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뇌물공여죄 처벌 받았는데… ‘불법승계 아니다’는 법원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 등 “범죄 증명 없다” 모두 무죄로
기소 3년5개월 만에…법원 “검찰 입증 부족하다”
법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을 통한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두 회사의 합병이 이 회장 승계 및 지배력 강화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으며 삼성물산과 주주에게도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에서 확정된 이 회장의 합병 관련 뇌물 공여 혐의와 두 회사 합병의 불법성은 별개 사안이라고도 밝혔다.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재판장 박정제)는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에 대해 “검찰의 공소사실이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2020년 9월1일 이 회장을 기소한지 3년5개월 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1월17일 결심공판에서 이 회장에 대해 징역 5년, 벌금 5억원을 구형한 바 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2015년 이 회장이 최소 비용으로 그룹을 승계받도록 하기 위한 계획안 ‘프로젝트 지(G)’에 따라, 이 회장이 최대주주(23.2%)인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불공정하게 흡수·합병했다고 봤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높게, 삼성물산(이 회장 지분 0%)의 주식은 낮게 평가됐는데, 이를 위해 삼성이 주가조작, 분식회계, 거짓공시 등 부정거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두 회사 합병에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합병의 주된 목적이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 및 승계라는 점을 단정할 수 없다”며 “기업 집단 차원에서 계열사 지배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거나 효율적인 사업 조정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업무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선 “삼성그룹의 경영권 안정화는 삼성물산과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된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2016년 불법 승계 의혹을 검찰에 고발한 참여연대는 “뇌물을 줘 처벌을 받았지만 정작 그 뇌물의 목적은 없었다가 되는 셈”이라며 “선행 판결들을 두고도 무죄 판단한 법원의 행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삼성그룹은 “글로벌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경영 판단이 매우 중요한데 다행히 사업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 이재호- 홍대선 기자 >
[사설] 납득하기 어려운 이재용 ‘불법 승계’ 전부 무죄 판결
불법 승계 의혹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회장은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불공정 합병하는 과정에서 여러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삼성물산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혐의로 2020년 기소됐다. 하지만 3년5개월의 재판 끝에 나온 결과는 공소사실 전부에 대한 무죄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는 이날 선고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주된 목적이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강화 및 승계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와 지배력 강화 목적이 있었다고 해도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합병의 목적과 그 과정에서 시세 조종, 불법 로비, 회계 사기 등이 있었다는 혐의에 대해 검찰이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1심 재판부의 판단은 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국정농단 사건 판결에 비춰 의문이 든다. 당시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각 회사의 경영상 판단이 아니라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번 재판부는 “두 그룹의 합병은 삼성물산의 성장 정체와 위기 극복을 위한 여러 시도 중 하나였다”고 봤다. 또 이 회장은 승계 작업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박근혜 대통령과 최서원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는데, 이번 판결에 따르면 뇌물까지 써가며 진행한 승계 작업에 불법적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게 된다. 모든 게 합법적이었다면 굳이 형사처벌 위험을 무릅쓰며 권력자에게 뇌물을 건넬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결론이다.
검찰이 주된 증거로 삼은 삼성 미래전략실의 ‘프로젝트 지(G)’ 문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미전실 자금 파트에서 다양한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종합 검토한 보고서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재벌 총수의 승계 계획을 담고 있는 문건이 단지 검토 보고서일 뿐이라는 것도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
이번 판결은 검찰의 역량과 의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던진다. 검찰은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중단·불기소’ 권고에도 기소를 강행하며 자신감을 비친 바 있다. 하지만 비록 1심 재판이기는 하나 수많은 공소사실 중 단 한가지도 입증하지 못한 꼴이 됐다. 압수수색 절차상 위법으로 다수의 증거가 배척되기도 했다. 수사를 지휘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그사이 검찰을 떠났다. 검찰이 수사와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상급심에서도 무죄가 유지된다면 검찰은 실패한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대법 판단과 달리 “합병 목적, 승계 단정 어렵다”…1심 법원, 이재용 무죄 이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을 통한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법원은, 두 회사의 합병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만을 위해 이뤄졌다는 검찰의 수사 전제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행위를 두고 ‘이 회장을 위한 그룹 차원의 승계 작업’이라고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다른 판단이다. ‘위법한 합병이 아님에도 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과 함께 청탁을 했어야 하는지’ 등 여러 의문이 남는다.
검찰의 공소 사실은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그룹 승계 계획안인 ‘프로젝트 지(G)’에 따라 △2015년 9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때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비율(제일모직 1주 대 삼성물산 3주 비율)로 합병하고 △합병이 계획대로 이뤄지도록 허위 정보를 흘려 두 회사의 가치를 조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했다는 게 골자다.
이런 기소 사실에 대해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재판장 박정제)는 “두 그룹의 합병은 삼성물산의 성장 정체와 위기 극복을 위한 여러 시도 중 하나였다. 합병의 주된 목적이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와 승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앞서 2019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정농단 뇌물공여 사건에서 이 회장에게 유죄를 판결하며, 두 회사의 합병을 각 회사의 경영상 판단이 아니라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재판부의 판단이 대법원 판단을 부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대법원은 “‘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권 강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승계 작업을 진행했다”고 판결했다. 검찰 역시 이 회장을 재판에 넘길 당시 이 판결 내용을 공소장에 담았다.
이날 재판부는 ‘승계 작업은 있었지만 승계 작업 자체가 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며, 합병 과정에 위법은 없었기에 무죄’라는 논리를 구성했다. 재판부는 “두 회사 합병 과정에서 미래전략실 임직원이 합병을 추진·검토하고 태스크포스(TF)가 밀접하게 협의, 업무를 조정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며 승계 작업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면서도 “선행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재용의 지배권 강화가 위법·부당하다거나, 합병 과정에서 불법적 방법을 사용했거나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따라서 위법은 없었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선행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이 부당 승계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고 재판부가 판단하면서, 이 회장 등의 구체적 범죄 사실이었던 합병 관련 중요 정보 은폐 및 거짓 정보 유포, 제일모직·삼성물산 시세 조종 등은 줄줄이 무죄 결론으로 이어졌다.
한편, 이날 검찰의 핵심 증거들을 재판부가 “위법 수집증거”라고 판단한 것 역시 무죄 선고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재판부가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자료는 검찰이 2019년 5월 로직스와 에피스 서버 압수수색에서 확보된 증거들로, 당시 검찰은 인천 송도 로직스 공장의 바닥을 뜯어내 서버와 직원들의 노트북을 압수했다.
법원은 “피의자가 은닉한 전자정보가 임의제출된 경우에도 수사기관은 전자정보 탐색·복제·출력 과정을 거치고 혐의 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의 임의 복제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검찰은 임의 복제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위법하고, 위법한 증거에 기반한 진술 증거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역시 전자정보 선별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검찰이 증거 수집 절차를 어겨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 이재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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