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국회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대화록과 우리 쪽이 녹음한 테이프가 존재한다고 확인했다. 두 정상 간 비밀 단독회담은 없었고, 북한에서 전달한 녹취록도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녹취록 공개 요구에 대해서는 “국가안보가 더 중요하므로 여야가 합의해서 요구해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원 원장의 설명은 그간 정상회담에 관여해온 사람들이 말한 사실과 아귀가 맞는다. 당시 회담에 배석했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우리 쪽이 녹음한 것과 받아적은 것을 토대로 2부의 대화록을 작성해, 1부는 청와대에 보내고 1부는 국정원에 보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며칠 전 본 적이 있다고 말한 바로 그 문서이다. 청와대 전달 문서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에 따라 당연히 대통령기록관에 넘어갔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애초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8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단독 비밀회담에서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고, 이런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에 보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 녹취록은 북한이 전해준 것이라고도 했다. 이 발언을 이어받아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야당에 국정조사를 하자고 나섰다. 박근혜 후보도 거들었고, 이명박 대통령도 백령도를 방문해 NLL 문제를 거론하며 측면지원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 정 의원의 주장이었는데, 원 원장의 확인으로 그 주장이 근거 없는 것이 됐다. 정 의원과 새누리당은 이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도 공개되지 않은 대화록에 그런 발언이 있을 수 있지 않으냐고 의문을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 문서를 봤다는 사람들이 국가안보를 위해 내용을 말하거나 공개할 수 없다고 하고 있으니 그렇게 추정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당시 회담에 배석했던 김 전 원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이 NLL 포기 발언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 시점에서 정 의원이나 새누리당이 할 일은 ‘공개할 수 없는’ 문서를 마치 무엇이 있기라도 한 양 공개하라고 생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계속 문서의 공개를 요구하며 뭔가 있는 것처럼, ‘아니면 말고’식 정치공세를 펴는 것은 스스로 ‘국가안보’보다 ‘선거’를 앞세우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세력임을 자인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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