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은 아름다운 단어다. 나눔은 배려, 성찰, 소통 등과 함께 이 시대가 요구하는 최고의 미덕으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단어가 ‘먹다’와 만나면 갑자기 불결한 언어가 되고 만다. ‘먹다’라는 단어는 모든 것을 추하게 만들어버리는 치명적 마성을 지니고 있다. 음식물의 섭취는 인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행위인데도 실제 현실에서 먹는다는 말은 그다지 아름답게 쓰이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억울한데 다른 단어들까지 오염시키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단어다.
‘나눠 먹기’는 정치권에 들어오면 더욱 불결해진다. 권력의 나눠 먹기는 탐욕, 음모, 편법, 비겁함 등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도 이미 나눠 먹기에 대한 융단폭격이 시작됐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채 본격화하기도 전부터 새누리당은 이들을 향해 “권력을 나눠 먹으려 혈안이 돼 있다”며 핏대를 올린다.
후보 단일화의 내용이 뭔지도 모르고 ‘후보 단일화=나눠먹기’라고 규정하는 것도 성급하지만, 본질적으로 나눠 먹기라는 게 그처럼 매도해야 할 ‘절대악’인지도 참으로 의문이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나누어지기를 거부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권력이다. 이런 대단한 권력을 나누는 데 성공한다면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할 일이다. 민주주의 역사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눠지기를 거부하는 권력을 기어코 나누려는 인간 분투의 기록이다.
나눠 먹기보다 훨씬 위험한 것은 오히려 ‘혼자 먹기’다. 권력 독식의 위험성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져온 권위주의 체제뿐 아니라 지금의 이명박 정권에서도 질릴 만큼 목도했다. 그들 본인과 친인척, 측근들의 왕성한 먹성은 그냥 ‘먹다’가 아니라 ‘해먹다’라는 표현이 더 합당하다. 특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앞세운 한 전직 대통령의 화려한 여성 편력은 먹다 앞에 ‘따’라는 한 음절을 더 붙여야 온전한 의미가 살아난다.
따라서 권력 나눠 먹기는 무작정 비난만 할 대상이 아니다. ‘권력의 분점’은 오히려 적극 권장하고 고무 격려해야 할 미덕일 수도 있다. 특히 권력을 혼자 먹으려는 쪽은 감히 나눠 먹기를 욕할 자격이 없다.
나눠 먹기가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도 결코 아니다. 역사적으로 제대로 된 권력 나눔의 예가 매우 희소한 것도 이를 증명한다. 안철수-문재인 후보의 단일화도 마찬가지다. 공동정부니 역할분담이니 하는 말은 무성하지만 아직까지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그동안의 흐름을 보면 후보 단일화 문제마저 승자 독식의 논리에 매몰돼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문-안 두 후보가 진정 후보 단일화를 이루려면 그 과정에서의 나눠 먹기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 해서는 안 된다. 비판을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보란듯이 제대로 된 나눠 먹기를 해보기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나눔과 배려’의 정신이 여기서도 충실히 작동해야 한다. 80~90%를 자신이 차지하고 상대방에게는 10~20%만 주겠다는 이기적 태도로는 제대로 된 나눠 먹기를 할 수 없다. 각자의 정치적 욕망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얼마나 적절히 조화시키느냐가 나누기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관건이다.
둘째, 둘만의 나눔에 그쳐서는 안 된다. 나눔의 원칙과 의미뿐 아니라 나눔이 구체적으로 국리민복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나눔이 가져올 정치사회적 발전의 미래상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나눔의 과실을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혼자 먹기’에 대해서는 별 문제의식 없이 지나치면서도 ‘나눠 먹기’에 대해서는 손가락질을 하는 모순된 심리의 밑바탕을 허물지 않고서는 나눔의 정치적 의미는 퇴색한다.
셋째, 이번 기회에 나눔의 제도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로 표상되는 권력의 쏠림 현상을 완화하는 문제는 이제 당면한 시대적 과제로 대두했다. 두 사람의 나눔이 이런 논의의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위한 첫 만남을 가졌다. 앞으로 다음과 같은 평범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경구를 떠올리기 바란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
< 한겨레신문 김종구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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