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구호의 성찬이 차려지고 있다. 모두가 사회적 약자를 위하겠다고 한다.
세상 살기가 어려워지니, 진보정당의 의제가 민주당의 정책이 되고, 민주당의 정책이 급기야 여당 후보의 구호로 등장한다. 정당들과 후보들의 놀라운 변신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듯한 공약과 구호가 얼마나 표를 얻기 위한 속임수가 될 수 있는지 이명박 정권을 겪고 나서 이미 확실히 알았다. 이명박 자신이 말했듯이 “선거 때면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화장한 얼굴, 가면 쓴 얼굴에 속아 넘어가고, 장밋빛 공약과 구호에 흔들린다.
지도자의 ‘생얼’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옛날부터 동서의 성인들이 말해온 것들이고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선 말보다 행동을 봐야 한다. 선거를 의식한 행동이 아니라 과거의 행동, 특히 젊은 시절의 행동을 봐야 한다. 사람의 사고와 행동은 젊은 시절에 거의 결정되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 법이니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의 행동보다 더 좋은 참고자료가 없다.
둘째,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에서 어떤 입장을 보였는지 봐야 한다. 명백히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에 대해 ‘국민 모두’를 말하는 것은 대체로 허구다. 셋째, 그 당사자를 보기보다는 가까이에 누가 있는지를 봐야 하고, 누가 주로 그를 지지하는지를 봐야 한다. 친구나 측근이 바로 그 사람을 말해주는 법이다.
무엇보다도 과거 젊은 시절에 사익보다 공익을 앞세웠는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그런데 후보자들이 공익 운운한다고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말로만 보면 과거 공안사건 담당한 판검사들만큼 국가, 공익을 많이 떠든 사람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가?
고시공부의 동기가 대체로 그러하지만, 재임 중에도 권력의 요구에 충실하였고, 퇴임한 뒤에도 온갖 전관예우의 단물을 다 누리지 않았는가? 한국에서 공익을 추구하자면 힘있는 세력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큰 위험과 불이익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 정도의 자기희생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공익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쓴 적이 있는지, 실제 약자를 대변하는 일을 했는지를 보면 된다.
70년대식 국가안보관을 가진 박근혜 여당 대선후보가 이제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화두로 등장하니 그것을 내걸고 ‘미래세력’임을 자임하려 한다. 나는 여기서 부친이 강탈한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서 10년 동안 재직하면서 많은 연봉을 챙긴 일은 거론하지 않겠다.
그는 과거 한나라당 대표로서 수많은 경제개혁 사안이 국회에서 크게 논란이 될 때 그 중심에 있었고, 또 이명박 정권 내내 가장 영향력 있는 여당의원으로 있었다. 당대표로서 그리고 2007년 여권 대선후보로서 그는 직접 조세감면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고, ‘규제 제로’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규제 법안을 무산시킬 때 여당의 다른 계파 지도자인 그는 비판 한마디 한 적이 없고, 재벌의 중소기업 지배,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한 대기업 봐주기가 그렇게 문제가 될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게다가 지금 그의 최측근에는 ‘줄-푸-세’를 주창했던 전문가, 삼성의 고문 등 경제민주화의 정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 그가 노동자나 빈민의 처지에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그냥 선거 구호로 내세울 정도의 호락호락한 가치와 정책이 아니다. 그런데 박근혜가 그것을 하겠다고 한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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