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스쿠발로지

● 칼럼 2012. 9. 17. 18:04 Posted by SisaHan
나는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속으로 실소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글의 내용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다. 
먼저 제목을 보자. 이 ‘스쿠발로지’란 옥스포드 사전이나 웹스터 사전에 나오지도 않는 영어 단어이다. 영어를 쓰는 영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라 해도 이 단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 이 단어를 내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세상에! 영어 단어를 만들다니. 이 단어의 출처는 헬라어의 ‘스쿠발론’인데 성경 빌립보서에서는 ‘배설물’이라고 한다. 이 스쿠발론에다 학문이나 론을 말하는 로지를 붙여 ‘스쿠발로지’란 단어를 만들었다. 
 
이 스쿠발론은 사람의 몸에서 배설되는 것으로 이것은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 이것은 최고의 것으로 만든다. 가난한 자든 부자든 자신이 먹을 때는 어쨌던 최고 최상의 것으로 먹고 몸 속에 들여다 놓은 것이다.
둘째 늘 가지고 다닌다. 적절한 시간이 올 때까지는 몸 속에 늘 담고 있으며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셋째 그러다 적절한 시간이 되면 꼭 버려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으로 만든 것이라해도 언젠가는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스쿠발론에 대한 나의 지론이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배설물 스쿠발론을 말할 때 자신이 가졌던 세상의 자랑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기에 과감히 버렸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또 실소를 한 것은 나의 실수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최근에 읽은 한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는데 저자가 한 번은 전남의 한 사찰을 방문했다가 해우소(뒷간)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씌어진 글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의 내용은 이랬다. “ 대소변을 몸 밖으로 버리듯 번뇌와 망상도 미련 없이 버리세요.” 저자는 이 글을 읽고 해우소에서 나와 그 앞에서 쪼그리고 그렇게 울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실수한 것은 이 글을 읽은 뒤 너무 감동적이어서 글의 내용만 기억하고 내 나름대로 각색해서 전달했다가 실제 내용과 약간 다른 것 같아 나의 실수에 실소를 했다는 말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번뇌와 고민을 밀어내기 위해 얼마나 힘썼습니까? 그러니 원문과는 차이가 있으니 저자께서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는가?
그런데 나는 내가 한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스쿠발론을 결코 몸속에 가지고 있으면 안되기에 밀어내려고 얼마나 용을 쓰는가? 특히 변비 때를 생각해 보라. 안간힘을 쓰면서 힘을 주지 않는가.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스쿠발론과 같은 것을 과감히 버렸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이 오늘의 신앙생활하는 모습이다. 아무리 귀하고 좋은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버려야 할 때는 버려야 하고 이제는 결별해야 할 때는 버려야 한다. 그것이 혹시 사랑스럽고 귀한 것이라 해도 버려야 한다는 각오를 했다면 용을 써야 한다. 안간힘을 쓰고 몸부림을 쳐야 한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쿠발론을 그대로 몸 속에 둔 채 그냥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길이란 선택의 길이 아닌가? 
또한 내게 주어진 어떤 문제나 고통을 그리스도 앞에 내어놓고 기도할 때 또는 자신이 가진 교만이나 세상적인 자랑거리를 포기하려 할 때 그게 쉽지가 않아 고민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럴 때 해우소에 들어간 사람처럼 용이라도 써 봤을까? 그냥 그렇게 있다가 어정쩡하게 신앙생활을 하지나 않을까?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