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출마에서 사퇴까지

안철수 후보는 추석 연휴 직전인 9월19일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한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선거일을 딱 3개월 앞두고 시작된 그의 대선행보는 66일째인 23일, 후보 사퇴로 막을 내렸다. 
그의 첫 대선전략은 제3후보였다. 국민들은 그를 야권후보로 봤지만, 안 후보 본인은 새 정치와 정치쇄신을 구호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기존 정당과는 동일한 거리를 두려고 했다. 야권연대나 후보 단일화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를 잘 보여줬다. 그는 단일화에 관한 질문에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혁신이 중요하고, 국민이 그것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는 단일화 논의를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이런 전략 탓인지 안 후보의 첫 대선행보는 문재인 후보와는 뚜렷하게 달랐다. 출마 선언 이튿날 국립묘지를 찾은 안 후보는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등 3명의 대통령 묘역을 다 참배했다. 문 후보가 김 전 대통령의 묘소만 찾은 것과 비교됐다.
 
안 후보의 출마로 3자구도로 정립되면서 선거판은 요동쳤다. 9월21~22일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는 박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49.7% 대 44.6%로 5%포인트 차로 이겼다. 두 주 전에는 오히려 박 후보가 안 후보를 6.5%포인트 앞섰다. 
그러나 안 후보는 9월이 지나기 전에 첫번째 벽에 부딪쳤다. 사당동 아파트 다운계약서 의혹이 잇따라 나오면서 그는 9월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잘못된 일이고, 국민께 사과드린다. 앞으로 더 엄정한 잣대와 기준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정치쇄신을 내세운 안 후보가 두번째 부딪친 걸림돌은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 정치쇄신안이었다. 그는 10월23일 인하대 강연에서 국회의원 수 100명 축소와 국고보조금 축소 등을 야심차게 제시했지만, 이 안은 보수 쪽보다는 오히려 진보진영으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았다. 100명 수를 명시적으로 말한 게 아니라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예를 든 것뿐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은 이후였다. 
9월 중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문 후보가 갈수록 지지율이 오른 데 비해 안 후보의 지지율은 조금씩 내려갔다. 그는 10월5~6일 <한겨레> 조사에서 야권후보 지지도에서 38.7%를 얻어 49.8%를 얻은 문 후보에게 뒤졌다. 문 후보와의 경쟁에서 처음으로 역전됐다. 
안 후보는 야권 단일후보 경쟁에서 관건인 호남 공략에 나섰다. 그는 문 후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남지역을 방문했다. 하지만 후보 단일화에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그의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 특히 호남의 여론이 안 후보에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에 안 후보는 11월5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격적으로 야권 단일화를 위한 두 후보 회동을 제의했다. 문 후보가 수용함에 따라 6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두 사람이 만나 “후보 등록 전에 단일화를 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단일화 협상을 가능한 한 늦추는 듯 보였다. ‘새정치 공동선언’을 끝내고 룰 협상을 하자는 안 후보의 의견에 따라 양쪽 실무진이 공동선언 협의에 들어갔지만, 시간이 늦어졌다. 야권 지지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안 후보는 공동선언과 룰 협상을 함께 하자고 제의함으로써 다시 한번 단일화의 주도권을 쥐었지만, 협상은 하루 만인 14일 논의가 중단됐다. 민주당 쪽의 발언 등을 문제 삼은 안 후보의 제동 때문이었다. 
닷새의 중단 끝에 두 후보가 18일 만난 뒤 19일부터 다시 룰 협상에 들어갔지만, 시기상 경선 등 여론조사 외에는 어렵게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론조사 방안을 놓고도 문항 설계를 둘러싼 대립이 계속됐다. 문 후보는 지지도나 적합도로 할 것을 제의했지만, 안 후보 쪽은 양자 가상대결을 고수했다. 이런 와중에 21일 단일화를 위한 텔레비전 토론회가 열렸다. 안 후보로서는 마지막 반전을 위한 기회였다. 하지만 안 후보는 토론에서도 문 후보에게 밀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 후보는 23일 오후 후보 등록을 위한 범죄경력증명서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직접 떼는 등 등록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는 막판에 후보 양보라는 대승적인 결단을 내렸다.
< 김종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