뒤틀리고 타락한 언론현실이다. 허울뿐인 언론자유 속에 참 언론을 찾을 수 없는 이유다.
언론전반에 말과 기사와 보도는 넘쳐나는데, 냉철한 비판과 분석 대신 왜곡되고 포장된 정보와 교묘하게 버무려진 뉴스들로 눈과 귀를 가리고 미혹할 뿐이다. 국민들은 진실에서 멀어지며 편견을 세뇌 당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언론이 이렇게 망가진 적은 없었다. 평생 40여년을 기자요 언론인으로 살아 온 나의 경험칙에 비추어 보아도, 지금의 한국처럼 기자들이 문제적 사안을 접하고도 아예 글을 쓰지 않거나 대놓고 편파적 기사를 쓰는 경우는 드물었다. 군사독재하 검열 삭제에도 불구하고 지사적(志士的)인 비판 필력을 고집하며 기자들은 행간에 진실을 담으려 노심초사 했다. 그런데 어쩌다 이리도 굴종하며 타락해 버린 것인지. 정론직필(正論直筆)과 파사현정(破邪顯正)은 고사하고 이권 편승·조장세력, 어용·권력카르텔 언론으로 지탄받는 현실은 참담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떻게 정상으로 되돌릴 것인가. 결국은 수용자인 독자와 시청자, 곧 국민들의 몫이며, 분별과 선택과 심판만이 해결책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그나마 판단의 지혜와 이성과 양심이 살아있다는 뜻이다. 해외토픽에 오른 ‘명품백’ 수수를 슬그머니 덮고 특검을 거부하는 저의가 뭔지, 왜 변호에 기를 쓰며 총선 공천까지 ‘방탄’에 악용하는지, 열심히 맞장구 쳐주는 언론의 행태에서 그 냄새를 맡는다면 다행이다. 선거 코앞에 대통령이 전국을 돌며 헛공약을 남발하고, 그린벨트를 완전히 풀어 국토를 망칠 작정인데도 모른척 ‘입꾹’인 현실이 개탄스럽다면 아직 분별력이 살아있다는 희망이다. 시류에 따라 독재와 폭정에 비판과 영합을 오가는 능란한 변신에서 친일 매국과 권력 아부의 뿌리와 속성을 읽는다면 자존감이 숨쉰다는 증거다, 유독 야당에는 가혹하고 여당에는 우호적인 기사와 논조의 범람에 의도적 편파의 꼼수를 꿰뚫고 심판한다면 깨어있는 시민의 정의감이다.
구태여 학문적인, 또는 정치·사회적인 역할과 소명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언론의 부패와 타락은 권력의 부패와 타락에 직결된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강자의 횡포와 독재를 부른다. 깨어 직시하지 않으면 앉아서 바보들이 된다, 독재권력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싸우지 않고 방관하면 나라가 무너진다, 역사와 정의가 사정없이 짓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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