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소금 맛

● 칼럼 2012. 8. 1. 15:56 Posted by SisaHan
김치 냉장고를 열었다. 뜻하지 않은 화공약품 냄새가 후각에 와 닿는다. 잘 익은 김치를 기대했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열과 성을 다한 노역의 댓가로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가 물러서 고생했던 기억은 있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여름 편하게 지낼 생각으로 배추 두 상자를 덜컥 담궜는데 이 많은 김치를 어떻게 소화해야 할 지 아득하기만 하다.
대체 그 냄새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일의 경과를 되짚어 보고 재료도 하나씩 점검해 본다. 문득 배추를 절일 때부터 이 냄새가 진동했던 기억이 나서 쓰다 남은 소금봉지를 열어보았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냐.’는 듯, 소금봉지는 싱그러운 바다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수 십 년 애용 해 온 굵은 바다소금의 변질이 아님을 확인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리곤 원인 규명은 뒤로 미룬 채 달콤했던 소금밭 여행으로 빠져들었다.
 

최근 토론토 하이킹 그룹 맴버들과 미국 서부 공원들을 하이킹했다. 여행길 초입에서 만난 소금밭은 특이한 자연 환경만큼 특이한 경험을 갖게 했다. 일명 소금호수(Bed Water lake/ 마시기에 좋지 않은 물)라고 명명한 그곳은 모하비 사막 북쪽에 자리한 국립공원 데스 벨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기온이 높은 지역으로 메마르고 뜨거우며 고도가 낮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면이 해수면보다 무려 86m나 낮은 그곳은 미국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기도 하다.
6월초의 덜 영근 여름빛에도 데스 벨리 계곡은 다양한 색깔로 불타고 있었다. 살인적인 더위와 1500여 미터를 단숨에 오르내려야하는 좁은 비탈길로 인해 ‘데스 벨리(Death Valley)’라는 악명 높은 지명이 붙여졌지만 우리의 소금밭 행차는 무난했다. 일행을 실은 차가 계곡 모퉁이를 돌아 나올 때 마다 사막의 신기루는 바다를 연출해 놓았었다. 끝없이 펼쳐진 소금밭을 향하며 바다 밑 용궁을 꿈꾸고 있을 즈음, 뜻밖에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소금이 덧칠되어 크리스탈처럼 빛나는 식물, 살아있음이 기적인 듯 했다.
 
거친 언덕과 높은 산세에 둘러싸인 소금밭 분지에 발을 내린 나는 앞산 어깨쯤에 붙여진, ‘sea level -86m’란 표지를 보고 잠시 얼떨떨했다. 마치 바다 속 깊숙이 가라앉은 느낌이랄까. 물고기 떼며 산호초가 이리저리 유영하는 듯한 착각과 함께 소금밭 탐험에 들어갔다. 넓은 분지에 가득 피어올린 소금꽃, 몇 억 겁의 세월이 거쳐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원거리의 바닷물이 유입되기에는 불가능한 거리의 사막에 소금층 두께가 1000피트가 넘는다는데 그 형성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니 기이한 자연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를 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측 주장을 내어 놓았을까. 덩달아 나도 ‘한 줄..... .’ 하다가 말문을 닫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청색 하늘, ‘태초의 하늘색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일행은 샌들을 벗어들고 까칠한 소금길을 걸었다. 촉촉하고 따끈한 감촉은 온갖 사념이며 잡병을 일시에 물리는 것 같았다. 문뜩 소금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여태까지 먹어 본 소금 중에서 가장 깔끔한 맛이었다. 일행 중 S도 그렇게 느꼈던지 가져다가 배추 절였으면 좋겠단다. 기특한 여인의 발상에 잠시 웃다가 배추라는 어휘 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시 착각을 했었나 보다. 좀 전에 안심했던 그 소금은 오래전의 것이었고 근래에 구입한 것은 이미 그때 사용을 다 했으니 냄새의 주범은 아직도 모호한 채다. 제발, 이제나 저제나 한결같은 소금 맛이었으면 여한이 없겠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한국문단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