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씨년스럽게 휑한 남북출입사무소.
연일 긴장고조에 불안감도 확산
남북관계의 유일한 ‘생명선’이던 개성공단이 4월9일 마침내 가동을 멈췄다. 이어 10~15일 사이에 물리적 도발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와 같은 간접도발일 가능성이 크지만, 기습공격이나 테러와 같은 직접도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잇달아 전쟁을 경고하는 도발적 언사를 늘어놓자 국지전을 우려하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졌고, 대형마트의 생필품 매출이 늘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쌓아왔던 ‘한반도의 평화’라는 공든탑이 5년 남짓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개성공단의 미싱은 가동 9년 4개월 만에 회전을 멈췄다. 북한의 세 차례 핵실험,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11월 연평도 포격 때도 없던 일이다. 9일 오전 파주시 경의선 남북 출입사무소(CIQ)를 통해 돌아온 입주업체의 한 직원은 “오늘 북한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았다. 이제 끝장났다”고 고통스럽게 말했다. 북한 근로자 5만4000여명을 매일 아침 8시께 실어나르던 250여대의 통근버스도 움직이지 않았다.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운동복 1000벌을 승용차에 바리바리 싣고 돌아온 다른 입주업체 직원은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날 71명이 돌아왔고, 외국인 2명을 포함해 408명이 실낱같은 희망을 붙든 채 개성에 남아 있다.
북한은 이날 “서울을 비롯해 남조선에 있는 모든 외국기관들과 기업들, 관광객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신변안전을 위해 사전에 대피 및 소개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불안감을 부추겼다.
모 대학 교직원 김아무개(40)씨는 “지난해 12월 북한이 인공 위성을 쐈을 때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긴박하게 돌아가는 최근 정세를 보며, “이러다간 전쟁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고 했다. 그사이 미국의 첨단 무기들이 잇따라 출몰했고, 서로 질세라 남북간에 초강경 발언이 오갔다. 김씨는 보유중인 주식이 폭락할까봐 걱정하며 수시로 주식 시세를 확인한다.
2010년 11월 북의 포격을 받았던 연평도 주민들의 불안은 극에 달해 있다. 신일근 청년회장은 “불안하다며 이미 100여명이 섬을 떠났다. 오늘 이장들이 모여 정부에 이주 대책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대형마트의 한 관계자는 “일주일 전부터 라면, 생수, 부탄가스 등 생필품의 수요가 10~20% 정도 늘었다. 사재기라고 할 순 없지만 의미 있는 변화”라고 말했다. 이날 밤 포털사이트 다음의 ‘소셜픽’을 보면 ‘외국인 대피 대책’이 5만여건의 검색, 1200여개의 트위트, 7700여개의 댓글로 소셜픽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주식시장에선 코스피200의 변동성 지수가 18.72로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주가가 급락할 때 급등하기 때문에 ‘공포지수’라고도 불린다. 5년 만기 국채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88bp로 지난해 말보다 27bp 급등했다. CDS 프리미엄이 높을수록 발행 주체의 부도 위험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은 이날 “남북한 당국이 직접 나서서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에 나서주기 바란다”고 애타게 호소했다. 염원했던 평화는 온데간데없고, 남은 것은 상대를 향한 불신과 증오뿐이다.
< 길윤형·정환봉·홍대선 기자 >
“서울 미국인 대피 불요”
미 정부 밝혀… 한·미군은 워치콘 상향
북한이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대피하라고 위협한 데 대해, 미국 정부는 미국 시민에게 한국 방문을 피하거나 한국 내 미국 시민에게 대피를 권고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패트릭 벤트렐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은 9일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한국에 거주하거나 방문할 계획이 있는 미국 시민에게 당장 보안상 특별히 주의할 것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북한의 ‘외국인 대피’ 위협에 대해 “이는 불필요하고 도발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현재 한반도 상황을 감안할 때 무책임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는 “우리가 다르게 생각했다면 이와 다른 권고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우리의 권고다”고 답했다.
미국 백악관도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대피하라고 언급한 북한의 성명에 대해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이번 성명은 긴장만 고조시키는 도움이 되지 않는 수사”라며 “이런 종류의 언사는 북한을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고립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화의 길을 선택하고 국제 의무를 준수하라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요구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계속해서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북의 의도에 대해 그는 “지역 내 긴장을 높이려는 것이다. 수년간 북한 문제를 다뤘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행동 패턴이다”고 말했다.
한·미 군당국은 그러나 10일 대북정보 감시태세인 ‘워치콘’(Watch Condition)을 상향 조정했다. 북한이 조만간 미사일 발사 등 물리적 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른 조처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미연합사령부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워치콘을 3단계에서 2단계로 한 단계 높였다”고 말했다. 워치콘은 북한의 군사활동을 추적하는 정보감시태세로, 평상시부터 전쟁 발발 직전까지를 5단계로 나누어 발령한다. 2단계는 북한의 도발 위협 징후가 뚜렷한 상황에 발령된다.
< 워싱턴=박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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