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출범한 지 한 주가 훌쩍 지났다. 인수위는 새 정부의 미래상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이다. 인수위 운영 방식과 논의 내용을 미루어 새 정부의 성격과 정책 방향을 엿볼 수 있다. 아직 부처 업무보고도 끝나지 않은 초기라서 인수위 활동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엔 이르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보더라도 박근혜 정부의 5년을 어느 정도 예측해 볼 수는 있다.
‘전봇대 발언’으로 요란하게 시작한 이명박 정부와는 달리 박근혜 인수위는 대단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하고 있다. 국민과의 약속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박 당선인의 신중한 태도가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5년 동안 이런 자세를 견지한다면 국민과의 신뢰를 상당 정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열흘 가까이 진행된 인수위 활동은 기대보다 우려를 더 많이 갖게 한다.
예상은 했지만 박 당선인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던 ‘불통’이 여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온갖 비판에도 대변인에 ‘막말 윤창중’을 고수한 데 이어 부처 업무보고에 대한 ‘함구령’까지 내렸다. 박 당선인의 이런 행보는 그의 정치적 인식체계에 심각한 결함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먼저 민주주의에 대한 소양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란 원래 좀 시끄럽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는 정치제도다. 정책 혼선을 이유로 침묵을 강요하고, 효율을 앞세워 논쟁을 회피한다면 그것은 권위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다.
특히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여러 계층 간에 상충하는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는 게 아주 중요한 과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절충하는 여러 층위의 논의와 논쟁이 불가피하다. 어찌 보면 소모적으로 보이는 이런 토론의 장을 활짝 열어주는 게 민주주의의 요체다. 공론의 장이 사라지고 일사불란함을 강조하는 인수위 운영을 보면서 박근혜 당선인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더 퇴행시킬지 걱정되는 건 자연스럽다.
공인으로서의 공복(公僕)의식 부족도 빼놓을 수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은 국민을 대신해 국가를 운영할 권한을 위탁받은 심부름꾼이다. 그 권한 행사도 법률에 의해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그런데도 정권을 잡으면 국가권력을 전리품처럼 간주해 멋대로 쓰려고 한다. 이런 ‘권력의 사유화’는 이명박 정부에서 두드러졌다. 정권을 잡자마자 힘 있고 돈 되는 자리는 모조리 빼앗아 자기편들끼리 나눠 먹었다.
박 당선인이 이 대통령 같은 무지막지한 행태를 보일 것으로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통 인사’를 자행하고, 인수위에 사실상 함구령을 내린 데서 보듯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인수위는 박 당선인의 정책 수립에 도움을 주는 사설 자문기구가 아니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인수위의 모든 논의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고 국민의 감시와 견제를 받는 것이 정상이다.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그의 언론관도 문제다. 박 당선인이 언론, 그리고 언론인을 보는 시각이 어떤지는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임명에 함축돼 있다. 윤 대변인은 ‘정통 언론인’으로 보기에는 결함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언론계와 정치권을 넘나드는 걸 당연시하고, 정제되지 않은 막된 언어로 편향적인 글을 썼던 대표적인 기자다. 이런 부류의 기자를 어떻게 ‘언론인으로서의 전문성’을 인정해 인수위 대변인에 임명했는지 놀라울 뿐이다. 또한 함구령을 내린 채 대변인의 발언만을 받아쓰게 하는 것은 언론을 일방적인 정책 전달 수단쯤으로 여기는 처사다. 박 당선인의 비민주적인 이런 언론관이 바뀌지 않는 한 정부와 언론 간에 정상적인 관계 형성은 요원하다.
아직 공약이 구체적으로 정리되지 않아 박근혜 정부의 정책 방향이 어떻게 설정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새 정부를 인수위처럼 운영한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의 호응을 받기 어렵게 된다. 지금 같은 인수위 운영 방식이나 인사 스타일이 새 정부까지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 한겨레신문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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