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1층 와인 바


“호텔 꼭대기 층 비싸 지하로 갔다” 했지만
가격 차 없고 지하가 조명 어둡고 공간 좁아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은 11일 기자회견에서 문제의 성추행이 발생한 장소와 관련해, ‘W 워싱턴호텔’ 꼭대기 층 바의 가격이 너무 비싸 지하 1층 ‘허름한’ 바로 장소를 바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장을 가보니, 두 곳의 음식 및 와인 가격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 반면, 분위기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윤 전 대변인과 대사관 지원 요원, 그리고 운전기사는 사건 발생일인 7일(현지시각) 밤 9시30분께 이곳에 도착해 와인을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어떤 와인을 마셨는지, 음식은 뭘 먹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워싱턴호텔 꼭대기 층(11층)에 있는 ‘포브’(POV)라는 바와 ‘와인바’로 불리는 지하 1층 바의 가격 차이는 별로 나지 않았다. 백악관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이 호텔은 4성급으로 1918년 세워진 유서깊은 곳이다. 와인바는 호텔 로비 기준으론 지하 1층으로 구분되지만 건물이 약간 경사가 져 있어서 실제로는 창문으로 밖이 내다보이는 지상층에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잔으로 파는 와인은 포브가 10~15달러(약 1만1천~1만7천원), 병째 파는 와인은 45~175달러(약 5만~20만원)였다. 와인바의 경우에도 잔으로 파는 와인은 10~20달러(약 1만1천~2만2천원)였고, 병째 파는 와인은 50달러(6만원) 안팎에서 시작했다. 물론 유명 와인들은 두 곳 모두 가격이 천차만별이어서 대부분 수백달러대였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포브는 밤 9시가 넘으면 18달러(약 2만원)짜리 ‘치즈모듬’만 판다고 이곳 직원은 말했다. 와인바는 스테이크 요리까지 겸하는 곳이어서 10~50달러(약 1만1천~6만원)의 다양한 음식이 메뉴판에 있었다.


워싱턴호텔 꼭대기 층 바


그러나 분위기는 현격하게 차이가 있었다. 포브는 여행안내서 <론리플래닛>의 ‘나이트 라이프’ 난에도 소개될 만큼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선 도로 하나 건너편에 있는 백악관 전경은 물론, 링컨기념관 등 기념관·박물관들이 밀집해 있는 내셔널몰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워싱턴의 야경을 즐기려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11일(현지시각) 오후 6시께 방문해보니 100명도 훨씬 넘어보이는 손님들로 북적댔고, 일부 손님들은 사진기를 꺼내 백악관 전경을 찍기도 했다.
 
반면, 와인바는 미국의 전형적인 술집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조명은 약간 어두운 편이었다. 공간은 비좁은 편으로 좌석은 40석 정도 돼 보였다. 제일 안쪽에 바텐더가 와인 셀러를 뒤로 하고 칵테일과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 있었고, 가운데에 긴 탁자가 놓여 있었다. 윤 전 대변인이 말한 긴 탁자가 이것을 지칭하는 것 같았다. 가로 길이는 한쪽으로 9명가량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세로 길이는 약 50㎝ 정도로 짧았다. 겉보기엔 인테리어가 약간 수수해 보일 수 있으나, 특급호텔이 운영하는 와인바답게 세련미가 있었다.
포브와 와인바의 이런 특성을 토대로 추정해보건대, 윤 전 대변인은 가격보다는 분위기 때문에 장소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포브에서 젊은 여성과 술을 마시는 것이 아는 사람들에게 목격될 것을 우려했을 수 있다.
한편, 이 와인바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7일 밤 윤 전 대변인 일행을 봤느냐는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호텔 언론 담당에게 문의하라”고 말했다.
< 워싱턴 / 박현 특파원 >