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군 최고 실세인 리영호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인민군 총참모장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로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어제 보도했다. 전날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정치국 회의를 열어 그를 ‘신병 관계’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정치국 위원,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신속한 보도도 이례적이지만, 김정은 정권의 핵심 실세이자 선군정치의 주축인 그의 전격 경질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북의 상층부에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법하다.
리영호는 김정은 후계체제가 사실상 외부에 공표된 2010년 9월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신설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함께 선출됨으로써 김정일과 김정은 체제를 잇는 군부의 실세로 떠올랐다. 김정일 위원장 영결식 때는 운구차를 호위한 8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최근까지도 김 제1비서의 군부대 시찰을 수행했고, 지난 8일 김 제1비서의 금수산궁전 참배 땐 그의 왼편을 지켰다. 신병 관계라는 설명이 미덥지 않은 이유다.
 
그의 정확한 경질 이유가 무엇인지 알 도리는 없다.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조차 며칠씩 숨길 정도로 북의 정보통제가 철저한데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의 대화 통로가 꽁꽁 막혀 있는 탓도 크다.
그래도 몇 가지 추론은 가능하다. 첫째는 강온 노선투쟁의 결과일 가능성이다. 야전군 출신의 리영호는 군부 안에서도 보수강경파로 분류된다. 반면 지난 4월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최룡해는 상대적으로 개혁·개방파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최근 부쩍 자주 보도되는 김 제1비서의 자유분방한 모습이다. 각종 행사에 부인으로 보이는 양장 차림의 젊은 여성을 대동하거나, 미키 마우스와 로키 영화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을 바깥세계에 공개하며 변화와 개방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또 김 위원장 세대의 인물을 자신에 맞는 젊은 세대로 교체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물론 말 그대로 신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 상층부의 변화는 중·단기적으로 남북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북 내부 움직임을 주시하고, 북의 변화가 정세 불안 요인이 되지 않도록 상황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 나라를 이끌겠다는 각 당의 대선 주자들도 북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올바른 대북정책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