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사람들은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잠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킨 이들이다. 고독한 만큼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참모습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나무로 둘러싸인 숲을 드나드는 바람이며, 바다세상에서 밀려나와 해안에 머물다 돌아가는 모래알갱이들이다. 숲과 바다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그들은 두 세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지닌다. 객관적이라는 단어 앞에 ‘비교적’이라는 제한을 두려는 이유는 세상 어느 것도 ‘주관적’ 관점을 벗어날 수 없다는 회의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상의 해야 할 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산책길에서는 순간 순간을 즐길 수 있다. 집 안팎의 잡다한 일들은 이미 접어두고 길을 나섰으니 과거는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있는 셈이고, 산책이 끝나면 어차피 마주치게 될 불확실한 미래를 굳이 앞당겨 불러들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숲길을 걷다 보면 생각보다 선택의 순간이 많이 주어진다.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가보지 않아서 불안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호기심 어린 선택을 하며 새로운 길을 고집하기도 한다.
기웃거리며 망설이다 선택한 숲길을 천천히 걸어본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버린 홀가분함과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는 정신적 자유로움으로 타자와의 넉넉하고도 여유로운 만남이 이어진다. 산책길에서는 우선 치장부터 간소하고 소박하다. 화장으로 돋보일 필요도, 부족함을 감출 필요도 없다. 사회에서 걸치고 있던 겉치레용 포장을 벗어버리고 자연인 자격으로 걷는 길에서는 지위의 높고 낮음도 빈부의 차이도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말벗이 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좋고 혼자 고독해도 그런대로 좋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개인 또는 인격으로 해석하는 ‘person’은 연극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에서 유래된 단어다. 연극배우는 가면을 써서 자기의 본래 모습을 감추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한다. 삶이 연극이라면 사람은 살아가면서 가면을 쓰고 거기에 어울리는 겉옷을 걸치고 극중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란 퇴직할 때까지 역할극이 계속되는 연극 무대가 아닐까. 자신이 맡은 역할이 마음에 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역할 배정은 누가 하는 것일까. 스스로 결정한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라고는 하나 왠지 역할을 부여한 주체가 자기 자신이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을 접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어찌됐든 자신에게 잠시 맡겨진 운명적 역할에 우쭐하거나 주눅이 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극 중에서 주어진 역할이 끝나면 가면과 포장을 벗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선생이라는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왔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외출복을 벗으면 선생이라는 역할극의 소품들도 함께 내려놓는 느낌이 들었고, 잠시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 또한 장소만 바뀔 뿐 엄마라는, 아내라는, 주부라는 역할을 다시 맡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은 어쩌면 벗어도 벗어도 찾기 어려운 나라는 존재에 대한 참모습의 정체성에 회의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나의 어떤 모습이 진정한 나일까, 끊임없이 의심했으나 답을 구하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
오늘은 낙엽 지는 숲 길을 택하여 걸었다. 노쇠한 잎들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사람이 늙으면 생기를 잃은 누런 색으로 생을 마감하듯 자신의 역할을 마친 낙엽들도 그 비슷한 색깔이 되어 오솔길에 누워있었다. 어디선가 소슬바람이 불어왔다. 벗은 나무들이 내뱉는 가녀린 숨소리와 나뭇가지 끝에 걸린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세속의 경계를 넘나들던 바람결에 나의 페르소나가 잠시 벗겨지는 듯한 환각이 일었다. 나의 맨 얼굴이 궁금했지만 감았던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좋았을 나’의 얼굴을 보게 될 것 같아서 그랬을까.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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