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어제 대선 도전을 공식 선언하면서 발표한 출마선언문은 그의 국정운영 철학과 비전을 담은 청사진의 성격을 지닌다. 그는 ‘국민행복’을 핵심 키워드로 내걸고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한국형 복지의 확립 등을 약속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정책 기조와 방향이 5년 전 대선 후보 출마 때와는 크게 달라진 점이다. 당시에는 ‘성장과 작은 정부’에 방점이 찍혔으나 이번에는 분배와 복지, 정부의 역할 등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는 중도 외연을 넓히려는 대선 전략이자, 그동안의 시대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미도 있다. 앞으로 이런 청사진을 실현할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정책을 얼마나 내놓을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어쨌든 그가 전향적인 방향으로 노선을 수정한 것은 높이 평가할 대목이다.
그럼에도 박 의원의 출마선언문을 접하면서 몇 가지 의문과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박 의원은 누가 뭐래도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의 지난 4년여의 공과와 무관할 수 없다. 박 의원이 출마선언문에서 지적한 대로 현 정권은 민생과 안보를 파탄낸 정권이다. 박 의원의 대선 전략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철저한 ‘차별화’에 있다고 해도 집권여당의 대선 주자로서 현 정권의 실패와 이에 따른 책임에 대해 일언반구 없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박 의원이 5년 전에 대표공약으로 내건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야말로 지난 4년여 동안 집권여당을 지탱해온 정책 지표였다. 이런 기조에 따라 부자감세가 도입됐고, 재벌규제는 완화됐으며, 국민은 법과 질서의 채찍으로 엄히 다스려야 할 객체로 전락했다. 정부 못지않게 이런 정책을 앞장서 주창해온 게 바로 새누리당이었다.
박 의원이 내건 경제민주화나 복지 확대 공약에 반가움 못지않게 의아스러움을 느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런 정책은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통한 성장’을 중시한 줄푸세 공약과는 양립되기 힘들다. 박 의원은 새로운 공약 설명도 좋지만 줄푸세 공약에 대해 뭔가 한마디라도 하고 넘어가는 게 도리가 아닌가 한다. 박 의원이 말하는 경제민주화가 재벌의 비정상적인 소유구조에 본격적인 메스를 들이대는 수준인지 아니면 무늬만 재벌개혁에 그칠지를 따져보는 것은 그다음 문제다.
박 의원이 출마선언문에서 강조한 ‘공개와 공유, 소통과 협력’ 등의 단어도 그동안 보여온 행보에 비춰보면 진정성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당장 정몽준·이재오 의원 등이 당내 경선에 불참하면서 새누리당 전당대회는 ‘이변 제로’의 ‘박근혜 추대 대회’로 흘러가고 있다. 그럼에도 박 의원은 출마선언 뒤 기자회견에서 “불통이란 말을 그렇게 별로 들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마치 꽉 막힌 벽을 바라보는 심정이다. 박 의원이 앞으로 경선 과정 등을 통해 이런 의구심과 지적에 대해 좀더 성실하게 답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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